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째 매주 수요일 이웃 섬기는 영서교회 ‘사랑의 식탁 나눔’

노숙인·어르신께 매주 

수요일 점심식사 대접하며 
사랑 나눠

“일을 가능케 하시는 분은 
하나님”인 것 확인하는 현장

▲ 영서교회 사랑의 식탁 봉사자들.

 

매주 수요일 이웃을 위해 차려지는 ‘사랑의 식탁 나눔’, 식사를 준비하는 이들은 “밥 한 끼 같이 먹는 것 뿐, 별 것 아니다”라며 손사래지만 16년째 쉼 없이 이어지는 식탁 나눔을 보며 주변에서는 ‘기적’이라고 말한다. 서울시 영등포구 문래북로의 영서교회에서 일어나는 ‘평범한 기적’의 현장을 찾았다.

# 평범한 기적(?)

매서운 추위로 코끝이 시린 날, 영서교회 지하 1층에 위치한 주방에서는 음식을 만드느라 더운 열기로 훈훈하다. 오늘의 메뉴는 돼지 뼈를 넣고 푹푹 삶아 만든 김치비지찌개에 계란말이, 물미역과 초장, 잘 익은 갓김치. 맛있는 냄새에 군침이 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음식을 준비하는 손길은 분주해진다. 열 명 남짓의 일손으로 300여 명의 식사를 준비하다보니 긴장을 늦출 수 없다. 그래도 손발이 척척 맞아 무엇 하나 부딪치는 소리 없이 일사불란한 모습, 오랜 시간 함께해온 연륜이 묻어난다.

드디어 2층 예배당에서 자발적 참여로 진행되는 찬양시간이 끝나고 사람들이 몰려들자 이번에는 담임인 남상국 목사가 나섰다. 남 목사의 “어서 오세요. 이쪽으로 앉으세요” 하며 인도하는 말에 따라 자리를 잡은 이들의 앞에는 김이 모락모락, 소복이 쌓인 밥과 큰 그릇에 가득 담긴 찌개가 놓이고 반찬들로 한 상이 잘 차려졌다. 배식 때는 힘이 센 남자 성도들이 합류해 쟁반을 나른다.

배식이 끝나면 함께 행 31:30을 암송하고 ‘예수님 찬양’을 힘차게 부른 후 식사한다. 제법 양이 많다 싶은데 어느새 빈 그릇들이 주방으로 향한다.

요즘 밥 못 먹는 사람 어디 있다고, 굳이 밥일까?

“어르신들이 여기 오시는 이유는 꼭 밥 때문만은 아닙니다. 늙는다는 것 자체가 외로움인데 한 끼 식사를 함께하는 것, 함께 먹고, 함께 웃고 대화 나누는 이 시간을 통해 조금이라도 외로움을 달래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곳에 가면 나를 위한 따뜻한 식탁이 마련된다는 것, 함께 식사할 수 있다는 것, 영서교회가 16년째 지켜온 약속이다. 공휴일과 명절 연휴가 겹친 날만 제외하고 어김없이 수요일 점심에 ‘사랑의 식탁 나눔’을 마련, 정성과 손맛이 배인 음식을 대접 받고 돌아가는 이들의 얼굴엔 만족감으로 가득하다.
 

▲ 남상국 목사

# 나눔, 교회가 할 일

‘사랑의 식탁 나눔’은 남상국 목사가 부임하면서부터 시작됐다. 교회 입당을 마친 후 아름다운 예배당에서 우리끼리만 잔치하지 말고 이웃과 나누자는 여전도회 회원들의 뜻이 모아졌고, 2003년 남 목사가 부임한 후 여전도회의 제안에 “교회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목회방침과 맞아떨어져 시작된 것이다. 교회는 예산의 40%를 선교비와 구제비로 사용할 만큼 나눔에 적극적이다.

처음에는 영등포 지역의 노숙인들을 대상으로 했다. 10년쯤 지나니 노숙인 쉼터가 마련돼 그 후로는 지역의 어르신들을 섬기게 됐다. 교회로 올 수 없는 아파트 경비원들이 “우리에게도 가져다주면 좋겠다”는 요청에 직접 도시락 배달을 나간다. 배달요원(?)들은 한겨울에 음식이 식을세라 점심시간에 맞춰 40여 개의 도시락을 들고 뛴다.

‘사랑의 식탁 나눔’에서 대접하는 ‘복날의 전설’은 유명하다. 복날이면 늘 삼계탕을 끓이는 게 소문이 나 그날은 600명 정도가 몰려 상을 세 번은 봐야 한다. 한 번은 삼계탕 때문에 부목사가 노숙인에게 멱살잡이 당한 일도 있었다. 복날에 식사 대접 받은 한 노숙인이 다른 이에게 “영서교회 가면 오성 급 호텔식으로 준다”고 한 말을 듣고 와서는 왜 반찬이 형편없냐며 난동을 부린 것이다. 그런 일이 있을 때면 교회 안에서도 “왜 저런 사람들에게 밥을 줘야 하느냐”는 말이 나오기도 하지만 남 목사는 “예수님은 우리 같은 죄인들을 위해 돌아가셨다”며 다독였다.

요즘 교회들마다 모이는 것이 참 어렵다고 하는데, ‘사랑의 식탁 나눔’을 16년이나 이어온 비결이 뭘까? 질문에 남 목사는 “성도들의 사랑과 헌신이 아니면…”이라며 주방을 향해 고마운 시선을 보내고, 봉사하는 이들에게 물으니 “목사님께서 가르치신 대로 할 뿐, 내가 기쁘지 않으면 못 할 일”이라며 서로 다른 말을 하는데, 한 가지 공통된 대답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이다.

성도들 중에 복날이면 삼계탕 닭을 사주기도 하고, 김장김치를 후원하고, 외부에서도 좋은 일 한다며 지원이 들어오기도 한다. 교회 예산은 1천만 원인데 실제로 연간 ‘사랑의 식탁 나눔’에 사용되는 돈은 3~4천만 원 정도다. 외부 지원의 경우 돈으로 받지 않고 쌀이나 고기 등 물건 파는 업체와 직접 연결해 투명하게 진행되도록 한다.

남 목사는 “흉내 내서는 6개월도 못 갈 일”이라며 중단 없이 이어온 지난날을 돌아보며 기적이라고 회고했다. 실제로 주변의 교회들에서 식탁 나눔을 시도했지만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우선 일손이 부족하고 재정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 영서교회 '사랑의 식탁 나눔'은 준비하는 성도들이나 대접받는 이들이나 모두 기쁨 가득하다.

 

# 한 끼 식사, 사랑을 채우다

영서교회 ‘사랑의 식탁 나눔’을 지켜보니 예수님의 포도원 품꾼 비유가 떠오른다. 매번 메뉴를 고민하는 이성길 권사(64)를 중심으로 재료를 준비하고 다듬는 이들은 화요일부터 식탁 나눔을 위해 움직이고, 수요일 아침 일찍부터 음식을 준비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어느 정도 주방의 바쁜 일이 끝난 후에 나타나는 이들도 있다. 그래도 누구 하나 “왜 늦었느냐”며 따져묻지 않는다. 80대 권사님까지 참여해 마치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모두가 형편껏 헌신의 손길을 보탠다. ‘사랑의 식탁 나눔’은 돈이나 사람의 힘이 아닌, 일을 가능케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어르신들의 식사가 끝나면 비로소 봉사자들도 허리 펴고 식사를 나눈다.

메뉴를 담당하며 주방을 진두지휘하는 이성길 권사는 “하나님은 나만 사랑하시는 줄 알았는데 모두를 엄청 사랑하신다. 하나님의 사랑 앞에 인간적인 높고 낮음은 아무 소용없는 것”이라며 ‘사랑의 식탁 나눔’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새롭게 깨달았다고 했다. ‘사랑의 식탁 나눔’ 섬김을 그만두려 할 때 도무지 잠도 잘 수 없고 먹지도 못할 만큼 마음이 괴로웠던 것. 다시 섬김을 결심하자 마음이 평안해졌다. 하나님은 교회가 이웃 섬기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걸 그때 깊이 깨달았다. 매주일 식탁 준비하기가 힘들지 않느냐는 말에 이 권사는 “먼지 같은 나를 친구 삼아 주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데 힘들 것이 없지요”라며 밝게 웃는다.

방경희 권사(61)가 ‘사랑의 식탁 나눔’ 봉사자들을 소개하는 한마디, “다들 미쳤어!” 그 소리에 왁자지껄 웃음이 터지고 여기저기서 “맞아, 미쳤지~~”하며 박장대소.

“요새 굶는 사람은 없죠. 그러니까 음식에 더 신경을 써요. 동짓날엔 팥죽 쑤고, 설날엔 떡국을 끓이는데 한우 사골을 며칠 전부터 고아 국물을 내어 대접해요. 글쎄 예전에는 만두를 빚어 만둣국을 끓였다니까요. 혼자는 힘들겠지만 여럿이 같이 하니 요만큼씩만 하면 돼요. 함께 일하고 웃고, 같이 밥 먹고. 재밌잖아요.”

손수 빚은 만둣국 얘기에 또 한 번 “진짜 미쳤네~”소리가 터져 나오고 한쪽에서는 “미치긴 미쳤는데, 잘 미쳤지~”라고 응수한다.

영서교회 ‘사랑의 식탁 나눔’은 오늘도 그렇게 기적을 빚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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