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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 없는 진실한 사랑, 하나님 만나는 통로”‘넓은 세상 작은 도서관’ 관장 정인애 권사의 ‘사랑 훈련’ 이야기
정찬양 기자  |  dsr12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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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9호] 승인 2017.11.15  16:4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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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열려있는 문턱 없는 도서관,
온전한 사랑을 훈련하는 현장

20년 신앙생활 한 교회 떠나야 했던 이유,
“내 안에 사랑이 부족했다”

 

   
▲ 정인애 권사

‘넓은 세상 작은 도서관’. 이름 그대로다. 경기도 광명시 가림로의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돌고 돌아 도착한 도서관은 작은 입구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32평 남짓의 공간에 꽤 많은 책이 꽂혀있다. 무려 1만8천권.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동화책부터 인문사회과학, 문학, 예술, 육아, 갖가지 전문서적까지, 많은 이들이 책을 통해 넓은 세상을 만나고 경험하고 꿈꾸는 통로가 되어주는 곳이다.

가구별로 회원 등록하는데 그 숫자는 아파트 단지의 2천 세대를 훨씬 넘는 2,800가구나 된다. 어떻게 된 걸까?

“우리 도서관은 문턱이 없어요. 도서관은 책을 찾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열려있어야 하지요.”

광명시 작은도서관협의회 회장이자 넓은 세상 작은 도서관 관장인 정인애 권사(55)의 ‘동네 도서관’에 대한 지론이 반영된 것이다.

이곳, 작지만 넓은 세상을 품은 도서관은 정인애 권사의 봉사 현장이자 조건 없는 ‘온전한 사랑’을 배우고 익혀가는 훈련장이기도 하다.


# ‘온전한 사랑’을 배우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독립된 공간에 마련된 도서관, 신발을 벗고 들어가면 두 개의 큰 탁자에서는 아이들의 만들기 등 문화프로그램을 갖기도 하고, 엄마들의 독서토론장이 되기도 한다. 도서관은 아파트 부녀회와 입주자대표회가 함께 시작해 광명시에서 첫 번째로 세워진 ‘작은 도서관’으로 낡은 서가가 20년 가까운 도서관의 나이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도서관 앞 놀이터는 봄·가을이면 시 낭송회나 음악회 등을 위한 멋진 무대로 꾸며져 마을 주민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행사장이 된다.

10년 넘게 관장으로 봉사하면서 정 권사는 이곳에서 존재 그대로 사랑하는 ‘온전한 사랑’을 배워가고 있다고 했다. 특히 한 달에 한 번씩 모이는 성인들을 위한 독서모임에는 더욱 정성을 쏟는다. 대부분 40~50대의 엄마들인데 책을 매개로 이야기를 풀어놓고 한 사람 한 사람 걸어온 삶의 무게를 나누다보면 눈에 드러나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더욱 깨닫는다.

까칠하고 예민한 성격의 한 엄마는 늘 대하기가 조심스러웠다.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먼저 인사 건네고 말도 붙여보고, 한참 시간이 흐른 후 그는 뜻밖에 도서관에서 봉사하고 싶다고 했다. 아이들이 조금만 떠들어도 그냥 넘기지 못하고 완고함을 드러내는 모습이 불안했지만 곁에서 지켜보며 기다렸다. 함께 독서모임을 가지면서 알게 된 건 그분의 어린 시절 상처가 그를 예민하고 불안한 성격으로 몰아갔다는 것이다. 그 엄마는 자기 내면에 막혀있던 이야기들을 쏟아내고는 한결 편안해졌고, 도서관 봉사도 기쁘게 감당하게 됐다.

독서모임에는 누구든지 참여 가능하고, 어떤 책이든지 읽을 수 있고, 심지어 책을 읽어오지 않아도 된다는 원칙 아닌듯한 원칙이 있다. 분주한 일상에서 책을 다 읽지 못해도 함께 모여 나누는 이야기들을 통해 더욱 풍성해지기 때문이다. 정 권사는 “책 안 읽고도 떳떳하게 오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까 봐 고민”이라며 웃는다.

청소년 아이들과 함께했던 독서모임 ‘인문학 먹방’ 이야기를 하면서 정 권사의 입가에 따뜻한 미소가 흐른다. 대안학교 다니던 한 아이가 도서관에 와서 대뜸 “관장님이랑 독서모임 하고 싶다”고 제안해 당장 둘이서 시작했다. 그러다가 학교를 자퇴한 아이, 휴학한 아이 등 그야말로 ‘이상한 아이들’ 세 명이 모였는데, 책도 성실하게 읽고 모일 때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가감 없이 자기들의 생각을 꺼내놓고 책을 통해 새롭게 확장된 사고의 부분을 이야기하며 즐거워했다. 아이들은 “논술시험에 맞춰 공식 외우듯 하는 거  말고 이게 진짜 책읽기”라며 “자유롭게 토론하고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학교 수업 중에도 있다면 좋겠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교회에서 쉽게 말하는 ‘사랑’, 하지만 정 권사는 한 사람을 존재 그 자체로 사랑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배워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왜 쉰을 훌쩍 넘긴 나이에 ‘사랑’ 타령일까?


# 사랑? 내 욕심?

남편의 반대를 무릎서고 어린 두 아들과 함께 교회에 출석했지만, 20년 가까이 다니던 교회를 나오면서, 정형화된 신앙생활을 벗고서야 ‘사랑’의 의미에 더욱 천착하게 됐다. 전형적인 보수성향의 교회였다. 성경을 읽고 기독교 서적을 접하면서 기복적인이고 맹목적인 신앙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 커져갔다. 아들들도 자라면서 “교회는…, 목사님은 왜…”라는 질문이 많아졌다. 

궁금증이 커지던 어느 날 답답해하는 아들들과 함께 목사님과 자리를 가졌다. 궁금한 것들을 직접 질문하고 고민을 해소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어떤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해도 평행선을 달리는 속에서 접점을 찾기란 불가능한 듯 보였다. 아들들은 “엄마, 더 이상은 힘들다”며 교회 출석 중단을 결정했다. 그것이 그 교회와의 마지막이었다. “목사님 마음 아프게 하고 나가면 화가 있을 것입니다.” 실망하고 돌아서는 이들에게 가족같이 지냈던 성도들의 말은 더욱 가슴을 후볐다. 

안타까운 건 그 후로 정 권사는 개혁 지향의 교회를 만나 숨통이 트였지만 아들들은 교회를 다니지 않게 된 것이었다. 벌써 6년 정도가 지난 일이다. 당시는 정 권사의 마음에도 두려움이 컸다. ‘성도들의 말처럼 혹시,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지? 하나님이 정말 벌이라도 내리시면…?’ 신앙은 형식적인 것을 넘어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라고 믿으면서도 당장 아이들이 교회를 등지게 되자 두려웠다. 아이들이 신앙을 잃어버리고 영원히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지는 것은 아닐까….

“하나님, 우리 아이들 어떻게 해요? 하고 기도하는데 하나님의 응답은 ‘기다려라. 온전한 사랑을 주라’는 거예요. 아이들이 엄마의 권위에 이끌려 20년 간 교회 다녔으니 이제는 저더러 기다리라는 거였어요.”

과연 두려움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내면을 들여다보니 자신에게도 어느덧 왜곡된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자리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이들의 영혼이 잘되기만을 바란다고 말했지만 속으로는 ‘하나님 잘 믿고 복 받기’의 도식 속에 아이들을 억지로 밀어 넣으려 했던 것은 아닌지…. 20년간 함께 교회에 출석하면서 한 번도 아이들의 의사를 묻지 않았다.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내 욕심”이었다는 걸 보게 됐다.

정 권사의 '온전한 사랑 배우기' 걸음은 그렇게 아프게 시작됐다. 하지만 이제는 두렵지 않다. 하나님께서 아이들의 인생길에서 당신을 알게 하시는 날이 올 것을 믿기 때문이다.

도서관에서의 작은 만남에도 진심을 다하고 그들에게 사랑의 온기가 전해지기를 기도한다. 그런 훈련을 거듭할수록 강해지는 건 교회 담장을 넘어 어디든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이라는 믿음, 그런 하나님과의 만남은 정 권사를 한결 가벼운 신앙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그 가벼움은 다른 이들을 품을 수 있는 넉넉함으로 자라가는 것을 느낀다.

다시 떠올려보면, 과거 목사님의 목회 방침을 비판했던 자신의 모습도 그땐 옳다고 여겼지만 결국 “내 안에 사랑 없음”으로 인한 연약함 때문은 아니었는지 돌아보게 된다고.


# 고난을 통과한 가벼움

엄마들과의 독서모임, 11월의 책은 <그리스인 조르바>(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이다. 가진 것 없어도, 실패 앞에서도 삶의 무게를 잊게 하는 조르바의 춤, 그 가벼움은 경박함이 아닌 인생의 큰 고통을 넘어선 자만이 소유할 수 있는 가벼움인 것을 새롭게 보게 됐다.

정 권사는 “사랑이 없는 곳에 위선이 파고드는 건 순식간”이라며 자신의 삶을 ‘진실함’으로 채워갈 수 있기를 소망했다.

도서관을 나와 걷는 아파트 단지, 가을볕에 총천연색의 단풍이 어우러져 찬연하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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