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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십자가를 져야 주님의 사람이다”미국 김태수 원로목사가 줄기차게 외쳤던 복음 <현재적 천국> 책에 담아
양승록 기자  |  dsr12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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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7호] 승인 2017.10.26  14:3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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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적 천국> 표지

마음에 천국을 향유하며 사는 것,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이들이라면 소원하는 일이겠지만 웬일인지 그 꿈대로 날마다 살기는 쉽지 않다는 이들이 많다.

미국 캘리포니아 윌셔크리스찬교회에서 16년간 사역하고 은퇴한 김태수 목사는 최근 <현재적 천국>(들소리)에서 그 ‘길’을 일관되게 제시하고 있다. 성경 말씀처럼 ‘죄’를 회개하고,  죄에서 돌이켜 의(하나님)의 길에 서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라는 것이다.

이 정도 설명을 들으면 오늘날 교회 강단에서 선포되고 있는 말씀과 별반 다를 게 없지 않은가 반문할 수 있겠지만, 김태수 목사의 주장을 듣다보면 어떤 점이 오늘날 신자에게 허점인지를 발견하게 된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대속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대속, 불가능하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죄에서 나오는 방법은 죄를 회개하는 길 외에는 없기 때문에 예수님이 죄를 회개하라고 가르치셨고, 이것이 속죄의 방법이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를 죄에서 나오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고, 불가능한 방법이 있음을 김태수 목사는 구분한다.

불가능한 방법은 무엇을 말함인가. 그의 설명을 들어보자.

“예수님은 예수님이 자기가 죄와 상관없이 살기 위해 자신의 십자가를 지신 것이지 우리의 십자가가 아니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의 십자가로 우리를 거룩하게 할 수 없어서 아버지의 진리의 말씀을 행해서 우리가 거룩해지는 것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우리에게 필요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의 하나님의 말씀을 행해서 거룩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의 속죄를 가능하게 하는 점은 무엇일까.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기를 거룩하게 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기까지 적극적으로 노력한 것을 본받아 우리도 우리의 십자가를 지기까지 노력하면 죄에서 나올 수 있다. 그러면 속죄가 가능한 것이다.”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19). 이처럼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가 거룩하게 사는 데 본보기로서 도움이 되는 것뿐이라는 것이다.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롬 6:6). 예수님과 같이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우리 죄의 몸이 죽은 것이기 때문에 재범할 수 없다는 의미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 죄를 대속한 것이 아니라 예수와 같이 진 우리의 십자가가 우리 죄를 재범하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뜻이라고 김 목사는 설명한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예수님이 범죄하지 않기 위해 예수님이 자신의 십자가를 진 것 같이 우리도 우리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해 예수와 같이 우리 자신의 십자기를 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 자신이 진 십자가와 우리의 죄를 회개한 일로써 우리가 죄에서 구원된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예수님이 속죄의 본보기로 오신 것이다.”

우리가 회개하지 않고, 우리 십자가를 지지 않고 타력으로, 예수의 십자가의 능력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한다는 뜻이 결코 아니라고 김태수 목사는 강조한다. 우리의 회개, 우리가 죄에 대해 단번에 죽은 우리의 십자가로 우리가 죄에서 구원되는 것이며, 예수님의 십자가는 속죄물로서 모범인 샘플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속의 의미를, 보석금을 내고 감옥에서 나오게 하는 것 같이 생각하는데, 그것은 완전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죄는 사람이 지었는데 예수님이 백번 죽는다 해도 죄 지은 사람이 그 죄를 여전히 회개하지 않고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현재의 삶에서 천국 누리기

“천국은 의가 목숨과 돈보다 가치있다고 생각할 때 발견된다. 성경에 예수님이 말씀은 옳게 했는데, 사람들이 자기 목숨이나 돈을 더 사랑하니까 자꾸 거꾸로 알아듣는 것이다. 예수님도 너무 지치니까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신 것이다.”

죽어도 해야 할 의를 소유한 자는 절대가치를 소유한 자로서, 그는 절대성이 있고 절대자와 동질이고 절대자 하나님을 만난 자라고 김태수 목사는 정의한다. 죽음이 두려워 의를 거절하고, 의를 행하지 못하는 인간이 죽어도 불의를 거절하고 의를 행하는 절대적인 인간이 된 것, 이것이 죽음을 초월한 사람이라는 설명이다. 

“죽음을 초월한 정신으로 죽음 다음 세계에 이미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거하는 것이다. 그래서 죽어도 불의를 피하고 죽어도 의를 존경하고 행하는 것이다. 이것이 의의 하나님인 절대자를 만난 상태, 즉 현재적 천국이다.”

죽는다면 의로운 일도 거절하고 죽지 않기 위해서는 불의나 살인도 서슴없이 행하던 사람이 그런 죽음의 노예생활에서 떠나 자유롭게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김태수 목사는 말한다.

“꼭 죽은 후에만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목숨을 아끼지 않고 의를 행하는 자는 살아있어도 죽음을 초월한 것입니다. 목숨을 아끼지 않고 의를 행하는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죽지 않는 사람 같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상태는 이미 그 마음에 천국이 이뤄진 것입니다.”

천국은 죽어도 의를 따르려는 사람의 ‘마음 상태’지 ‘환경’이 아니라고 김 목사는 말한다. 죽어도 의를 따르려고 하는 사람은 육의 죽음도 그 사람의 의의 마음의 평화를 방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여기가 사실 죽음을 초월한 질적인 대가치가 있는 의의 마음상태(천국)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행함 없는’ 믿음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그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생명이 없기 때문”이라고 김 목사는 말한다. 영어로는 생활과 생명을 의미하는 단어, 라이프(life)를 같이 사용한다. 생명은 반드시 살아있는 활동(생활)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399년의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의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죄목으로 감옥에 갇혀있을 때다. 그의 제자 가운데 부자가 있었는데, 형무소 소장에게 한주먹 돈을 쥐어주고 나가는 것을 허락받았다며 나가자고 말했지만 소크라테스는 거부했다. 그러자 제자는 선생님이 계속 얘기하기 위해 목숨을 유지해야 한다, 거문고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육체가 살아있어야 한다고 간절히 말했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자네 예는 그럴 듯하지만 아니네, 나는 거문고 줄이 아니네. 이미 나는 나간 소리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처럼 진리는 모두 그렇게 나간 소리여야 한다고, 거문고 판에서 머물면 안 된다고 김 목사는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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