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는다 함은 
사랑으로 그를 신뢰함이다. 그것이 인격적 신앙이다. 
이 말은 신앙 인격이 주어져야 비로소 
가능한 믿음의 고백인 것이다”

 

▲ 김문건 목사
신광교회 담임

◈ 월 :  무엇이 아닌, 누가 / 로마서 7장

본문 21절에 ‘한 법이 있다’에서 ‘법’은 ‘rule’을 뜻한다. 우주 세계의 원리가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만은 순결한 영혼이라서 나의 결심은 온전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 자체가 죄다. 우주의 원리가 그러니 항상 선한 마음과 은혜의 때에도 이 원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 방심치 말라! 

우리의 다짐만으론 절대 이길 수 없다. 삶의 원리가 그렇다는 것이다. 산상수훈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주님은 제일 먼저 이것을 지적한다. 

본문 24~25절에서는 죄는 사망을 가져오는 고통이 있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인 전투에서 좌절과 패배를 경험한다고 한다. 바울은 여기에서 어떠한 해결책을 얻었는가? 중요한 것은 ‘무엇’, ‘어떤’이 아닌 ‘누가’라는 것이 핵심이다. 

죄를 이기는 것은 어떤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다. 누가라는 어느(죄 없는) 사람만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이김의 방법은 초신자 때만이 아니라 언제나 성도의 이김의 방법임을 잊지 말라!
▶ 기도 : ‘누가’라는 인격이신 하나님이 해결하심을 믿고 감사하며 살게 하소서.

 

◈ 화 : 낙심치 않는 사명자로 살자 / 로마서 8장

8장은 ‘없다’로 시작하여 ‘없다’로 끝난다. 확신에 찬 바울의 고백을 열정적으로 그러나 차분하게 강조해야 한다. 성경에서 5장은 가장 중요한 장이라면, 8장은 가장 은혜스럽고 위대한 장일 것이다. 이 위대한 예정론을 접하면서 절망 가운데 사는 모든 이들에게 확실한 근거 있는 소망으로 살게 한다. 그러므로 성도 스스로 어떤 환경에서도 ‘죄’를 생각조차 하지 않고 넉넉히 이기도록 하게 한다.

먼저 알 것은 우리는 아주 특별한 존재라는 것이다. 성도면 누구나 당연히 누려야 할 행복의 조건은 우선 “정죄 없음”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 왜 우리는 낙심치 않는 사명자로 살 수 있을까? 낙심의 생각을 이길 방도는 무엇인가? 당신이 사명자라면 절대 낙심치 않는다.

18절을 보면, 장차 나타날 영광을 생각하며 우리는 낙심치 않을 수 있다. 19절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날 것을 고대하면서 즐거움 속에서 우린 낙심을 이긴다. 25절을 따르면, 보이지 않음으로 참음으로 이긴다는 것이다(참고 암 8:12~13). 하나님 없는 세상은 언제나 젊어도 그렇고 그렇게 살았다. 옛날에도 말이다. 절대 사람을 보면서 그것에 기준하여 믿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으로만 낙심치 않을 것이다.
▶ 기도 : 낙심치 않고 살되, 믿음으로 승리하게 하소서!

 

◈ 수 : 야곱은 사랑하고… / 로마서 9장

우리나라도 지금 회복되어야 할 부분이 너무 많다. 짧게는 지난 9년을 말하나 길게는 오랜 세월 민주화 이전의 모든 과정, 나아가서 친일파들의 득세로부터 회복되어야 할 부분이 너무 많다. 과연 가능할까? 이런 궁금증을 갖고 있다. 기독교의 핵심 가치 중에 제일은 창조 그리고 부활이다. 부활이란 절대 다시 일어설 수 없고, 죽으면 그만인 인생이 다시 사는 것이다. 이 중간에 있는 것이 바로 회복이다. 마치 야곱이 회복되어 이스라엘이 된 것처럼. 이 회복이 가능하려면, 예수님 외는 전혀 답을 갖고 있지 못한 나병과도 같은 삶이란 것을 인지해야 한다. 

그래서 산상수훈에서는 애통하는 자를 복이 있다 한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얍복강 나루터의 야곱처럼,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나루터지만 그곳을 기도의 처소로 바꾼 야곱은 주님을 사랑한다고 한다. 하나님이 내 마음과 내 생각보다 크시며, 실제로 기도의 집에서 일어나는 일은 인간의 성패의 기준으로 측량할 수 없음을 알고 하는 기도, 기도가 필요하다.
▶ 기도 : 지렁이 같은 야곱의 하나님, 언제나 저를 도우소서!

 

◈ 목 : 입으로 시인하여 / 로마서 10장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가지 못 한다’는 말씀과 전면 배치되어 보이는 구절이다. 그러기에 우리의 삶 속을 더 들여다보아야 아멘이 가능한 구절이기도 하다. 9절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이라 한다.

“시인한다”는 말은 그리스도를 대외적(對外的)으로 고백하는 공 고백(公告白)이다. 이 말은 공공연한 장소에서 고백한다는 의미에서 공공성의 의미이기도 하고, 나아가서 공공적으로 보아도 부끄럽지 않을 삶을 전제로 하고 있다. 언제나 어디서나 보아도 과연 그리스도인답다는 것이다. 행 11:26에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곧, 우리 삶 속에서 이것은 그 신앙의 진실성을 증명하는 표시(表示)다.

“마음”이란 말은 애정의 기관인데, 곧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는다 함은 사랑으로 그를 신뢰함이다. 그것이 인격적 신앙이다. 이 말은 신앙 인격이 주어져야 비로소 가능한 믿음의 고백인 것이다. 우리의 삶과 입술의 고백은 이와 같이 중히 여기고, 마음의 설렘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 기도 : 부패한 나의 마음에 믿음을 부어, 주를 고백하게 하소서!

 

◈ 금 : 원가지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 로마서 11장

높은 마음을 품지 말라는 말은 언제 들어도 신선하다. 구원의 확신을 말하는 로마서이기에 확신와 교만을 철저히 분리하라고 바울은 말한다. 우리가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있으면, 그 황공한 은혜에 감격되어  두려워하며 떨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협박에 가까운 놀라운 구절이 롬 11:21에 나온다. “하나님이 원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원가지란 누굴 말할까? 기본적으로 원가지는 유대인을 가리키고, ‘너’란 말은 이방인 신자를 가리킨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볼 때에, 원가지인 예수 그리스도가 죄인인 나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한 그분이다. 하나님이 얼마나 죄를 미워하시는지 아는가? 원가지를 꺾어서라도 죄인을 위인 만드신 그분, 하나님의 사랑이 오히려 무섭다. 무섭도록 절절한 하나님의 사람이 무섭다. 죄인인 바울은 우리에게 스스로에게 말한다. 외친다.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으니….” 인자하신 그분만이 아닌, 엄위하신 그분을 어찌 모른 체하는가 말이다. 핑계대지 말자.
▶ 기도 : 인자하신 하나님만이 아닌, 엄위하신 하나님을 보게 하소서!

 

◈ 토 : 지혜롭게 생각하자 / 로마서 12장

로마서 12장에 나오는 ‘그러므로’는 성경에서 나오는 가장 위대함이다. 이스라엘과 이방인에게 나타내신 하나님의 풍성한 긍휼에 대해서 이제 너희가 답을 내어 놓아야 할 것이다. 언제나 자비하심으로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실망시키지 말자! 앞선 10장과 11장에서 말한 입으로의 고백이 이제는  몸으로 드리는 산제사로 나타나야 한다고 한다. 언제나 이 세대는 본받아야 할 대상은 아니니, 절대로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하신다.

이전에는 롬 12:1~2만으로도 넉넉히 감사했는데, 요즈음엔 3절이 유독 눈에 뜨인다. 왜냐하면 드리고 나서가 문제이다. 헌신이 문제가 아니라 남이 모르는 헌신을 하고 나서 찾아오는 유혹과 시험이 더 문제일 수 있기에 3절의 경고는 너무나 소중하다. 몸으로 드리는 산 제사를 드리고 나서, 정말 깨어 있어야 한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하지 않는가? 주님에게도 사단은 40일을 금식하신 후에 찾아왔다. 우리의 헌신이 끝이 아니라, 헌신 이후에 깨어 지혜로운 생각으로 마무리하는 것까지 가야 한다. ‘내게 주신 은혜’가 넉넉한데 이것을 인식하는 데서부터 은사는 시작된다.
▶ 기도 : 지혜롭게 생각하게 하소서! 남의 것을 탐하지 않게 하소서! 감사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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