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명애
화가. 예예동산 섬김이

우리 기독교인들은 구원의 은혜를 깨달은 순간부터 언제라도 떠날 준비를 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감리교 목사였던 할아버지(유두환 목사)는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은 세 가지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늘 가르치셨다.

첫 째는, 복음을 증거할 준비, 목사였던 할아버지는 설교 부탁을 받으면 곧 말씀을 증거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두 번째는 이사 갈 준비, 자리를 옮겨야겠다고 판단되면 사흘 안에 깨끗이 청소해 놓고 떠나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그리고 세 번째는 죽을 준비, 하나님이 부르시면 기쁨으로 곧 천국으로 달려갈 수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이 가르침은 우리 아이들을 기를 때도 그대로 전수되었다. 주일학교 고사 시절 초등부 어린이들 앞에서 “지금 죽으면 천국 갈 수 있어서 기쁘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라고 치기 어린 질문을 한 일이 있었다. 눈을 감은 오십여 명의 어린이들은 잠잠히 앉아있었는데, 2학년짜리 내 아들이 주저 없이 손을 번쩍 드는 것이었다. 그 정도로 우리 집안 사람들은 세뇌교육이 철저히 된 셈이다. 

우리 집안은 한국동란 중에 평양에서 빈손으로 피난 내려와서 삶의 악조건 속에서 고생을 할 만큼 했는데도 모두 90살이 넘어 세상을 떠난 장수 가족이다. 목사 할아버지는 독립유공자로 왜정치하에서 감옥살이하고 모진 고문을 당하셨는데도 92세까지 사셨고, 사모였던 할머니는 굶기를 밥 먹듯 했고 아들 여섯을 먹여 살리느라 정말 모진 고생을 하셨는데도 98세까지 사셨다.

아버지 형제 여섯 분도, 또 그 부인들까지 장수하셨다. 현재 생존해 계시는 큰 어머니께서도 올해 100세이시다. 언제나 떠날 준비가 되어있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부르시기 전에는 이 생의 자리를 떠날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이런 혈통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100세까지 살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다. 장수하는 것은 분명히 축복이지만 아름답고 완벽한 천국을 꿈꾸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을 떠나 주께서 계신 천국에 가는 것이 더 큰 축복임을 알고 소망하고 있다. 보통 60세쯤이면 자식들도 다 장성해서 스스로 독립하는 것이 정한 이치이다.

현직에서도 정년퇴직한 후, 약 40년은 매인 것 없이 온전히 자기 주도적으로 삶을 운영해 나가야 한다. 나도 이제 70세 중반에 들어서보니, 삶의 가장 큰 숙제는 이 40년 가까운 후반기 삶을 어떻게 아름답게 살고 멋지게 마무리해갈 것이냐이다. 

92세에 삶을 마친 나의 어머니는 교회 장로로 모두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분이었지만, 나에게 “지루하다. 시간을 잘 채우는 것이 요즘 내 숙제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화가였던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보름 전까지 말기 암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붓을 놓지 않으셨다. “어머니 힘들지 않으세요? 그냥 누워계시지 그러세요”라고 말하는 나에게 “아무것도 안하고 누워있으면 아픈 생각밖에 할 게 없구나. 시간을 잘 보내기 위해 이렇게 계속 그림을 그린단다”라고 말씀하셨다.

어머니가 남기신 그림들이 얼마나 밝고 아름다운지 작년에는 그 중 소품만 100점을 추려서 한섬재능나눔장학회(춘천에서 재능 있는 청소년을 돕기 위해 설립된 장학재단) 장학기금 마련을 위해 세 차례의 자선전을 가졌다. 그 결과로 약 2천만 원의 장학기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어, 장로님은 돌아가신 후에도 좋을 일은 하시네”라고 친지들은 놀라워했다. 

춘천 금병산 기슭에 옮겨와서 나는 쉼과 기도의 집 예예동산을 섬기면서 목요일을 그림 그리는 날로 정하고 이곳저곳에서 모여든 중년 이후의 부인들에게 그림을 가르친다. “왜?” “그림은 그려서 무엇 하려고?”라고 물을지도 모른다. 예쁜 카드도 그리고, 가족의 초상화도 그리고, 이사 간 자식들의 새집에 할머니 작품으로 밝은 꽃 그림도 걸어주는 행복한 노년으로 사람들을 인도해 주고 싶어서 나는 이 일을 하고 있다. 그림을 그리면 잘 그리던 못 그리던 참 시간이 잘 흐른다. 그리고 완성된 그림을 보면, 그 성취감 때문에 기분이 참 좋아진다.

예술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그들의 영혼이 창조주 하나님의 세계를 공감하며 찬송할 수 있게 할 수 없다면 그 예술은 사탄에게 팔린 나쁜 예술일 것이다. 백세까지 멋지게 살 수 있는 가장 건강한 길은 예술을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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