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승호
홍성사 편집장

점심시간에 사무실 근처의 양화진홀(www.yanghwajin.net)에 잠깐 들렀습니다. 재작년 가을 리모델링하여,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선생님의 일기를 위해 마련된 공간을 다시 살펴보았지요. 한 장 한 장 넘어가듯 동영상으로 주요 지면을 소개한 여섯 권의 일기(선교일기 네 권과 육아일기 두 권)에 보이는 사진들은 언제 보아도 가슴 아리게 다가옵니다. 그 옆에 놓인 사방탁자 형상의 진열장에는 선생님의 일기들을 비롯하여 기도수첩과 성경 네 권이 있는데, 요즘 보기 드문 자그마한 크기의 수첩엔 동료 선교사를 위한 기도제목이 가득합니다. 많은 메모와 관련 자료들이 스크랩된 성경책을 보면, 하루에 성경 한 장도 읽지 않고 지나갈 때가 있는 저 자신이 부끄러워지네요.

그 위 벽면에 희미하게 장식되어 있는 선생님의 친필 글씨를 손으로 따라가 봅니다. “예수 인도쇼셔, 어둡고 길 모로니(모르니) 나를 도아(도와)주쇼셔” 이역만리 한국 땅에 와서 ‘어려운 조선말’을 익히려고 애쓰신 선생님의 한결같은 신심이 한 자 한 자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펼쳐진 일기에 보이는 선생님의 글씨는 매우 아름답고 유려한 필치여서, 볼 때마다 감탄하곤 했습니다. 때로 단어나 문장들을 유심히 살펴보며 신경을 곤두세우던, 지나간 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번역문에서 의미가 명확치 않은 구절의 해당 부분을 찾아 동료와 일일이 확인하며 정확한 뜻을 파악하려고 고심한 것이지요. 책이 나오고 뒤늦게 발견된 실수로 몹시 속이 상하기도 했습니다. 더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작업에 참여하신 분들과 지혜를 모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아있습니다.

일기 간간이 보이는 아기 머리카락이며 손바닥 윤곽선 그림을 빼놓을 수 없네요. 아드님(셔우드 홀, 1893~1991)과 따님(에디스 마가렛 홀, 1895~1898)이 태어나서 생일을 맞을 때마다 기념으로 남겨두신 이들 흔적에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어머니의 사랑이 스며있습니다. 한 세기가 넘게 지났지만 빛깔과 무늬가 바래지지 않은 천 조각들도, 그 천으로 아기 옷을 해 입히신 살뜰한 마음씨가 느껴지게 합니다.

1890년 한국에 의료선교사로 오실 때부터 10년 남짓한 기간 동안 남기신 일기에서 저는  당시 한국과 주변 나라들의 또 다른 모습들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숨 가쁘게 이어지는 일상 가운데 피해가실 수 없었던, 너무도 아픈 슬픔의 자취도 큰 울림을 줍니다.  

선생님 일기의 육필 글씨를 모두 활자로 옮기고 우리말로 번역한 김현수 박사는 이 일기가 자신을 위해 100년 전에 써두신 이야기임을 깨달았다며 ‘미리 써두신 하나님의 사랑편지’라고 했는데, 번역 작업을 통해 하나님께서 믿음의 눈을 열어 주셨다고 고백했습니다. 그 사랑편지를 책으로 엮어오면서, 선생님과 함께하신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인도하심을 새롭게 느끼며 묵상할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선생님 일가의 묘비에 새겨진 말씀처럼,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으로 살 수 있는 그 믿음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게 하심에 거듭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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