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형은 목사
말씀삶공동체
성락성결교회 담임

언어는 종종 사전적인 뜻과 다르게 쓰인다. 어감은 시대의 흐름과 연동하여 변화한다. 우리말에서 사건, 사고, 사태는 서로 중첩되는 단어다. 먼저 사전적인 뜻이 이렇다. 사건(事件),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거나 주목을 받을 만한 뜻밖의 일. 사고(事故), 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 사람에게 해를 입혔거나 말썽을 일으킨 나쁜 짓. 사태(事態), 일이 되어 가는 형편이나 상황 또는 벌어진 일의 상태.

사전적인 뜻으로만 보면 사태가 가장 중립적이다. 사건은 조금 더 부정적 상황이 포함된 단어다. 사고는 명백하고 나쁜 일이 발생한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실제 쓰이는 용도는 다르다. 보통은 사건이 중립적으로 쓰인다. 사고는 좋지 않은 일이 발생했을 때 광범위하게 쓰인다. 사태는 명백하게 부정적으로 쓰인다. 

김삼환 목사가 아들 김하나 목사에게 담임목사직을 세습하게 한 명성교회의 경우는 명백하게 ‘명성교회 사태’다. 국민일보 11월 3일자 칼럼 ‘종교개혁 기념일 이후’에서 필자는 명성교회 사태에 대하여 이렇게 썼다.

“일제강점기에 신사참배를 결의한 장로교 총회가 역사가 한참이나 흐른 후에 그 잘못을 회개했다. 동남노회의 결정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그런 전철을 밟을 테다. 이번 사태에 절망할 필요는 없다. 오백년 전의 개혁자들이 개혁을 시작한 상황은 이보다 더 나빴다. 다만 간절한 바람은 한국교회가 이보다 더 나빠지고서야 개혁이 가능해지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다. 종교개혁 기념일 이후의 기도다.”

명성교회 사태가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질이 좋지 않은 까닭이 몇있다. 

우선 무엇보다 먼저 한국교회의 종교개혁 500주년을 완전히 시궁창에 처박았다는 것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동남노회가 세습 청빙을 결정한 지난 10월 24일은 한국교회가 종교개혁 기념 주일을 기다리는 주간이었다. 한국교회는 올해뿐 아니라 지난해부터 계속해서 종교개혁 500주년을 주제로 각종 학술대회와 세미나 또는 집회를 가져왔다.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어떤 존재라는 것을 성경적으로 조금만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종교개혁 500주년과 연관하여 누구나 마음이 절박했다.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는 바닥에 떨어져 있고 교세는 감소하고 있다. 교회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출구를 찾기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명성교회 사태는 역설적으로 ‘종교개혁 500주년의 대미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이럴 수는 없는 것이었다.

명성교회 사태는 한국교회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의 자존감을 짓밟아놓았다. 해석이 거의 필요치 않은 팩트만 보더라도 동남노회의 결정 과정에 금권을 중심으로 형성된 초대형 교회의 막강한 영향력이 음험하게 작동했다. 명성교회가 속한 교단은 말할 것도 없을 테고 한국교회 전체의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에게 ‘너희는 아무 것도 아니야’ 하는 폭언이나 다름없다. 신학자들은 보통 선생들과는 다르다. 성경에 기록된 교사로서 기독교 복음의 본질과 방향을 지키고 끌어가는 복음의 해석자들이다. 통합 교단의 7개 신학교육 기관들을 비롯하여 한국 신학계의 선생들은 앞으로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목회자들은 명성교회 사태에 대하여 어떻게 설명하며 목회할 수 있는 것인가. 

명성교회 사태는 이 땅에 사는 그리스도인의 존재를 철저하게 무시했다. 그동안 김삼환 목사가 한국교회에서 해온 일들, 맡았던 직함들, 사회적으로 활동했던 영역들을 생각하면 자괴감이 말할 수 없이 크다. 그 한 사람이 한국 땅에 사는 그리스도인 전체를 이토록 대놓고 무시할 수 있는가. 목회자나 신학자를 포함하여 모든 신앙인의 근원적 신분은 그리스도인이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따르는 사람들이다. 명성교회의 성도분들을 포함하여 이 땅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발아래로 깔보면서야 할 수 있는 일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생중계 청문회로 진행된 옷로비 사건은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가 꺾이기 시작한 계기였다. 명성교회 사태는 무엇인가? 둘 중 하나다.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서 한국교회의 무기력함이 폭로되거나 한국교회가 복음으로 살아있음이 증명되거나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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