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21세기 이렇게 대비한다 <40-29>

세월이 하수상할 때는 집안 식구들부터 챙기는 법이다. 6.25 전쟁이 난 후 필자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졸업하던 해까지 나머지 3년 동안 교실 없이 오늘은 이 산비탈, 내일은 건너 마을 공회당, 그 다음날은 비가 오니 마을들의 큰 사랑방, 또 그 다음은 벼를 베어낸 논 등을 떠돌면서 3년 동안 내내 강의실 없는 학교생활을 했었다. 지금도 어느 예비군 부대 사격연습장 근처만 지나다가도 총소리가 나면 누군가, 아니면 인민군이 등 뒤에서 기관총을 내게로 쏘는가 싶어서 발을 멈추고 전율하기도 한다….

아무래도 존재확인을 서둘러야 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성도들아, 우리가 주 예수 은혜로 믿어 구원 받는 자들이 되었고, 어느덧 이 강토 산하에는 예수 믿는 자들이 1천만 명이다. 또 그리운 이름, 어쩌다가 사귐이 단절되었지만 가톨릭의 이름으로 사는 나머지 5백만 명이 내 강산 곳곳 처처에서 사는데 외롭다 하지 말고 하늘나라 사람들끼리 사랑나누기에도 인색하지 않아야 하지 않겠나.

자유로운 날들 속에서, 속박이 무엇인지를 도무지 모르고 70여년 평화롭게 살아왔으니 생각 깊은 이들은 자유가 어떤 맛인지를 잘 아는데 우리가 지금 조선조 사회의 반상제도 속에서가 아닌, 그렇다고 일제의 아니꼬운 시대 또한 아니고, 그렇다고 지금 북한의 꼭두각시놀음 같기도 하고, 절대욕망의 폭한의 지배를 받는 북한 땅이 아닌 대한민국에서 무한자유와 풍요를 직간접으로 경험하면서 사는데, 이 꿈 같은 세월이 오래오래 이어지기를 기도하면서 오늘따라 내 마음을 닮은 신자들, 예수의 사람들이 그립다.

성도들아! 기도 많이 하고, 서로 사랑하고 서로의 이름을 불러보기에 게으름 피우지 마라! 13세긴가 싶은데 모로코의 무슬림 이븐바투타는 40여 년 동안 3개 대륙 수십 개 나라를 무전여행, 돈 한 푼 없이 맨몸으로 다녔다는 여행기를 읽어본 일이 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슬람 신자들은 같은 신앙의 사람들이 오고가고 또 여행하면서 나라와 나라를 건너다녀도 크게 불편하지 않을 만큼 나누며 산다더라.

우리나라도 조계종 승려증만 있으면 승려들이 전국 사찰 그 어느 곳이든지 빈주머니로 갈 수 있으며, 가서 먹고 자는 잠자리는 물론 다음 행선지를 향한 여비도 얻어가는 것과 함께 혹시 여행 중 병이 난다 해도 현지에서 치료의 도움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 종교 일반에서 가능했다. 로마 가톨릭은 중세에서 가능했고, 지금도 가능하리라고 본다. 우리 프로테스탄트의 경우도 신자와 신자들, 예수의 사마리아 원칙이면 신자 아닌 사람도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지만 우리 성도들의 경우에도 친구 집 오가듯, 친인척 집 오가는 수준 정도의 신뢰와 그리움을 쌓아갈 수 있고, 일상의 인심을 뛰어넘는 신자들 간의 격(格)을 일궈낼 수도 있다. 무애(無碍) 또는 무연(無然) 지경으로까지 승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 이를 천상의 경지로까지 지향하는 그리스도인 모두의 포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일어나라. 믿는다. 믿고 싶다. 성도들이여!.

/無然

<복음인in 들소리>는 하나님의 교회다움을 위해 진력하는 여러분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동반자로서 여러분과 동역하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함께 하겠습니다. 샬롬!

후원계좌 : 국민은행 010-9656-3375 (예금주 복음인)

저작권자 © 복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