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상훈 원장
한국생명의전화

생명문화학회는 11월 10일 동국대학교에서 아주 특별한 추계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주제는 “슬퍼할 수 있는 권리-자살 유가족과 자살예방”이었다. 학술대회에서 이와 같은 주제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이 주제가 학술대회의 주제로 등장할 만큼 크고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는 오랫동안 자살예방 활동에 참여해오면서 종종 사람들로부터 자살예방을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는다. 처음에는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그것은 지금도 변함없는 필자의 신념이다. 그러나 요즘 왜 자살예방을 해야 하냐고 다시 묻는다면 주저 없이 자살 유가족들이 너무 힘들어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이 학술대회의 주제처럼 우리 사회에서 유가족들은 슬퍼할 수 있는 권리조차 없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자살 유가족들은 큰 충격과 슬픔에 직면한다. 이들은 다른 사별보다 더 비통하고 분노와 죄책감, 수치감, 우울감 등 부정적인 감정의 홍수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감정들을 적절하게 표출할 수 있어야 하는데 사회적인 오명에 대한 두려움으로 슬픈 감정을 마음대로 풀어내지도 못하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애도와 지지를 받지도 못한다. 또한 그 자살자의 죽은 이유가 자살자의 가족과 어떤 연관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사회적 편견에 더 위축되기도 한다. 이들 중에는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해 자살로 이어지기도 한다.

통계청 발표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2016년 한 해 동안 13,092명이 자살로 사망했다. 이러한 자살자 수는 인구 10만 명당 25.6명으로 OECD 국가 평균 자살률(12.0명)의 2배 이상이 된다. 그런데 우리가 더 심각하게 주목해야 할 일은 자살시도자는 자살자의 10배 이상이고 자살자 유가족은 자살자의 6배 이상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심각한 정신적 충격과 외상을 경험한 사람들이 8만 명 이상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도 지난 20년 동안 500만 명의 자살 유가족이 발생했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들 유가족들이 슬퍼할 수 있는 권리를 상실한 채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필자는 자살자 유가족을 위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먼저 자살 유가족에 대한 인식개선 활동이다. 이들이 가장 큰 슬픔을 당한 가족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충분히 슬퍼할 수 있는 허용적인 사회 분위기가 조성이 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자살 유가족들에 대한 상담과 치료를 제공해야 한다. 이들의 대부분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경험한다. 이들이 상담과 치료를 통해서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사회 공동체에 복귀할 수 있도록 국가와 사회가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생명의전화에는 ‘희망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는 자살 유가족들을 위한 7회기의 집단 프로그램이 있다. 이것을 통해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분들이 충분히 슬픈 감정을 표출하고, 고인의 죽음을 현실로 수용하며, 고인이 없는 세상에서도 사랑하면서 살 수 있다는 믿음을 갖도록 한다.

또한 전국 곳곳에 자살 유가족을 위한 쉼터를 두어 운영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자살 유가족들 중에는 몸과 마음에 큰 충격이 와서 또 다시 자살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있는 자살 고위험자들이 많다. 이들이 쉼터에 일정한 기간 동안 머물면서 몸과 마음의 쉼은 물론 사회에 다시 복귀하는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끝으로 자살 유가족들에 대한 기독교 신앙적인 지원이 절실하다. 필자는 몇몇 유가족들과 이야기 나누는 과정에서 그들이 가족의 자살로 인해 두 가지 신앙적인 고민을 하는 것을 보았다. 하나는 사랑하는 가족의 자살이 하나님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과 다른 하나는 교회 공동체에서 자신과 가족들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이었다. 그렇다면 교회는 이들에게 어떤 지원을 해 줄 수 있을 것인가. 우리 교회가 앞장서서 그들의 슬퍼할 수 있는 권리를 되찾아주고 하나님 자녀로서의 권리를 누리게 해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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