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천년여행 [ 228 ] / 사제 왕 요한 33

▲ 중국 돈황의 시민들이 관광하는 모습.

투루판의 요한 주교는 잠시 망설였다. 무엇을 부탁한다는 것일까?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자비량 선교행을 떠날 터이니 일행들을 선정해 달라는 것일까, 혹시 을지 고 총사령관의 추궁이 있을지 모르니 뒤처리를 부탁한다는 것인가? 모처럼 힘들게 집합한 전도자들에게 추가 교육을 부탁하는 것일까? 순간, 태자는 아직은 어린 나이인데 보부상 행렬에 뛰어들면…, 저 사람이 누군가, 카라 키타이의 운명을 양 어께에 짊어진 황태자인데 내가 같이 흥분하고 마냥 좋다고 할 시간이 아닌 듯 했다.

“마마, 오늘 일과는 일단 여기서 마무리 하시고 저녁에는 저에게 조금 시간을 주셨으면 하옵니다.”

주교의 요청을 들은 태자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주교께서 제게 주실 긴한 말씀이 있어 보이는군요.”

“아, 아닙니다. 마마의 앞으로 계획에 대해서 조금은 듣고 싶어서입니다.”

저녁 시간, 태자는 주교의 개인 기도실에서 요한 주교와 마주 앉았다.

“마마, 마마께서 자비량 선교에 나서시면 빨리 돌아오셔도 반 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데 혹시 왕성에서 급한 전갈이라도 온다면 어찌 합니까? 아까는 멋모르고 박수만 쳤는데 국사에 관한 일이니 생각만 해도 등골에서 식은땀이 흐릅니다.”

“주교님답지 않게 무슨 말씀이세요. 무슨 급한 일이라는 겁니까?”“마마, 세상일이란 모르는 것입니다. 만약, 만약에 말입니다. 현 황제께서 보위를 지킬 수 없는 돌발 사태라도 생긴다고 가정해 보세요.”

“허어 주교님, 겁도 참 많으십니다. 왕궁에는 황제 말고도 나라를 지켜갈 지도자가 있습니다. 나다니는 동안 충분히 대비를 해놓으실 분입니다. 그런 걱정 마세요. 그보다 저는 보다 근원적인 고민이 있어요. 사실 우리 영토 내에는 이슬람 종교의 무슬림들이 상당수 있습니다. 지금은 별 탈 없지만 앞으로 중앙아시아 일대는 무슬림이 우리보다 더 깊이 뿌리내릴 수 있습니다. 어디 중앙아시아뿐인가요. 온 세상 그 어디나 기독교가 있는 곳 가까이에는 이슬람 종교가 갈 길을 막아서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습니다.”

“꼭이 이슬람만일까요? 그 밖의 종교들 아시아에서는 불교나 중국의 사상과 종교들이 우리에게는 큰 짐이 아닐 수 없어요.”

“그래도 저는 이슬람과의 관계가 걱정입니다. 저와 함께 다니는 카라진 멤버들 중에는 십자군 전쟁을 경험한 십자군 전사들이 다섯 명이나 함께 있어요. 저는 기회만 있으면 그들과 유럽 기독교에 대해서와 전쟁터에서 경험한 이슬람군에 대해서도 공부합니다. 유럽 기독교와 이슬람의 집요한 충돌은 심상치 않아요. 그것이 우리의 터전인 중앙아시아는 물론 아시아 전체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마마, 소인 참으로 마마의 선견지명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입니다. 저는 아직 거기까지는 고민하지 못합니다.”

태자는 빙긋이 웃으며 투루판 무슬림 이야기를 꺼냈다. 이곳 투루판에 무함마드 제자가 온 시기의 이야기이다. 투루판 교구 초기, 아직은 교구 형성이 안 되고 당태종의 부름을 기다리던 알로펜 주교 일행이 무함마드의 일곱 제자를 이곳 투루판에서 만난 이야기이다. 그 시기가 AD 633년쯤일까? 알로펜 주교가 당나라 입성이 AD 635년이었으니까 그 정도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633년과 이슬람 설립자 무함마드와 그의 제자 관계는 어떤가. 무함마드는 AD 632년에 사망했다. 그러니까 이슬람이 아라비아 메카나 메디나에서 포교 활동할 때 무함마드의 핵심제자들이 당나라 문턱인 투루판에 와서 포교를 시작했고, 기독교의 당나라 선교의 속도 가까이에 와있었다는 점이다. 이슬람의 무서운 속도감이다.

“당시 이곳 투루판에 나타난 그들 7명은 무함마드의 수제자급이었다는 기록을 보았습니다. 신출귀몰일까요. 그들의 자기 선전속도의 특성일까요?”

“그렇군요. 마마께서도 아시겠지만 AD 755년 당나라 고선지 장군과 이슬람 군대가 우리나라의 수도 사마르칸트 가까운 탈라스에서 전쟁을 했는데 그때 당나라가 이슬람군에게 패전하면서 벌써 지금으로부터 5백여 년 전에 이슬람은 중앙아시아 일대를 자기네 영토처럼 지배하기 시작했습니다. ”

“하지만 감사하게도 옛 당나라 땅이나 몽골 초원의 지배국인 케레이트나 나이만국, 머지않아 우리의 위협세력이 될 테무진(징기스칸)의 몽골이 우리 네스토리우스 파 기독교를 거의 국교처럼 신봉하고 있고, 우리가 중앙아시아 일대에서 지도국가로 자리를 굳혀 가면 무슬림들에게 뒤지지 않겠지요.”

“그렇습니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입니다.”

“맞아요. 주교님! 아시아 일대의 우리 기독교가 기독교 정신에 충만하고 모범적인 자세를 유지하기만 하면 됩니다. 제가 그래서 주교님의 지혜를 지금 배우고자 합니다.”

“마마, 저는 부덕한 늙은이입니다. 마마의 총명한 신앙과 그 용기에 비하면 부끄러울 뿐입니다.”

그들은 밤늦게까지 서로의 지혜를 빌리기도 하고, 특히 태자의 자비량 선교행에 대해서도 의논했다.

다음날, 태자는 카라진 전사들을 3개 팀으로 만들었다. 투루판 주둔군, 누란과 둔황의 군사들, 허탄의 군사들과 연계망을 유지하며 태자의 신변을 지키는 전략을 세우고 태자는 다섯 명의 잽싸고 번개 같은 특등 용사들을 대동하고 보부상 대열에 합류했다. 하서 회랑의 티베트 지경을 돌아서 난주까지 다녀볼 요량이었다.

짐승 가죽으로 만든 외투를 걸쳐 입고 등짐을 진 태자 요한은 보부상 대열에 섞여서 걸었다. 다섯 호위병 전사 중 두 명만 태자의 소그룹 일곱 명 속에 있고 셋은 다른 소그룹에 각기 한 명씩 끼어들었다. 이 같은 배치는 태자를 보호한다는 그들 나름대로의 장치인 듯했다. 그들 전체 삼십 명은 마차로 둔황까지 이동했다. 둔황 가기 전 하미에서 마차를 멈추고 쉬어가기로 했다.

투루판 서북방에서 계속 이어지던 천산산맥의 긴 흐름이 잦아들면서 동북방 저 멀리에서부터 이어지는 고비사막의 분위기가 맑은 날도 희뿌연 안개비가 서려 있는 듯했다. 그러나 하미는 지중해변 다마스커스에서 바그다드를 지나 사마르칸트로 이어지는 동서 문명의 대동맥을 간단없이 이어주는 대상들의 줄기찬 대열이 오늘도 이어진다.

태자는 선 자리에서 주변 사방을 우러르면서 세상이란 간단치가 않다는 막연한 생각을 해본다. 수백 마리의 낙타 대열, 거기에 싣고 오는 카라반들의 화물 목록들은 또 얼마일까. 십자군 병사에서 사제 왕 찾기에 동원된 사람들 다섯 용사들, 그들 중 시몬과 파울로가 곁에서 태자의 좌우를 수행했다. 시몬은 수도사 자격이고 파울로는 성경에 나오는 예수 사상가이다. 그는 파울로 같은 이론가가 되고 싶어서 그리스 철학은 물론 어학에 있어서도 헬라어는 기본이고 아람어, 히브리어, 아랍어, 이집트어까지 출중한 어학실력을 갖췄다.

“주인님, 투루판에서 ‘석부’로 호칭하라 하셨으나 그보다는 주인님이 좋습니다. 주인님은 또 주님도 되거든요. 히브리인들은 ‘주님’을 예수님 주님 또는 지도자나 최고의 어른을 호칭할 때 사용합니다. 마마는 우리들의 주이시니까 이렇게 불러도 되지 않겠나이까.”

“아무렴, 마음대로 하시오. 무슨 말이 하고 싶소. 저기 저 낙타들, 한 3천 마리는 되지 않을까. 참 많구나.”

“그래요. 카라반들 몇 개 그룹에 한꺼번에 어우러지는 시간인가 봅니다.”

“매일같이 저 많은 낙타들이 사람과 물건을 유럽에서 가져오고 장안에서 동방의 물건을 싣고 유럽으로 가지요.”

“주인님, 오늘따라 왜 그러시는가요. 저 정도 대상들이 사마르칸트에서는 매일 볼 수 있는 수준인걸요.”

“그렇지. 우리가 저들 동서 문명의 중간관리를 하지요. 그래 그런데 내가 지금은 엉뚱한 생각에 잡혀 있나보구먼.”

태자 요한은 투루판 요한 주교와 대화 나눌 때 이슬람 사람들이 기독교의 갈 길을 훼방 놓는다는 압박감을 느꼈었다. 그들은 늘 기독교 사람들 곁에서 기독교 사람들의 언행을 지켜본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자기들 곁에 무슬림들이 함께 어울린다고 해서 불편을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들을 책임 맡은 자들이 기독교인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해질녘 일행은 저잣거리를 지나서 한적한 노점상가들 중 한 방에서 저녁 요기를 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카라반들이 몰려드는지 시장거리가 북적인다. 고함소리도 나고, 술주정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태자 일행이 머무는 방 옆에 카라반의 조수 급쯤 되는 소년티가 물씬 나는 젊은이들 셋이서 자리를 잡았다. 그들은 장거리 카라반 여행에는 처음 온 사람들 같았다. 파울로가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다마스커스에서 왔어요. 아저씨는요?”

“우리는 사마르칸트에서 난주까지 가는 장사꾼들이네. 다마스커스는 지금도 전쟁 중이던가요?”

파울로의 익숙한 아랍어에 그들은 잠시 주춤하더니 방안 일행을 힐끗 둘러보면서 말했다.

“전쟁이 곧 끝날 것 같더군요.”

“왜요. 한쪽이 기울던가?”

“글쎄요. 이슬람군에 훌륭한 장군이 등장해서 그렇다더군요.”

파울로뿐 아니라 태자가 눈이 휘둥그레진다.

“파울로, 저 청년들 우리와 합석시키고 저녁식사 우리가 대접하면 어떨까?”

파울로가 다마스커스 세 소년에게 합석하자고 요청했다. 그들도 이에 응해 방안에는 새로 음식을 청했다. 넉넉하게 상을 마련토록 태자가 요구했다.

“이슬람군에 훌륭한 장군이라 했던가요?”

이번에는 시몬이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저희는 장안까지 긴 행로가 처음입니다. 어른들과 함부로 이런 말을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고요.”

“아무렇지 않아요. 우리는 보따리장수들일세.”

태자가 끼어들었다. 그들은 태자의 얼굴을 힐끗 살피는 듯하더니 말했다.

“살라딘 술탄인데 유럽의 십자군들도 그를 존경한다는 소문이 있더군요.”

“저런, 전쟁터에서 미담이 오가는군.”

태자는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매우 기분 좋은 표정으로 말했다.

“청년들, 오늘 내가 한턱 낼 터이니 실컷 먹고 마시면서 그 재미있는 전쟁이야기 좀 더 들려주고 우리와 친구합시다.”

자리에 함께한 이들이 손뼉 치며 십자군 전쟁이야기로 밤을 지새울 참이었다.

조효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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