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 18주기 추도일에

▲ 전태규 목사
서광교회 담임

11월 30일은 나의 아버님이 하늘나라로 돌아가신 지 18주기를 맞는 날이다. 나의 아버님하면 떠오르는 것이 있다. 그것은 독특한 영성이다. 나의 아버님의 영성은 기도와 성경 그리고 찬송생활이었다.

얼마 전 감리교 입법의회에서 정진삼 목사를 만났다. 그가 과거 아버님과 한 지방에서 목회할 때 교역자들이 차 마시러 갔는데 아버님이 너무 길게 기도하셔서 눈을 떠보니 다른 사람은 다 가버리고 본인만 있더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온양 어느 교회에서 목회하다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실 때 동네 어른들이 “냉수 한 그릇 붙들고 간절히 기도하시던 목사님 떠나가네!”라고 말하더란다. 나의 아버님은 평생 새벽기도를 즐겨 하셨다. 어머님 말씀에 초기 목회할 때는 새벽에 일어나 세수하고 발도 씻으셨다고 한다. 그러나 연세가 드신 후에는 세수만 하시더라고 하셨다. 기도생활은 늘 무릎을 꿇고 하셨는데 발등이 낙타 등처럼 불룩 튀어나온 것을 하나님 앞에 가면 훈장이라고 하셨다.

또한 성경을 많이 읽으셨다. 우선 성경책이 강단용처럼 크다. 색연필로 은혜 되는 구절은 밑줄 치면서 읽으셨다. 특별히 잠언서를 읽으면 지혜가 생긴다며 날짜대로 한 장씩 읽으라고 하셨다. 또한 최고로 좋아하는 것은 찬송생활이셨다. 어느 찬송이 제일 좋으시냐고 물으면 다 좋다고 하셨다. 그러나 자녀들 기억에는 430장 ‘주와 같이 길가는 것’, 445장 ‘태산을 넘어 험 곡에 가도’, 390장 ‘예수가 거느리시니’, 412장 ‘내 영혼의 그윽이 깊은 데서’, 559장 ‘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를 좋아하셨다, 우리 가족은 추모일이나 아버님 산소를 찾아갈 때는 아버님을 생각하며 이 찬송가를 즐겨 부른다.

그때는 곡도 느리고 무척 지루하게 느껴졌는데 요즘은 아버님에게 임한 그 은혜가 우리 가족들에게 임함을 체험하니 무척 기쁘다. 우리가 자랄 때 힘들었던 것은 가정예배 시간이었다. 아버님은 성격이 느긋하여 언제나 옷 벗고 자려고 하면 성경 찬송가를 들고 가정예배 드리자는 신호를 보내신다.

우리 다섯 남매는 아버님의 이 경건생활을 깨뜨릴 수가 없었다. 우리 형제들과 마음이 통하는 어머님이 언제인가 아버님께 예배 사회를 돌아가며 하자고 제안하셨다. 아버님은 흔쾌히 어머님께 사회권을 넘기셨다. 어머님은 눈을 힐끗힐끗하시면서 우리에게 사인을 보내셨다. 우리형제는 어머님 뜻을 알기에 찬송 몇 장을 부르자면 따라주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아버님을 지루하게 하려고 거듭 찬송을 드렸는데 아버님은 드릴수록 지루함은 없고 새 힘이 넘치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편한 자세로 앉아 드리시더니 나중에는 무릎 꿇고 드리시고 끝에는 성령이 임하셨는지 무릎 꿇은 채로 박수치면서 드리셨다. 어머님 생각에는 아버님을 변화시킬 수 없다고 판단하셨나보다. 이제 당신이 다시 사회보라고 하여 예배시간만 더 길어졌던 추억이 남아있다.

나는 목회하면서 이런 것이 거울이 되어 명절기간에 교우들이 출타해 새벽제단에 자리가 비어도 강단에서 무릎 꿇고 기도드린다. 목회 초기에는 몇 명 모이는 것에 신경 썼지만 요즘은 새벽기도회는 목회자인 나 자신의 영적생활을 위해 기도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평안하다.

요즘 한국교회를 이끌었던 주역들이 현직에서 하나둘씩 물러나면서 이런 모습들이 그리워진다. 어느덧 18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갔다. 돌이켜보니 아버님은 농촌에서, 나는 서울 도시에서, 두 아들은 동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에서 선교사로 사역하고 있다.

쌍둥이 손자들은 현지에서 중국인 유치원을 다니고 있다. 나는 언어가 부족하지만 손자들은 언어가 소통될 것이니 장래에 전도 부흥사 빌리 그레이엄 목사 같이 세계를 다니며 복음 전하는 자가 되기를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있다.

현재 나의 어머님은 88세로 생존해 계시다. 지난 주간은 형님이 칠순을 맞아 가족끼리 행사를 하였다. 즐거운 날이지만 내 마음은 왠지 기쁘지 않았다. 이때 어머님이 한 말씀 하신다.

“어머니가 살아서 자식 칠순 보는 일이 드문 일이여!” 순간 나는 이 말씀이 은혜로 다가왔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 왔다 간다. 오늘같이 살아서 이런 날을 맞았으니 기쁘고 감사한 일이다. 감리교회 목사라는 긍지기 남다르셨던 나의 아버님 뒤를 이어 나는 남은 생애를 부끄럼 없이 살아가길 오늘도 다짐한다.

평생 하늘나라 소망을 가지고 사셨던 아버님이시라 오늘따라 더욱 아버님이 보고 싶고 부르고 싶다.

“아버지! 다시 만날 때까지 주 안에서 편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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