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락 / 번역가

 

디즈니 애니메이션 ‘도리를 찾아서’. 나는 이 만화영화에서 노골적인 삶의 지침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그 강력한 메시지는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도리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린 도리.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잊고, 자기가 방금 한 말도 까먹고 그야말로 순간순간을 살아간다. 그런데 도리는 그 순간을, 신통할 만큼 한결같고 충실하게 살아간다. 뒷부분에 가면 부모에게 물려받은 부분에다 아버지의 교훈(그것만은 잊지 않았다!)도 큰 몫을 했음을 알 수 있다.

도리와 정반대의 캐릭터, 그러니까 친구인 니모 아빠 말린은 끊임없이 따지고 계산한다. 하지만 마침내 우여곡절 끝에 견적이 안 나오는 상황을 만난다. 그때 말린은 묻는다. ‘도리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질문의 예상답안을 온몸으로 따라간다.

그것만으로도 부족하다는 듯, 영화는 도리가 어떻게 선택하고 행동하는가를 관객이 직접 경험하게 해준다. 그 순간, 나는 정말이지 도리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듯했다. 이런 식이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른다. 주위에는 도움을 청할 다른 물고기도 없다. 그래도 좌절하지 않는다. 도리식으로 선택하고 나아간다. 휑한 바다와 해초가 있는 지역 중에서 해초지역을 택한다. 삭막한 것보다 풀이 있는 쪽이 좋으니까. 바위가 많은 곳과 모래가 있는 곳 중에서 부드러운 모래 쪽을 택한다. 모래가 더 보드라우니까. 도리는 선택의 기로에서 자신의 목소리와 성향을 존중하며 따라간다.

영화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멀리 보지 못해도 상관없어. 자꾸 까먹어도 괜찮아. 자기 모습에 자책하지 말고, 주저앉지 말고, 안 될 거라 지레 포기하지 말고,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내려.” 도리에게는 간단한 삶의 원리가 있다. 희망을 잃지 말고 (“언제나 다른 길이 있다”) 기본적인 원리(“계속 헤엄쳐”)를 따라가라. 영화는 우리에게도 “도리처럼 하라”고 말한다.

딱 봐도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의 패러디다. 하지만 기분나빠할 것 없다. 영화는 그 질문을 진지하고 성실하게 변주한다. 그 질문을 어떻게 묻고 답하는 것이 ‘그 질문을 올바로 대하는 것인지’ 잘 보여준다. 그 질문은 ‘예수님에 대한 깊은 이해와 경험적 신뢰를 바탕으로’ 주어진 상황에서 그의 대답을 예상한 다음 그대로 실천하고 몸을 던져야만 의미가 있는 것임을 참으로 극적으로, 반복해서, 다각도로 보여준다.

나는 ‘조금 더 오래’ 기억할 뿐 도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큰일이 터져도 곧 잊고, 어느새 다음에 벌어진 일에 정신이 쏠린다. 소중한 기억조차 금세 가물가물. 멀리 보지 못하고, 그냥 하루하루 순간순간 살아갈 뿐 미래를 생각하지 못한다.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다. 이러다 ‘도태’되지 않을까?

C. S. 루이스는 ‘역사주의’라는 에세이에서 헤겔주의나 마르크스주의처럼 역사의 정해진 진행방향을 안다고 주장하는 ‘역사주의’에 반대하면서 ‘참 역사, 근원적 역사’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그 역사를 “각 사람이 자신의 경험에서 순간순간 만나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매우 제한되어 있기는 하지만, 저자의 손에서 직접 나온 순수한, 편집되지 않고 삭제되지 않은 텍스트입니다. 구하는 자는 그 역사를 이해하기에 충분한 해석을 얻게 되리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또 그래서 하나님은 매순간 ‘역사 속에 계시되는’ 것이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이런 생각에 따라 루이스는 신앙적 조언을 구하는 사람에게 이런 답장을 쓸 수 있었다. “꾸준히 기도하고 하나님이 주신 최선의 빛에 순종하려 노력한다면, 하나님이 당신을 이끄시어 알려주기 원하시는 더 깊은 진리에 이르게 하실 거라고 신뢰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것은 물론 일차적으로 신앙적인 깨달음을 말하는 것이겠으나, 삶의 중요한 지침으로 확장해서 생각하는 것도 무방하리라. “주어진 빛에 순종하라.”

루이스는 도리가 살아가는 순간순간을 “거룩한 현재”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렇게 묻는다. “영원하신 분을 현재가 아니면 어디서 만나겠습니까?” 이렇게 생각하니 흑역사로 가득하고 앞이 막막한 나의 인생도 희망이 있구나 싶다. 나도 지금, 현재를 살아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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