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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 시절의 묵상
편집부 기자  |  dsr12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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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0호] 승인 2017.11.22  11:4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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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8세의 개혁과 로마 가톨릭이나 프로테스탄트 개혁 과정에서 잉글랜드의 1607년 청교도들 몇 명이 조금 자유로운 네덜란드로 갔다가 언어문화의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 뉴잉글랜드(미국)행을 결단, 1620년 메이플라워호에 몸을 싣고 떠났던 날, 그리고 보스턴 플리머드 항에 도착했던 날은 이미 겨울의 초에 접어드는 11월이었다.

그해가 가기 전, 1620년이 저무는 시간에 농사를 지은 것으로 그들은 감사절 예배를 드렸다. 신앙의 자유 하나만을 위해 새로운 출발을 했던 그들의 용기를 떠올려본다.

오직 신앙의 자유 하나만을 지키기 위해 신대륙을 찾아서 대서양을 건넜던 청교도들의 용기를 생각해본다. 그해 11월 플리머드 항 주변의 청교도 이주민촌을 재현해둔 그곳에 가보면 그때 그들 청교도들이 현실의 환경을 이겨내면서 공동체 구성원들의 삶을 지켜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신자의 꿈이다. 오늘 우리는 한국인의 현실에 뛰어들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그리스도인인 나의 책무가 무엇일까를 생각한다.

1천여 년 전, 당나라 후속의 거란족 침략에 시달리던 고려왕조 중엽부터 오늘날까지 크고 작은 외세 침략을 1천 번은 당했다. 1년에 한 번 꼴이었다. 이 같은 조선의 역사현장에 보냄 받은 기독교는 오늘의 대한민국 위기를 어떻게 돌파할까? 아차하면 경제가 20위권 이하로, 또 한 번 아차하면 존속 자체가 의문시 될 수도 있는데 바로 이때 교회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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