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 특집 / 대담 - 2017년을 반성하며 새해를 맞이한다

■ 일   시 : 2017년 12월 22일
■ 장   소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 대담자 : 이홍정 총무(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양승록 편집국장(들소리신문)

 

 

- 2017년 한 해도 모든 이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살아냈고, 한국교회 역시도 어려운 사회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지나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세밑에서 되돌아보면 아쉬움과 부끄러운 모습들이 많습니다. 한 해 교계 어떻게 보시는지요.

▶ 2017년은 종교개혁 500주년의 해로 한국교회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수년 전부터 준비했고 변화를 가져오기를 원한 해였습니다. 다양한 기념행사, 연구 활동, 종교개혁 역사 현장 방문, 한국교회의 변혁 과제를 정리하는 등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쉬운 것은 그런 노력과 기대에 비해 연합운동의 난맥상들, 대형교회의 세습, 금권선거, 성 소수자들에 대한 혐오, 배제, 차별의 언행들은 종교개혁 500주년 정신을 퇴색시키는 행위였습니다. 다만 교회는 늘 개혁하는 과정 속에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 시점에서 다시 개혁의 과정을 새롭게 출발하는 한국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이번에 NCCK 총무 취임 후 첫 번째 일정으로 9곳의 지역협의회 현장을 방문하면서 그리스도의 복음의 일꾼으로 예수의 남은 고난에 참여하며 헌신하는 많은 목회자들을 목도한 것은 큰 기쁨이었습니다. 그들의 헌신의 노력이 계속되는 한 한국교회의 희망은 거기서부터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지역 에큐메니즘의 활성화를 위해 더 많은 지역 협의회를 구성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회원교단의 범주에 묶지 않고 에큐메니컬 가치에 함께하기 원하는 교회라면 누구든지 수평적 연대를 통해 활동할 수 있도록 할 방침입니다. 에큐메니즘의 꽃인 지역 속에서 ‘생활형 에큐메니컬’을 꽃피우려 합니다.

 

// 지역교회들의 에큐메니즘 실천 중요

- 한국교회에 신앙의 정형화와 관념화가 뿌리 깊고, 에큐메니컬 운동도 이념적 부분이 강했는데‘생활형 에큐메니컬’을 말씀하시니 참 반갑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 이념의 출발은 현장과 경험이었습니다. 그 이념에 대한 부분들이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서 검증되고 재성찰, 재구성되어야 하는데 그 과정이 미약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동안은 NCCK와 지역 간의 사회심리적 거리감이 컸습니다. 그러나 일상의 삶 속에서 에큐메니컬 복음의 가치가 실현되지 않으면 이념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습니다.

- 사실 민주화운동 이후 NCCK의 역할에 대한 고민과 함께 색깔논란이 있어왔는데요, 에큐메니컬 운동은 무엇이고, 어떻게 실현해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 부탁드립니다.

▶ 저는 에큐메니컬 운동을 세상을 향하신 하나님의 선교, 목회, 정치에 참여하는 교회들의 운동이라고 이해합니다. 하나님의 선교, 목회, 정치에 초대받은 모든 선한 세력들과 함께 연대하는 광의적 의미의 에큐메니컬 운동입니다. 이것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값비싼 일치와 친교의 선물, 그것을 우리가 십자가 아래서 고백하면서 교회 안에 하나 됨을 바탕으로 한 친교를 이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국의 에큐메니컬 운동은 십자가 아래서 값비싼 일치와 친교를 고백하는 ‘마음의 에큐메니즘’이 상실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십자가 아래서의 친교와 일치의 선물을 고백하면서 마음의 친교, 마음의 에큐메니즘을 회복하고 그 안에 담긴 사랑의 힘으로 이 세상에서 펼쳐지는 하나님의 선교, 목회, 정치에 참여하는 일, 이런 광의적·협의적 의미를 총괄해서 에큐메니컬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한국교회 에큐메니컬 운동에서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습니다. 그 중 하나가 독점과 사유화의 문제입니다. 이제 독점과 사유화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고성장이 가능했던 시대에 양적 성장을 목표로 개교회중심주의, 교파중심주의, 성직교권중심주의, 남성중심주의를 기반으로 펼쳐졌던 교회 성장이라는 것은 결국 그 고성장 시대의 패러다임대로 독점과 사유화라는 교회의 삶의 양식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저성장 인구 절벽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독점과 사유화의 패러다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있는 상호 의존성, 자기 비움 등의 영성이 강화돼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십자가 아래서 비워내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는 상호 의존성의 강화를 기반으로 할 때 에큐메니컬적인 목회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한 지역사회에 부름 받은 많은 지역의 교회들이 어떻게 하면 에큐메니컬하게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룰까를 고민하면서 에큐메니컬한 목회 구조를 만들어가는 것이 지역 에큐메니즘을 꽃피우는 기본 과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 한국교회 연합운동체의 수장들에게서 듣기 어려운, 목회와 밀접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롤 모델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는지요?
▶ 이미 한국교회 안에 마을목회론, 작은교회론에 대한 고민과 실천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작지만 건강하게 살아가는 힘을 가진 사람들이 공동의 협력을 도모해 낼 수 있어야만 가능한 목회론이지요. 마을목회론이나 작은교회론은 에큐메니컬적인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실현하기 어려운 부분들입니다. 에큐메니컬을 생각할 때 제가 던지는 질문들 가운데 하나가 어떻게 하면 한 지역사회에 부름 받는 한 교회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지역의 다른 교회들과 함께 성장할 수 있을까, 총체적인 생명자본이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할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한 지역의 교회가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뤘을 때 그 교회와 유기적으로 연관돼 있는 다른 지역교회와 사회가 함께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는 상상력을 이 시대에 보다 적극적으로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그것이 실현된다면 이전에 NCCK에 대한 인식이 많은 부분 변화되고 현장 목회자들에게도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에큐메니컬 운동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 그동안 NCCK가 해왔던 민주화운동이나 통일운동은 한국교회의 어느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중요한 사역이었고 그 사역은 더욱 정교하고 촘촘하게 강화될 것입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지역교회의 기반을 놓쳐서는 안 되고 지역과 함께하는 에큐메니컬 운동만이 지속 가능하다는 것이 절실합니다. 지역교회가 본성적으로 가지고 있는 에큐메니컬적인 속성을 끊임없이 도전하고 계발해 공동의 장을 마련해갈 것입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을 지역교회를 토대로 대중화하고 일상 속으로 끌어오는 것입니다.

- 제대로 구현되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필요하겠습니다.
▶ 그렇습니다. 그러나 지금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입니다.

 

 

// 가톨릭과 기독교의 거리 좁히는 노력

-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종교개혁으로 프로테스탄트가 출발한지 500년이나 지났는데, 가톨릭과의 만남은 여전히 어려운 현실입니다. 한 분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고백하면서 서로 다름을 찾아내는 데 급급한 모습입니다. 신교 쪽에서는 가톨릭이 이단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는 이들도 있습니다. NCCK는 가톨릭과 한국그리스도교신앙과직제협의회(신앙과직제협)를 만들어 만나고 대화하는 일을 해오셨는데요, 신교 안에서 가톨릭에 대한 인식 전환을 위한 노력은 부족한 것 같습니다.

가톨릭과의 관계는 종교개혁 이후에 각 나라별로 자기 나름의 특성을 가진 소위 민족주의와 종교개혁의 종파적 사상들이 결합된 민족국가 시대가 열리고, 그게 절대교파주의 시대가 되는 과정에 종교전쟁이라는 피 흘리는 투쟁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런 유산들로 인해 적대적 관계를 통해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관계성 속에서 가톨릭을 이해하는 인식이 팽배하고, 극우적 근본주의내지는 정통주의가 한국교회의 다수를 이루면서 가톨릭을 정죄하고 개신교와 다른 점을 부각시키면서 이단시하려는 경향들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가톨릭과 개신교의 화해는 세계교회의 일치를 위해서 반드시 건너야 할 역사적 강입니다.

신앙과직제협 운동은 일각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하나의 교회를 만드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의 신앙과 직제의 틀 만드는 것도 전혀 아닙니다. WCC의 정신을 따라 다양성 가운데 일치를 도모하는 일들을 하는 것입니다.

특히 한국교회는 분단 상황에서 냉전 이데올로기가 교회 안에 깊이 내면화되면서 적대적 관계성 속에서 자기 정체성을 찾고 그것을 진리로 전환시키는 것이 습관화 돼 있습니다. 그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입니다.

얼마 전에 신앙과직제협의 세 번째 정기총회가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저도 얘기했지만, 공동의 실천의 장으로 나아가자는 것입니다. 내년이 제주 4.3사건 70주년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총회 때 제주 4.3건의 치유와 화해를 위해 개신교와 천주교가 함께 노력하면 좋겠다고 제안했습니다.

 

// NCCK의 잠재력 폭넓은 소통

- 한국교회는 워낙 보수 성향이 강하고 가톨릭에 대해 그들이 내는 목소리나 방법론이 부정적이고 자극적인 내용들이 많다보니 신자들 역시 그것을 답습하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NCCK가 가톨릭과는 협의기구를 만들 만큼 활발히 하고 있지만 기독교 안에서 보수 진영과의 일치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노력은 등한히 한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

▶ 그것에는 몇 가지 배경 있을 것입니다. 먼저는 NCCK로서는 민주화 통일운동을 전면에 서서 해오면서 대부분의 교회들로부터 일종의 소외를 경험한 나름의 상처가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런 부분들 때문에 한국교회와의 수평적 소통에 움츠러들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교회의 수평적 소통에 힘쓸 생각입니다. 연합운동이 진보·보수의 프레임에서 벗어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NCCK의 큰 장점 중 하나가 장로교, 감리교, 성공회, 구세군, 루터교, 오순절, 정교회, 민족교회 등 세계 기독교의 대표성을 가진 주요 종파의 교단들이 회원으로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 기독교와 가장 폭넓게 소통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고, 실질적으로 그렇게 하는 기구는 한국에 NCCK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NCCK가 가지고 있는 에큐메니컬한 지평 자체가 가톨릭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가톨과의 대화에 손 내밀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습니다. 어느 하나를 배제하고 가톨릭에만 손을 내미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폭넓은 에큐메니컬의 지평, 그리고 세계교회 연합운동에 있어 WCC와 바티칸이 협력하는 것의 선상에서 우리는 한국 내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진행하는 것입니다.

- 앞으로 보수계열의 교회들과도 대화를 통해 균형을 맞춰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그렇습니다. 한국교회를 보면 호수에 비친 자기 형상에 도취돼 있는 듯한 일종의 나르시시즘이 느껴집니다. 그런 속에서 NCCK가 한국교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은 세계교회의 영향력을 한국교회 안에 불어넣는 것입니다. 세계교회의 다양한 존재양식들,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달리하면서도 그들이 어떻게 하나의 신앙을 다른 언어와 예전에 담아 고백하고 있는가, 그런 것들을 잘 소개함으로써 한국교회가 자기만을 바라보는 거울 앞에서 벗어나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 북한 핵, 평화의 영성 과제

- 대사회적으로 볼 때 북한의 핵 문제로 인해 한반도의 평화가 위협받고 있고 세계적으로도 긴장감이 감돌고 있습니다. NCCK는 북한과의 교류와 평화통일 운동에 앞장서 왔는데요. 현재 상황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한국교회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겠습니까?

▶ 한반도의 핵 위기는 단순히 북한의 핵실험만으로 온 것은 아닙니다. 더 근원적으로는 미국이 한반도, 한국과 가지고 있는 동맹, 그 동맹의 배후에 있는 군사복합체계의 헤게모니가 관통되면서 우리가 분단의 사슬에 묶여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원칙으로 주장하지만 북한이 핵보유국이 되려고 하는 저변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역사적 성찰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북한은 한국 전쟁 때도 마찬가지고 끊임없이 핵 위협을 받아왔습니다. 핵 한 방이면 끝나는 것을 늘 위협으로 느껴왔기 때문에 자신들의 안전을 주체적으로 보전하는 유일한 길은 핵보유국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북한의 핵을 동의하지는 않지만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이해하려 하고 북한의 핵만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의 핵 보유국가들이 그 핵 보유국으로서의 군사력으로 이 세계 평화를 얼마나 해치고 있는지 깊은 인식이 필요합니다. 한국교회가 평화에 대한 깊은 각성이 부족하다고 봅니다. 분단 상황에서 많은 크고 작은 위험의 고비들을 겪어 왔기에 이번에도 넘어가겠지, 늘상 있는 일인데 하는 인식론적인 부조화가 우리 안에 어느덧 자리 잡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거야말로 위험한 상태라고 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복음이 지니고 있는 깊은 평화에 대한 영성으로 한국교회를 깨우쳐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촛불 시민 혁명을 통해 국민 주권시대를 열었는데, 저는 그것이 가지고 있는 복음적인 가치와 에너지가 한반도 평화운동으로 진화되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내년은 1988년에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위한 한국교회 88선언을 발표한지 30주년이 되는 해고,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2019년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역사적 계기들을 활용해 평화통일에 대한 일들을 진행할 생각입니다.

88선언 30주년에는 통일에 대한 좀 더 새로운 전망을 담은 문서를 발표할 예정입니다. 2019년 3.1운동 100주년 때는 동아시아평화선언문을 만들어 발표할 계획입니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함께 만들어야 할 것이 동북아시아공동안보체제입니다.  동북아시아의 평화시민들이 연대를 이뤄 동북아시아공동안보체제 만드는 일을 진행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세습-독점과 사유화 공교회성 약화시켜

- 올해 세습 문제가 워낙 교회 안팎의 사람들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습니다. 이 외에도 한국교회는 해결해야 할 어려운 일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한국교회 현실에 대해 총체적으로 말씀 부탁드립니다.

▶ 앞서 말씀드렸듯이 남한사회의 자본주의가 고도성장하는 과정에 남한 교회도 궤를 같이하면서 고도성장을 이뤘고, 그 과정에 독점과 사유화의 삶의 방식이 자리 잡은 것입니다. 독점과 사유화는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교권정치의 강화입니다. 교권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금권선거는 전형적으로 독점과 사유화의 삶의 방식이 복음의 가치를 완전히 매몰시킨 것입니다. 그런 현장들을 목격하면서 교회 안팎에서 이것은 참된 교회의 모습이 아니라는 자조 섞인 이야기들을 하는 것을 봅니다. 많은 구호들을 내세우기 전에 우리가 십자가를 제대로 지고 있는가, 마치 하나님 없는 삶을 사는 것처럼, 회칠한 무덤과 같은 교회로 전락해버리지는 않았는가를 끊임없이 돌아봐야 합니다.

독점과 사유화는 공교회의식을 무너뜨립니다. 공공성과 공교회 의식이 무너진 결과 중 하나가 대형교회의 세습이라고 생각합니다. 특정 교회의 모습만을 비판할 것이 아니라 동시에 우리 교회 속에 그런 것들을 가능하게 만드는 독점과 사유화의 삶의 방식이 있지는 않은지 살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 개개인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운영하는 가게, 기업, 기구에서 독점과 사유화의 방식을 얼마만큼 탈피하고 있는가에 대해 짚어봐야 합니다.

비판만 하고 그들에게 모든 짐을 지게 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거기 있다는, 우리 모두의 현주소임을 확인해야 합니다.

- 한국교회를 보는 사회의 시각 중에는 ‘기독교 몫을 챙기려는 이기주의 집단’이라는 인식이 팽배한 것 같습니다. 올해 이슈였던 종교인 과세 문제만 하더라도 타종교에 비해 기독교가 ‘세금을 기피하려 한다’는 인상이 일반 매체에 비쳐진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대사회적인 문제가 있을 때 교회가 풀어나가는 방식이 기득권을 확보하려는 인상이 짙습니다. 
 

▶ 교회와 국가, 교회와 정권 사이에 관계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성찰해보면 거기에 상호신뢰성이 결여돼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종교인이기 이전에 국민으로서 과세 부분에서 세금을 내는 게 당연하다고 봅니다. 교회에서는 국가가 세무사찰을 통해 교회를 억압할 수 있다는 것을 우려하는 것 같습니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얘기지만 그런 빌미를 교회 스스로 가지고 있다는 고백이기도 할 것입니다. 교회가 재정 사용을 투명하게 한다면 세금을 부과하는 것에 대해 망설일 필요가 있을까요. 다만 한국교회가 가난한 시절부터 만들어온 목회 문화가 제도화되면서 형성된 목회활동비 항목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 여부가 고민일 것입니다.

그런 부분을 고려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다만 그런 것들이 교회로 하여금 이중장부를 만들게 하는 방향으로 가서는 안 될 것입니다.

 

 

// 여전한 냉전적 사고방식

- 동성애 문제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성애자들을 마치 악마 취급하는 모습까지 보입니다. 이런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성소수자 문제는 한국교회가 너무 빨리 결론 내리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1990년 가을에 영국연합개혁교회의 어느 한 지역교회에 예배드리러 갔더니 모든 성도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영국연합개혁교회 모든 성도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설문이었습니다. 설문 내용은 ‘당신 교회의 목사가 동성애자일 경우에 인정할 수 있겠는가?’ ‘동성애자를 장로로 임직시킬 수 있겠는가?’ 등 직제와 관련된 부분을 동성애 문제와 결합시키는 것을 고민하는 단계였습니다. 이미 많은 고민과 논의, 토론을 거치고 그런 질문을 던져야 하는 단계까지 온 것이었습니다.

그 후 2014년에 영국연합개혁교회 총회에 제가 속한 예장통합 교단 대표로 참여했는데 마침 그 총회는 동성애 문제에 대한 마지막 결론 내리는 자리였습니다. 찬반이 팽팽하게 엇갈려 하루를 넘기고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총회장이 자신의 깊은 영적 성찰의 과정을 밝히면서 이제는 우리가 결론 내려야 한다며 동성애자들을 우리 교회의 일원으로 수용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미 1990년 이전에 동성애에 대한 교회적 논의가 시작됐고, 그로부터 30년 가까운 세월 뒤에 결론내리는 성찰과 협의의 긴 과정을 갖더라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동성애 문제에 있어서도 냉전적 사고방식으로 옳고 그름의 프레임을 가지고 너무 성급하게 접근하는 것 같습니다.

동성애 문제는 하나님의 목회 관점에서 바라보고 출발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옳고 그름의 진실공방의 프레임에 걸리면 집단적으로 정죄하게 되고 교회의 정신을 깨뜨리게 됩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목회에서 배제되는 대상이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목회 대상으로 성소수자들을 수용하고, 그 과정에서 그들을 돌보고 나누는 것을 실천하면서 성령께서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그들의 삶을 어떻게 이끄시는지를 면밀히 살피고 사랑의 증거들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 세계는 여전히 종교로 인한 전쟁과 위험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뿌리를 같이 하는 기독교(가톨릭 포함), 유대교, 이슬람의 역할이 중요해 보입니다. 특히 기독교는 하나님의 사람들이라는 자부심이 있는 만큼 더 이상 적대적이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실현하여 세계를 아우를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이 지금보다 조금 서로 우호적인 자세를 가진다면 세계평화에 도움이 될 텐데요. 

▶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 세 종교는 종교사적으로는 아브라함 종교라 해서 뿌리를 같이 두고 있습니다. 그 종교들의 시원을 이루는 조상들의 역사 기록한 것들을 보면 많은 갈등의 장치들을 해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을 기록한 당대의 시대적 상황과 세계관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을 텐데요. 중세로 접어들면서 특별히 기독교가 국가종교로 자리 잡고 소위 크레스텐덤(Christendom, 하나님 나라가 아닌 교회 자체를 세우는 데 목적을 두는 교회)의 세계관에 지배당하던 시대엔 기독교 왕국의 확장을 위해 왕국 안에 유일한 한 종교가 존재해야 하는 개념이었습니다. 유일하게 구원을 베풀 수 있는 제도적 종교로서의 위치가 그때 강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십자군전쟁이나 반 유대주의도 그런 맥락으로 볼 수 있습니다. 

특별히 1,2차 세계대전이 기독교 문명국가라고 자처하는 나라에서 일어나면서 유대인 대학살을 경험하게 되었고. 현대로 들어오면서 냉전체제 하에서는 문명충돌이라고 해서 서구문명과 이슬람의 충돌로 그리면서 이슬람을 악마화 하는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일종의 지배전략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슬람을 테러집단으로 등식화시키는 소위 색깔 칠하기를 한 것이지요.

그런 와중에 1993년 9월 4일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종교의회에서는 ‘지구윤리를 향한 선언(Declaration Toward a Global hic)’을 채택했습니다. 그 핵심 내용 중 하나가 종교 간의 평화 없이는 세계 평화가 없고, 종교 간의 대화 없이는 종교 간의 평화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윤리적 선언은 우리 한국적 상황에서도 반드시 적용돼야 할 것입니다. 다른 신앙 고백을 하는 이웃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종교 간의 대화를 이야기하면 한국교회에서는 ‘저 사람은 종교다원주의자’라고 말합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 신앙의 유일성을 고백하지만 그 신앙의 유일성이 사회적·문화적으로 표현될 때 꼭 배타적 언어로 표현되어져야 하는가,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 교권정치 연장선상의 연합운동은 한계

-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연합기관의 난립이 한국교회의 고민거리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서로 색깔을 구분하기 어려운 단체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는데, 어떻게 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할까요?

▶ NCCK의 역사는 1924년 10월 24일 장로회, 남·북 감리회, 장·감의 여섯 선교회, 성서공회, 중앙기독교청년회 연합으로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가 창립되면서 시작됐습니다. 분단 이후 군사정권 말기부터 정권들이 한국교회를 진보와 보수의 프레임으로 갈라내려는 시도를 했고,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는 그런 이분법적 프레임의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만들어졌습니다. 그 이후에 한기총이 갱신의 노력을 하는 과정에 생겨난 분열의 상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번에 한국교회 대부분의 교단들이 참여하는 기관이 만들어진다고 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기고 NCCK도 그 기관과 협력의 틀을 가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조차도 되지 않는 것을 보면서 실망감이 컸습니다. 보통은 많은 숫자가 모여서 연합기관을 만들면 대표성을 갖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것은 굉장히 낮은 단계의 연합운동 모습입니다. 교권정치의 연장선상에서의 연합 운동은 늘 치명적 한계를 지녀왔고, 분열의 씨앗을 잉태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마음의 에큐메니즘’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 새해 한국교회 전망, 어떻게 보십니까.

▶ 마치 체로 흔드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지난해 격랑의 세월을 지냈고 앞으로도 지내게 될 것입니다. 한반도의 분단 상황이 극복되고 평화가 정착되기 전까지 격랑의 파도는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격랑의 파도는 치지만 깊은 강처럼 흘러서 민족과 사회에 한국교회가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정리/정찬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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