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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첫 한글 번역자 피터스, 버려지다피터스 목사 기념사업회 회장 박준서 교수, 사명감 갖고 업적 기리고자 나서
정찬양 기자  |  dsr12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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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2호] 승인 2017.12.20  17: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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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어 구약성경 첫 한글
번역한 알렉산더 피터스 목사, 
정통 유대교 가정에서 자라 
히브리어, 라틴어, 희랍어 능통

일본에서 회심 후 미국성서공회 파송,
한국 온 지 3년 만에 시편 한글 번역, 
“늦었지만 그의 업적 기리는 일 해야!”

 

   
▲ 피터스 목사의 묘소가 있는 Mountain View Cemetery 정문 앞에 서있는 박준서 교수.

캘리리포니아주 LA근교 패서디나(Pasadena)시에 있는 공용묘지. 2만평은 족히 되는 듯한 묘지에서 화려한 묘비들을 지나 드디어 당도한 곳, 풀이 우거진 곳을 바라보며 일평생 구약학자로서 후학을 가르쳐온 박준서 교수(피터스목사기념사업회 회장, 전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원장)의 호흡이 가빠졌다.

‘아뿔싸, 민족의 은인을 잊어버린 배은망덕한…’.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우리에게 구약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한글 번역의 첫 계단을 놓은 분의 묘지가 이처럼 아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버려져 있다니.

무연고 묘지인 듯 풀이 우거진 곳곳을 일일이 손으로 헤집어 겨우 찾아낸 건 바로 구약 성서를 처음 한글로 번역한 알렉산더 피터스 목사(Alexander Albert Peters)의 묘소, 그곳에는 작은 묘비조차 없었다.

박 교수는 “은인에게 고마움을 표시할 줄 아는 한국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피터스 목사 기념사업회’를 만들고 그의 흔적 찾기에 나섰다.


# 구약성경 첫 번역자, 피터스 목사는 누구인가?


“성경을 한글로 번역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게 해 준 분들은 영원히 감사해야 할 민족의 은인들입니다. 결코 잊어서는 안 되지요.”

한글 성경의 경우 신약은 스코틀랜드의 선교사 존 로스(John Ross) 목사가 1880년대 중국 심양에서 최초로 번역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바다. 한국교회는 ‘로스 기념관’을 건립해 그의 공적을 기리고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고 있다. 그러나 구약성경의 첫 한글 번역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그것도 다른 번역본이 아니라 히브리어 원어 성경으로 번역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시편을 한글로 번역해 우리에게 구약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첫 돌을 놓은 사람, 그가 바로 최초의 한글 구약성경 번역자인 알렉산더 피터스 목사다. 한국명은 피득. 그는 1895년 한국에 와서 3년간 한국말을 배운 후 1898년 시편의 일부를 우리말로 번역해 <시편촬요>를 출간, 이것이 역사상 최초의 한글 구약성경 번역이었다는 것이다.

피터스 목사, 그는 어떻게 히브리어 구약 원어 성경을 한글로 번역할 수 있었을까?

“알렉산더 피터스는 정통파 유대인으로  어려서부터 철저하게 히브리어로 된 기도문과 시편을 낭송하며 성장했습니다. 그의 능숙한 히브리어 실력과 특출한 어학적 재능으로 구약의 시편은 한국어 운율에 맞는 유려한 우리말로 번역될 수 있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업스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식히시고 자기 일홈을 위하야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피터스가 번역한 <시편촬요>를 토대로 완성된 <개역성경전서> 시편 23편 1~3절)

피터스는 1871년 러시아의 정통파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가정에서 히브리어를 배웠고, 히브리어로 된 기도문과 시편을 낭송하며 성장했다. 그가 자라났던 19세기 말, 제정 러시아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밝은 미래가 보이지 않는 암담한 상황이었다. 또한 유대인들에 대한 차별과 박해가 극심했다. 

“정통파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비교적 좋은 교육을 받으며 자란 피터스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 러시아를 떠나 새롭게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집을 나섰습니다.”

그의 나이 24세 때의 일이다. 우여곡절 끝에 당도한 멀고 먼 일본 나가사키, 다시 미국이나 다른 나라로 가려던 계획이었지만 그것에서는 그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다.

일본에서 한 선교사의 설교에 감화되어 개종을 결심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의 발길을 한국 당으로 돌리게 하셨다. 그때나 지금이나 정통파 유대인이 기독교로 개종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로 그의 가족은 개종한 사람을 집안에서 추방하고, 일체의 혈연관계를 단절시켰다. 기독교로 개종한 후 유대인 본명을 버리고 그에게 세례를 준 미국 선교사의 이름을 따라 ‘피터스(Pieters)’라고 개명했다.

그때 마침 일본에 와 있던 미국성서공회 총무가 피터스의 이야기를 듣고 한국에 구약성경을 번역할 인물이 절실하게 필요하던 터, 성경 번역자로서 적임자라고 판단하고 1895년에 그를 권서(勸書, Colporteur) 자격으로 한국으로 파송해 그는 최초로 구약성경을 우리말로 번역해 준 역사적인 인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피터스는 히브리어는 말할 것도 없고 라틴어, 희랍어와 같은 고전어도 학습했으며, 독어, 불어, 영어, 이디쉬어(Yiddish, 독일어와 히브리어의 합성어)까지 구사하는 어학의 귀재였다는 것이 박준서 교수의 설명이다.

피터스는 서울에 온 후 한국말과 글을 배워 3년 만에 구약성경 중에서 번역하기가 가장 어려운 책으로 알려진 ‘시편’을 번역했다. 또 한국교회에서 즐겨 부르는 찬송가 ‘주여 우리 무리를’(75장), ‘눈을 들어 산을 보니’(383장)의 가사는 그가 시편 67편과 12편을 번역한 것이다.

피터스는 1900년 미국으로 가서 신학수업 후 목사안수 받고 한국으로 돌아와 당시 구성된 구약성경 번역위원회의 위원으로서 중추적 역할을 했고, 1910년 마침내 최초의 한글 구약성경 번역을 완료했다. 또한 구약성경을 가다듬고 오류를 수정하기 위한 성경 개역위원회의 평생위원으로 위촉돼 한글성경 개역작업에 주도적으로 역할 해 개역작업이 끝난 1938년에 ‘개역성경전서’가 출판됐다.

그의 결혼생활은 그리 순탄하지 못했다. 신학교 시절 같이 신학수업 받던 엘리자베스 캠벨(Elizabeth Campbell)과 결혼해 한국으로 돌아 성경번역 사역에 전념했다. 그런데 서울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캠벨은 폐결핵에 걸렸고 결혼생활을 4년도 넘기지 못하고 33세의 젊은 나이에 별세했다.

그 후 피터스 목사는 세브란스 병원에 의료선교사로 와 있던 여의사 에바 필드(Eva Field)와 재혼해 두 아들을 낳았으나 에바 필드도 불치의 암으로 그가 환자를 돌보던 세브란스 병원에서 1932년에 별세했다. 한국 땅에서 사랑하는 사람 둘을 잃은 것이다. 엘리자베스 캠벨과 에바 필드는 모두 양화진 묘역에 안치돼 있다.

피터스 목사는 1941년 70세가 되어 46년 동안 봉사했던 한국을 떠나 도미, 패서디나 시에 있는 은퇴선교사 주거시설에서 여생을 보내다 1958년 87세의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 피터스 목사의 묘소. 잡초와 잔디로 뒤덮힌 묘소에는 작은 묘비조차 없다.


# '민족의 은인' 잊어버린 한국교회


박준서 교수는 최근 몇 년 동안 패서디나에 소재한 풀러신학대에서 연구교수로 있었다. 구약학으로 학위 받고, 평생토록 구약을 공부하고 가르쳐온 그로서는 구약성경을 우리말로 번역해 준 피터스 목사가 마지막 여생을 보냈던 패서디나에서 연구와 강의를 할 수 있게 된 것이 기뻤다.

피터스 목사가 패서디나에서 별세했다면 그의 묘소도 틀림없이 그 근처에 있을 것이라고 여겨  구약학도로서 그의 묘소를 찾아가 추모와 감사의 마음을 표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해 찾아 나섰다. 하지만 피터스 목사가 누구인지 그 이름조차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피터스 목사는 잊힌 존재였다. 그런데 피터스 목사의 묘소를 찾고는 더 큰 충격과 안타까움에 휩싸였다.

“피터스 목사의 묘소를 찾아가는 길에 크고 견고하게 다듬어진 비석이 있기에 살펴보니 아르메니안 성경을 번역한 사람을 기리는 묘비석이었어요. 한국교회는 어째서 구약성경을 우리말로 번역해준 사람에 대한 고마움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까."

박준서 교수는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이른 때”라는 말처럼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구약성경을 우리에게 안겨준 우리 민족과 한국교회의 은인 ‘피터스 목사 기념사업’을 시작해야 한다며 이 일에 앞장서고 있다.

무엇을 해야 할까? 박 교수는 그를 추모하고 그의 공적에 감사를 표해야 한다면서 먼저 피터스 목사의 업적을 기록한 ‘기념비’를 그의 묘소에 세울 것과 양화진에 안장돼 있는 엘리자베스 캠벨과 에바 필드 여사 묘역에도 피터스 목사의 업적을 알리는 공적비를 세울 것을 제안했다. 또한 피터스 목사의 업적을 기리고 앞으로 오는 후세들도 그를 잊지 않도록 ‘피터스 목사 기념 강좌’를 개최할 것과 ‘피터스 성경연구원’을 개설할 것을 제안했다.

박 교수는 “한국교회는 교단 교파를 초월해 그가 번역해 준 성경을 읽으며 성장해왔습니다. 그가 번역해 준 성경을 심도 있게 연구하는 기관을 설립하는 것이 그의 삶과 업적을 기리며 한국교회에 공헌하는 길이 될 것”이라면서 “이 일을 위해 뜻을 같이하는 교회와 성도들의 참여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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