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늘까지 16세기 이후 프로테스탄티즘에 기초한 근세기독교의 가치에 매달려서 살아왔다. 16세기 개혁의 선두에 선 마르틴 루터는 “이신칭의”와 “만인제사”의 두 기둥을 들고 나왔었다. 그러나 “이신칭의”는 겨우 명맥을 이어갔으나 “만인제사”는 1525년 7월 농민 반란 제압 이후 사실상 그 깃발을 내리고 말았다. 그 이후 2백여 년 동안 유럽은 탐욕과 광신, 위선의 귀신들이 판을 치는 전쟁터가 되었다. 유럽 역사가가 표현하기를 종교개혁 선언일부터 200년 동안 전쟁이 서유럽에서 없었던 날이 20일도 채 되지 않았다고 기록했다. 기가 막힌 일 아니겠는가. ‘칼을 거두라, 칼을 쓰면 칼로 망한다’(마 26:52)고 예수 말씀하셨거늘 200년을 하루처럼 전쟁을 했던 유럽의 로만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기독교는 ‘만인제사’의 기둥을 잃어버린 채 개혁과 균현을 지켜내려다가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면 18세기 이후는 어떠했던가? 프랑스 대혁명, 영·미국 혁명, 식민지 탈취혁명, 노예쟁취혁명, 콜럼버스나 바스크 다 마가의 해양 실크로드 시대 이후에 중남미 인디오 노예, 아프리카 노예 시대, 아프리카 전 대륙 어느 한 곳이 식민지의 아픔을 겪지 않은 나라가 있었던가?

이같은 무자비한 살륙과 착취와 탐욕과 아리안 우월주의(백인종, 야벳족)가 기독교 탈을 쓰고 인류의 야만시대를 20세기까지 이끌었던 것이다.

16세기에 끝내야 할 중세기를 기독교는 “이신칭의”와 “만인제사” 균형을 잡지 못해서 절뚝발이 구원론이 지배하는 장애시대를 살아온 것이다. 그래서 “이신칭의”의 선포자인 루터를 한스 큉 같은 사람은 가로되 근본주의자(fundamentalist)라고 말하기도 했다.

오늘 21세기를 이끌어가야 하는 한국교회는 루터나 16세기가 포기해버린 만인제사론을 구체화하여 종교와 정치, 종교와 사회가 손바닥의 양면이요 몸의 상호보완의 상하체와 같은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래서 이제는 “종교개혁”이 아니라 “혁명적 각오”를 하여 기울어버린 기독교의 좌우균형을 바로잡는 21세기 이후형 인류시대를 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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