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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의 초기선언처럼 살고 있는가?종교개혁 과제를 모색한다_2
조효근  |  dsr12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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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9호] 승인 2017.11.15  16:5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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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기독교 개혁의 총아 마르틴 루터(1483~1546)의 “종교개혁 500주년”이 단순 통과의례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16세기 기독교의 후예들인 모든 프로테스탄트 형 교회들은 바로 지금부터야, 하면서 새 시대를 향한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1517년 10월 31일, 화려하게 출발한 순수파 수도사 출신 비텐베르크 대학 성서학 교수는 멋모르고 인간의 바다에 뛰어든 셈이었다.

순수한 수도자가 인간의 바다, “인간의 바다”라고 표현해보는 것은 사실상 당시 중세 유럽인들은 그렇게 간단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우직한 작센족 출신 게르만의 아들인 루터의 순수하고 순진한 정서로 볼 때 그가 살던 시대의 신성로마제국은 간단한 나라가 아니었다.

먼저는 유럽의 귀족이요 신사로 자처하는 힘센 고대 로마인 혈통을 가진 이탈리아 순혈과 프랑크 게르만은 또 모르지만 여러 게르만 부족들이 문명의 옷을 입고, 더구나 유럽 최고의 종교인 교황권 가톨릭으로 길들여진 그들은 쉽고 간단한 종류들이 아니었다.

루터는 1521년 보름스 의회장에서 처음 몇 시간 심문받을 때는 심문관인 신성로마황제 카를 5세 앞에 잔뜩 주눅 들기도 했었다. 위압적인 표정의 권세가들, 그들보다 배는 더 무서운 로마 가톨릭 파의 정치 주교들과 감히 얼굴을 들어 마주 눈을 맞출 수가 없었다.

오금이 졸였다. 사타구니가 뜨뜻하게 젖어들 만큼 무섭기도 했었다. 겨우 스무 살짜리 풋내기 황제가 모처럼 위엄을 갖춰 묻는 송곳 같은 추궁에 입은 열려있고 답변할 말도 있으나 입안에서 말이 나오지 않았었다.

참으로 무섭다. 아차, 자칫 실수 한 번이면 보헤미아의 얀 후스처럼 화형장의 재가 되어 사라질 수 있다는 환영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재판정 어느 구석에선가 코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이 루터의 귓가를 스쳤다. 수치심을 느낀 루터는 온힘을 다해 잠시 “정회”를 요청했다.

황제가 루터의 얼굴을 향해 알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지으며 이를 허락했다. “정회”가 아니라 “휴회”였다. 내일 속개한다고 선언했다.

이 놀라운 은총! 루터는 재판이 하루 연기되자 밀물처럼 밀려드는 독일인들의 성원을 받는다. 그 밤, 2차 재판이 열리기 전날 밤 독일의 힘 있는 자들이 걱정 마라! 당신 곁에 우리가 있다며 격려해 주었다.

그 다음날. 전날에 비해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루터 또한 전날과 달랐다. 창밖에 인산인해를 이루는 저 지지자들을 곁눈으로 바라보면서 황제의 명령 “제국과 교황권의 요구에 굴복하라!”에 루터는 불복종을 선언하고 피고석에서 최고 재판장인 황제보다 먼저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렸다.

루터의 이같은 선언은 대결과 전쟁의 앞날을 예고했다. 루터의 위상이 어느덧 달라졌다. 신성로마 황제는 프랑스와의 전쟁에 몰두하느라고 루터 문제를 손쓰지 못했다. 교황도 그의 칙령을 만인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루터가 공개적으로 불태워버리는데도 루터를 잡아서 목을 비틀 힘이 없었다.

 

1. 당시대 루터는 성공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니, 그의 신앙과 신학에 대한 평가가 나오기도 하지만 총괄적인 평가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기초기반이 약한 광산업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서 끝없는 신분상승 갈망 속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루터로서는 개혁자의 길이 쉽지 않았다. 시대의 벽이 그를 억눌렀다. 12세기나 13세기 인물이면 중세의 연장선상에서 개혁자로서 부담을 가지면 되지만 루터의 시대는 중세와 근세의 큰 벽을 넘어야 했기에 충격이 다르다. 여러 형태의 돌연변이적 사태가 그를 당혹스럽게 하기도 하고, 판단보류를 해야 할 만큼한 난제와 부딪치기도 했었다.

그러나, 유럽 프로테스탄트는 마르틴 루터 현상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서 한국교회와 비교할 때 월등한 기독교의 정신가치를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 겸손하고, 창조적이고, 이타행의 삶을 통해서 기독교의 면목을 지켜내고 있다. 바로 이 같은 측면에서 볼 때 유럽 교회는 루터의 신앙과 사상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루터는 유럽에서는 성공한 인물이다.


2. 아시아에서 루터는 상처투성

아시아 특히 한국의 루터는 패배자일 수 있다. 가능하다면 절반승이라는 점수를 주고 싶지만 이 정도의 평가도 전체 동의는 어려울 듯하다.

이 같은 논리 전개는 루터의 선물을 받은 대상들로 기준했다. 아시아 교회의 가치평가가 루터의 인격을 대신한다는 측면에서 좋은 점수가 나오지 않으니 루터의 아시아 기독교 대표성을 가진 한국교회로서는 마르틴 루터에게 죄송하다고 해야 한다.

친구 잘못 만나면 바보 된다는 말이 있다. 오늘 이 시간 한국교회는 유럽이나 유럽에 준하는 미국교회 앞에서 반성하고 뉘우치는 결단이 있어야 한다.

그럼 어떻게 하면 순수하고 용맹스러웠던 마르틴 루터의 21세기 개혁동지가 될 수 있을까?

우선 자기들의 천박한 탐욕을 변명하지 마라. 한 예를 들면, 자식에게 갖가지 교묘한 술수와 잔나비 같은 재주로 세습을 시키는 목사. 그들 부자간 세습 목사들의 가슴속에는 무엇이 도사리고 있을까를 생각해본다.

또, 루터가 개혁의 횃불을 들었을 때 그의 동족 게르만의 앞날을 많이 생각했듯이 한국교회는 루터의 개혁 정신을 이어받아 한민족의 앞날과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주요국가로서 어깨를 겨눌 수 있고, 동·서남아시아까지 크게 한 번 일으켜 볼 포부를 가지려면 가정과 처자식, 가문, 혈통, 육신 탐욕의 벽까지 뛰어넘을 인물들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3. 16세기 개혁 수준을 뛰어넘어야 한다.

지금은 루터나 그 밖의 16세기형 개혁으로는 안 된다. 5백여 년 전, 그때 그 시대의 낡은 부분은 잘라내고 또 그 시대 못다 이룬 신학과 가치 기준을 상승시켜내야 한다

<계속>
조효근/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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