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천년여행 [ 225 ] / 사제 왕 요한 31

▲ 중국 투루판의 이슬람 사원. 기독교의 복음이 전했졌을 땅인데, 지금은 무슬림들이 대부분이다.

⇀  이 소설 역사의 배경

“사제(司祭) 왕 요한”, 영어권에서는 “프레스터 존”(prester John)으로 표기하는 이 이름은 2차 십자군 전쟁기에 십자군 진영에서 흘러나온 용어다.
이슬람 지역의 영웅인 살라딘의 등장으로 탈환했던 성지를 다시 내주고 고전하던 십자군 수리아 지역 주교가 동로마 황제에게 전해 준 “사제 왕 요한” 이야기는 십자군 전쟁이 끝난 후(AD 1291년)에 징기스칸의 몽골군에게 쫓기면서까지 유럽 기독교가 기다리던 동방의 사제(목사)이면서도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왕 요한의 이야기다. 이 왕은 네스토리우스 교단 기독교 국가의 지도자로서 이교 이슬람을 격퇴하기 위해서 곧 지원군으로 온다는 내용이다.
프레스터 존은 중앙아시아에 실제로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카라 키타이(서 요제국)의 야율대석이고, 몽골 초원의 강자인 케레이트 국의 옹칸 토그릴이고, 나이만 국의 왕칸이거나, 이 소설 중심인물로 야율대석의 손자인 “태자 요한”의 이름으로 주인공인 사람이기도 한데, “사제 왕 요한”은 본 소설의 주인공인 태자 요한(야율 요한)으로 설정한 소설이다. 이 소설 후반부에서 태자 요한은 테무진(징기스칸)과 대결하면서 이 소설이 마무리된다.
기독교 독자들이 이 소설의 과정을 지켜보면 기독교는 유럽에만 있지 않고, 아시아에서도 신학이 있는, 세계적인 기독교 시대가 있었으며, 언젠가는 아시아 기독교의 대표성을 가진 내용이 본 소설 “사제 왕 요한”의 삶으로 표현되고 있는데, 이것이 미래 기독교의 큰 자산이 됨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1497년 포르투칼 탐험가인 바스코 다 가마가 대서양과 인도양을 건너 인도에 가면서까지 “사제 왕 요한”을 찾아간다 했으니 유럽 기독교는 아직도 사제 왕 요한을 못 찾은 것일까? 그러나 이 소설은 90% 이상 역사의 내용을 픽션화했다. 여유 있는 이들은 조심스럽게 이 소설을 읽어본다면 좋겠다.

 

태자의 일갈. 투루판 교구장 요한 주교는 잠시 주춤했다. 뜻밖의 반응이었다. 그러나 그는 다시 마음으로 아끼는 태자를 위해 힘써서 자신감 있는 표현을 했다. 그는 태자 자신도 자기 마음을 알고 있으리라 확신했다.

“태자 마마, 저는 마마의 마음을 알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강한 군대도 좋으나 당나라 시대 ‘경교’라는 이름으로 중원 대륙에 예수의 복음을 자유롭게 전파했던 때를 그리워하고 계심도 잘 알고 있어요. 또한 당나라 초기(AD 635년, 정관 9년)에  당시 퍽이나 훌륭했다는 군주인 당 태종을 감동시켰던 알로펜 총주교의 전설 같은 선교활동을 재현하고 싶으신 열망도 알고 있어요.” 

“그래요. 당나라가 망하고, 바로 그때(AD 907년) 저희 야율 아보기 할아버지가 요나라를 일으키셨죠. 저희는 조상의 나라인 요 제국이 국운이 기울어 문을 닫았고, 여진족에게 서북으로 쫓겼으나 카라 키타이 제국을 세웠습니다.” 

“지금 태자 마마가 알로펜 총주교님 시대의 당나라 기독교를 회복코자 깊이 기도하고 계신 줄 저는 알고 있습니다.”

투루판 책임주교의 이 말에 태자는 감격했다. 주교의 손을 덥석 잡고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그래요. 지금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이 심정을 털어놓지 못했는데 주교님은 어찌 내 마음 깊은 곳까지 훔쳐보셨나요. 참으로 놀랍군요.”

“마마, 제 마음도 그러합니다. 저는 사마르칸트 주교 요한 할아버지의 자손입니다. 제 할아버지는 알로펜 총 주교 제자들의 제자로서 당나라 멸망 무렵 사마르칸트와 여기 투르판, 쿠처, 카슈가르, 허탄은 물론 누란, 미란, 둔황 등 서역(타클라마칸) 일대를 이끈 네스토리우스 교단의 신학자요 선교 지도자로 크게 이름을 알렸던 어른입니다. 저는 태자 마마의 모습에서 3백여 년 전 사마르칸트 요한 주교님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성정이 닮으셨다는 생각도 합니다.”

“고맙소. 그런 큰 어른과 저를 비교하시다니요. 그래요, 당나라 전성기에 우리가 활동했던 날들을 회복시켜야 합니다. 제가 왕이 되기 싫은 본심이 바로 우리의 선교지 중국을 다시 찾고 싶어서입니다.”

태자와 투루판 책임주교 요한이 되찾고 싶은 중국은 없다. 당나라 멸망으로 개국한 요나라는 거란인들의 도약이고, 거란을 멸망시키고 일어난 여진족은 말갈인들로 발해 멸망기에 기세를 올렸던 흑수 말갈의 발흥인 금나라이며, 거란과 말갈인 뒤를 이어 초원 각지에 흩어져서 살았던 몽골족이 금나라 후기를 이어받으려고 결집하여 테무진(징기스칸)의 몽골제국을 일으킬 것이다. 중원의 나라 중국 또는 수당 제국은 남송 또 북송의 이름으로 명맥을 이어간다. 그러나 영토는 축소되어 부끄럽다 할지 모르나 한반도의 고려 초중기에 친하게 지냈던 송나라는 중국 문명의 전성기였다.

사제 왕 요한과 투루판 책임주교인 요한은 세계 최강의 당나라 시대의 기독교(경교)를 생각하겠지만 시대는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오늘의 주인공 사제 왕 요한은 때가 되면 황제에 오르기도 하지만 그는 중앙아시아와 카스피해 지경의 최강자로 12-13세기 네스토리안 기독교의 전성기 기반을 쌓는다. 그리고 호라즘에서 징기스칸인 테무진과 겨루다가 카스피해 변경으로 쫓기고, 거기서 AD 1227년 징기스칸이 사망한 이후까지 몽골 제국의 세계적 야망을 지켜본다.

태자는 온밤 다하도록 투루판 요한과 마주 앉아서 옛 당나라의 땅 어느 곳에선가 지금도 살아가고 있을 그리스도인들을 만날 수 있는 방안을 골똘히 의논했다.

“주교님, 안록산의 반란기에 당나라를 도왔던 위구르인 세력들이 지금도 옛 당나라 영토 곳곳에 남아 있겠지요?“

“그렇습니다. 바로 위구르족들과 소그드인들이 서로 동반사업을 합니다. 저도 소그드 상인들을 통하여 옛 당나라 땅, 그러니까 금나라 동북방 지역 남송까지도 정보를 나누고 있습니다. 더디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그런데요, 당나라 영토 안에서 신앙생활했던 우리의 옛 경교(기독교)인들이 도교나 불교와 너무 밀접한 관계에 있습니다. 그들 종교들과 합작을 한다는 말이 전해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소그드 상인들과 함께 못가는 곳이 없습니다.”

“그래요. 우리는 복음전파 활동에 더욱 열심을 내야 합니다. 이곳은 이슬람의 무슬림들도 자기 종교 전파에 열심일 터인데 어떤가요?“

“조심스러워요. 그들을 경계하면 관계가 멀어지고 너무 친절히 대하면 착한 우리 기독교인들을 하속으로 부리려 듭니다. 그들은 무례하고 무모한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태자는 무슬림과 기독교 사람들 관계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카라키타이 영토 안에 이슬람 종교인들이 많고 사마르칸트를 제외한 호라즘 지역으로 가면 그들이 숫자적으로도 많아서 상대하기가 조심스러운 경우도 많다.

다음날 오후 태자는 투루판 지역의 선교 담당자들을 만났다. 3백여 명이나 되는 남녀들이다. 이들 대다수는 소그드인들을 따라서 장삿길에 나서는 일종의 보부상들이 다수였다. 이들은 한 번 길을 나서면 한 달에서 일년 만에 돌아오기도 하기 때문에 부부조로 나서기도 하고 대다수가 다섯 명 내외의 조직 활동을 한다.

“여러분은 우리 키라 키타이의 보배들입니다. 길을 나서면 2, 3일 동안 거처하는 곳은 물론 사람 하나 만나지 못하면서 사람 찾아다니며 우리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니 복이 많은 사람들이오. 내가 태자라고 해서 여러분에게 무슨 교훈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오. 오히려 여러분의 경험담을 듣고 우리 조국을 지켜가기 위한 좋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오늘 저희가 태자 마마를 뵈온다는 것은 미처 생각을 못했어요. 저희가 들은 바로는 마마가 서양의 십자군이 뵙고자 하는 사제 왕이시라는 말을 전해 듣고만 있었는데 지척에서 이렇게 뵙다니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니오. 그러지 마시오. 나는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같이 등짐을 나누어지고 이 산 저 골짜기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예수의 복음을 전하며 안부를 나눈다는 것이 얼마나 복됩니까. 내가 여러분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3백여 명의 청중들이 말을 하지 못하고 박수를 치면서 태자 마마 만세를 부른다.

“여러분 중에는 치료하는 의원들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어느 분이 경험담 한마디 해주시면 내게 도움이 될 듯합니다마는….”

태자가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자리에서 일어나는 중년 사내가 있다. 그는 태자에게 예를 올리고 앞으로 나왔다. 투루판 주교가 중년 사내를 소개했다.

“태자 마마, 이분은 학자입니다. 일찍이 그리스와 페르시아에서 철학과 이슬람 의술과 천문학까지 배웠어요. 쿠처에서 학교와 병원을 운영하다가 멀리 혜택 받지 못한 이들에게 언어와 의학상식을 가르치고 싶다고 순회 선교에 나서서 고생을 많이 하고 있답니다. 이름은 하실라입니다.”

“네, 마마 저는 하실라입니다. 주교님이 하신 말씀은 과분할 뿐이고 저는 예수님을 따르는 작은 일꾼일 뿐입니다. 제가 여행하면서 산지나 먼 곳에 가보면 사람들이 많이 살더군요. 저들에게 제가 가진 작은 지식, 재산, 의학상식, 생활방식과 함께 예수님의 은혜를 나누어 줍니다. 좀 심한 말로는 사람 사는 꼴이 사람답지 못한 경우를 보면 그들을 찾아간 내가 너무 부끄러울 때가 있어요. 그리고 여기 함께 있는 우리의 동지들 대다수가 상인이고, 전도자이며, 의술을 발휘하여 죽어가는 병자를 고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기도해 주면서 병을 낫게 합니다. 저희들이 가서 만나는 사람들이 조금씩 더 행복해지는 것을 볼 때는 오늘 나를 이만큼 만들어주신 카라 키타이 황제와 우리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아, 그럼 여기 모인 우리들이 의사도 되고, 교사와 모범된 살림도 가르쳐 주는 선생님도 된단 말이죠. 내가 이 시간 여러분을 만나면서 하나 생각한 것이 있어요. 소그드 상인들과 함께하면서 우리 네스토리안 선교 본부가 소그드 식 전도자를 더 많이 파견해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부탁하는데, 옛 당나라 영토를 찾아다니면서 당나라 시대 우리 기독교 사람들이 지금 그들 사는 곳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일도 여러분과 의논하고 싶어요. 누가 의견 있으면 말해 보세요.”

“제가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태자 마마께서 당나라 시대의 기독교 신자들 안부를 말씀하시는데 그 부분은 저희 투루판 책임 주교이신 요한 사제께서 저희에게 늘 당부하신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지만 쉽지가 않습니다. 사실 당나라 후기인 당 무종인가요( AD 845년 경). 그때부터는 당나라가 우리들 조상이신 거란국에게 패망할 때까지 너무 핍박이 심해서 불교나 도교 쪽으로 피신한 사람들이 다수였다는 여론을 들었습니다. 또 남아있는 신자들은 신분을 속이거나 신자가 아닌 것으로 하면서 그들 가슴 속에만 신앙을 담아두었다고 말합니다.”

“좋아요. 하실라 사제님. 하실라 사제뿐 아니라 여러분 모두가 사제들이죠. 예수님의 원칙에 따르면 예수와 같은 살림에 동참하는 자들은 모두가 제자요 사제입니다. 사제라는 말이 유럽교회 식 직급인데 성경을 보면 모든 믿는 사람들이 교회요 사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앞으로 제가 제국을 책임지는 황제가 된다면 여러분의 선교와 생활과 직업을 겸하는 방식을 더 크게 장려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조상들이 요 제국을 말갈족인 금나라에 내 준 과오가 있으나 우리는 제국의 흥망까지도 뛰어넘을 수 있는 복음의 세계를 열어가야 합니다.”

“질문 있습니다, 태자 마마!“

모인 자들 중에서 한 청년이 일어났다.

“말해 보시오.”

“네, 태자 마마. 이렇게 쉽고 가까운 거리에서 내 가슴에 자부심으로 남아있는 태자 마마를 뵙다니요. 마마, 제 이름은 석준부입니다. 지금 태자 마마께서 제국을 책임지는 황제가 된다면이라는 그 말씀이 무슨 뜻인가요? 기겁할 말씀이세요, 태자 마마!“ 

조효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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