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승진 사무국장
(사)한국기독교출판협회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은 더 이상 만화영화를 보자며 조르지 않는다. 대신 ‘마블(marvel)’로 통칭되는 가상의 영웅들에 환호한다. 덕분에 나도 ‘아이언맨’, ‘스파이더맨’, ‘닥터 스트레인지’ 등 여러 영웅들의 이름을 알게 됐고, 최근에는 아들과 함께 외계인 ‘토르’의 새 영화를 보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사실 난 어느 순간부터 할리우드에서 만드는 영화를 썩 좋아하지 않게 되었는데, 그것은 ‘미국제일주의’, ‘백인우월주의(인종차별)’, ‘생명경시’, ‘선과 악의 이분법’ 등이 너무 일반화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할리우드의 영화 관계자들은 ‘폭력’에 환호하는 대중의 보편적 특성에 ‘정의’를 붙임으로써 그 폭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조차 악을 두둔하는 불순한 의도를 가진 것으로 몰아세운다. 그리고 그러한 정의감을 팔아 막대한 돈을 전 세계로부터 벌어들인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언급하는 세계의 위험은 언제나 뉴욕이나 워싱턴, 혹은 미국의 사막 어디쯤이고, 기껏 해외로 나가도 유럽의 런던이나 파리 정도인데 정작 영화에서 다뤄지지 않는 아시아를 비롯한 제3세계가 그들의 ‘돈줄’이 된다.

더 자세한 얘기를 하기에는 여러모로 부적절해서 이쯤에서 그만 두어야겠다. 아무튼 그다지 탐탁하지 않은 할리우드 영화, 그중에서도 제일 황당한 스토리의 폭력영화인 마블을 두고 환호하는 아들을 보자니, 마음 한 구석이 좀 씁쓸했다.

이럴 때 등장하는 내 구원투수가 있는데, 나름 2살 아래 남동생보다 ‘수준’ 있는 딸아이다. 내년에 중학생이 될 딸아이는 마블에 대한 아빠의 불편한 마음을 아는지 동생을 앞에 두고 여러 질문을 해온다. 아빠가 영화를 어떻게 봤는지, 왜 불편한 심경인지, 무얼 말하고 싶은지를 말이다. 덕분에 난 ‘강요’가 아닌 ‘대화’로 아들에게 내 마음을 전할 수 있었다. 물론 직접 영화를 거론하는 바보짓은 피했다. 내 선택은 하나님의 마음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신앙인으로서 우리가 절대로 미워해야 하는 것은 ‘악’이다. ‘사탄’으로 상징되는 ‘악’은 늘 우리의 내적 삶을 지배하려 하고, 그로부터 우리의 외적 삶 전체를 망쳐놓으려고 한다. 그런데 교묘하게도 ‘성공’이라는 말로 ‘탐욕’을 포장하고 ‘정의’라는 말로 ‘폭력’을 정당화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떠나라고 요구하는 대신, 하나님의 뜻을 왜곡함으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과 반대되는 삶을 선택하게 한다는 말이다.

예수님은 “죄를 미워하라”고 하셨지 죄인을 응징하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오히려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다”(딤전 1:15). 하나님 아버지는 “나만 성공해서 멋진 집에서 잘 살고, 멋진 차를 타고, 상상만 해도 즐거운 슈트를 입고 정의의 이름으로 죄인을 응징하는 것”을 결코 즐거워하는 분이 아니다. 오히려 주님은 돌아온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셨고, 굶주린 무리들을 위해 떡과 고기를 나눈 어머니였으며, 버려진 소경의 손을 잡아 눈을 뜨게 한 형제였고, 죄인들을 죄로부터 해방하기 위해 스스로 죄인이 되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희생제물이셨다. 그는 마블의 영웅과는 정 반대의 길을 걸은 영웅이다.

그런데, 아빠의 긴 설명을 들은 아들은 단 한마디 말로 아빠의 항복을 받아냈다. “그럼 아빠는 예수님처럼 되고 싶어?” 당황한 내 표정을 읽은 딸아이가 “야, 아빠가 어떻게 예수님이 되냐?”라고 변명해주었지만, 그 말이 더 내 마음을 후벼 팠다. 

매번 그렇게 변명했던 내가 떠올랐다. 부끄럽고 또 부끄러워서 표정을 감추느라 애를 먹었다. 갑자기 “주님, 비단으로 된 명품 옷을 입고, 수십 만 원짜리 점심식사도 하고, 벤틀리 같은 마차도 좀 타시고, 수십억짜리 집도 사시고, 수려한 말발로 선교하러 세계 여행도 좀 다니셨으면, 제가 주님을 얼마나 열망하는지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을 텐데요”라고 도리어 원망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못했다. 

집에 와서 아이들과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그리고 속절없이 회개하며 다짐했다. “예수님, 당신이 나의 영웅이십니다. 당신의 삶을 좇아 살겠습니다.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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