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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상이 된 황태자 >4<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천년여행 [ 228 ] / 사제 왕 요한 35
조효근/작가  |  dsr12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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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7호] 승인 2018.02.07  14:5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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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자흐스탄에서 만난 청년들, 말을 곧잘 탔다.

“제가 알고 있는 
프레스터 존, 
그러니까 사제 왕은 
다수입니다. 
어느 한 사람이 아니라 
은혜 입은 자 그들 모두가 
바로 임마누엘이요 
또 프레스터 존입니다.”

 

머리에 곤륜산의 눈 더미를 이고 있는 것 같은 호호백발이기는 했으나 이 늙은이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마치 히포의 어거스틴 감독이 펠라기우스와 논쟁할 때 거침없이 밀어붙이던 입심 같다고나 할까. 태자가 눈을 지그시 감고 고개만 끄덕이고 있으니 어느 누가 감히 입을 열겠는가.

노인은 장사꾼 이전에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 전통적 자부심인 알로펜 주교의 수제자급에 속한 투르크 출신 쿰바홀 주교의 직계 후손이다. 그는 신앙 전통이나 기독교 교리 실력뿐 아니라 이곳 사주(둔황)에서 난주(난쪼우)까지 하서회랑 지대의 상권을 쥐고 있는 거부이기도 했다. 그 재산이 왕들보다 많다는 소문이요 난주까지 보부상 중간 센터를 일백여 개 처나 두고 있는 황제 급 권세와 부를 가진 인물이었다. 사주에서 장안 가는 길 하서회랑은 좌측으로 투르크 쪽 지대요 우측은 탕구트(티베트) 지대지만 쿰 노인의 영향권 아래 있는 것으로 소문나있었다.

“어허, 늙으면 이래서 안 돼. 주책없이 귀한 분을 모신 자리에서 내가 망령을 부린 거 아닐까. 송구하외다.”

쿰 노인은 태자 앞에서 무척 조심스러운 몸짓을 했다. 반코트 같은 비단옷을 겉에 둘렀으나 속옷감은 호피로 받쳐진 고급 옷을 입었는데 연장자로서 중간 중간에 옷매무새를 만진다는 뜻은 긴장하고 있다는 것이리라.

“어르신, 참으로 통쾌한 가르침이십니다. 성경이 말하는 임마누엘은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의 모습이고 또 격이라 했으나 이는 한 사람으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나와 하나님을 임마누엘로 모셔 올릴 수 있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그러나 주님 오신 후 로마 기독교는 물론 저희 동방에서도 몇몇 사람이 속 깊은 뜻으로나 알 수 있을까요. 지금 이 자리에 모여 있는 우리 유랑 전도자들도 미처 모르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겠습죠. 아는 자가 아는 것, 깨달음으로 또는 계시하심을 영적 내면으로 수용해야겠지요.”

“어르신, 지금 십자군 전쟁을 이끌고 있는 로마 기독교가 프레스터 존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초원지대에서 프레스터 존이 두 명이나 나와 있잖아요. 아시죠. 케레이트의 옹칸, 나이만 족의 왕칸이 그들 아닙니까. 내 생각에는 유럽 기독교 프레스터 존 찾기나 초원의 옹칸이나 왕칸 모두 참된 프레스터 존이 아니고, 그런 식으로는 잘못된 성경해석이 됩니다. 제가 알고 있는 프레스터 존, 그러니까 사제 왕은 다수입니다. 어느 한 사람이 아니라 은혜 입은 자 그들 모두가 바로 임마누엘이요 또 프레스터 존입니다.”

쿰 노인은 태자의 총명한 눈을 본다. 사랑스러운 눈길이다. 미처 깨달음을 얻지 못한 이들에 대한 연민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제가 너무 당돌하게 말했을까요? 그리고 깨달음이라는 말과 계시어와의 만남을 통한 우리 영혼의 공감이 꼭 같지는 않겠죠.”

“그렇지요. 깨달음이라는 용어는 불교와 도교가 각기 공동으로 쓸 수 있겠고, 우리는 주님이 우리 안에 오심을 통한 만남이 되겠죠. 오순절 성령께서 세상에 오신 후 우리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은총이고 선물이기도 하다고 표현하면 큰 무리는 없을 것입니다.”

“네, 이해됩니다. 어르신 여기 제 친구 한 사람을 특별히 소개하고 싶군요. 파울로라고 하는데 로마의 베네치아 출신입니다. 십자군 군사로 전쟁터에 왔는데 자기가 무슨 수를 쓰든지 시간이 몇 년이나 걸려도 좋으니 꼭 자기 목표를 달성한다고 큰소리치는데, 이 사람 유럽에서 크게 될 자질을 가졌는데 우리네 사막의 땅에서 장차 어찌 될지 좀 훈계해 주세요.”

태자의 말을 듣고 사람들이 같이 웃는다. 파울로가 일어나서 쿰 노인에게 목례를 한다.

“큰 결단이십니다. 부디 살아생전에 사제 왕 요한을 만나시기를 축원하겠습니다.”

쿰 노인은 덕담인지 욕인지를 한마디 하고 몸을 일으켰다. 저희는 새벽 이른 시간에 운동하러 가야 하니 일찍 가서 준비해야 한다면서 밖으로 나가버린다.

“허어, 농담인가 욕인가요. 살아생전에 사제 왕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뜻 같기도 하고….”

파울로는 말은 그렇게 하지만 기분이 나빠 보이지 않았다.

“아침운동이라….”

태자는 들은 바 있다. 쿰가인 노인은 수백 명이 더 되는 사병을 가지고 있다. 카라진 정예들과 한 번 겨뤄볼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보여줄 수는 없지. 태자는 내일 새벽 훈련장에 가볼 계획을 세웠다.

다음 날 새벽, 아직 깊은 어둠의 사막 시간이다. 인기척이 있을 리가 없다. 자위관 쪽으로 가야 한다는 길잡이의 안내를 받은 태자 일행은 삼십 명이다. 어둠 속에서 희미한 인기척만 그림자처럼 보일 수 있었다. 카라 진 전자들 일곱 명 모두가 태자의 전후좌우를 호위했다. 어둠의 시간은 무섭다. 의외의 사건이나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어둠 속에서 진실할 수 있으면 거룩이 멀지 않다는 말이 전해오지 않던가.

어디선가 찌렁찌렁하며 쇠사슬과 쇠붙이가 부딪히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능선을 따라 걷는데 자위관 방향 서쪽으로 조금은 큰 길이 열렸다. 주변은 웅덩이들이 도사리고 있어서 자칫 발을 헛디뎠다가는 낭패를 당할 수 있었다.

천천히 걸으려 했으나 태자는 일행을 재촉했다. 태자와 카라진 전사들이 다른 일행들보다 조금씩 앞서 달렸다. 어둠이 서서히 걷힌다. 주변에 인기척이 있었다.

“이제 오십니까?”

쿰가인 노인이 길안내를 위해 남겨둔 쿰 노인 휘하의 장정들이었다.

“고맙소. 우리가 좀 늦은 것인가 봅니다.”

쿰 노인의 장정들은 답하지 않고 빠른 솜씨로 말을 달렸다. 주변 지형을 대충 읽을 수 있는 시간이다. 동쪽 하서주랑 쪽이 불그레한 미명의 태양빛이 어둠을 밀어내고 있었다. 쿰 노인을 따라서 훈련하는 군사들은 오십여 명인데 모두 하얀 복색을 했다. 그들은 기마술을 연마하고 있었다.

태자가 앞장서서 속도를 내 쿰 가인 노인 앞에 섰다. 안녕하시냐며 인사 올리고 일행들도 그리했다.

“너무 이른 시간에 오신 것이 아닌지요?”

쿰가인이 먼저 인사한다. 태자는 목례를 하고는 말을 빨리 몰았다. 그의 말이 마치 공중에 뜨는 듯이 치솟으며 히힝 하는 소리를 지른다. 마치 비명소리 같았다. 한 판 겨루자는 뜻으로 쿰가인 노인은 받아들였다.

태자가 크게 원을 한 바퀴 그리고는 쿰 노인 곁으로 왔다.

“어르신! 우리 마상훈련을 한 번 했으면 합니다.”

“좋지요. 다섯 명씩 골라 양측 장수들이 기마전법을 시도해보면 어떨까요?”

“아무렇게 해도 됩니다. 우리 측은 다섯을 냅니다.”

태자는 카라진 전사들 중에 다섯을 내보냈다. 쿰 노인도 건장한 장정 다섯을 내보냈다. 양측 군사들은 각기 무기를 들었다. 창과 칼이었다. 서로를 직접 공격하지는 않는 기본훈련을 하기로 했다.

양측 군사가 각기 동서로 진용을 잡았다. 일진일퇴를 거듭하면서 시합이 점점 열기를 띠었다. 한동안 밀고 당기면서 장창을 휘두르는 모습들이 실전과 다름없이 보였다.

태자가 파울로를 불렀다. 그가 쓰던 창을 들고 대신 훈련장으로 뛰어나갔다. 태자의 이런 모습을 지켜보던 쿰 노인도 한 사람 장수를 부른다. 태자가 파울로의 바통을 받고 나가자 쿰 노인이 응수하겠다는 듯이 창을 들고 말을 달렸다. 태자가 쿰 노인 가까이 가서 말했다.

“어르신, 한 수 지도를 부탁드리옵니다.”

쿰 노인이 미소 지으며 달겨들어 태자의 장창을 향해 칼을 뽑았다. 창과 칼의 대결이다. 소년과 할아버지의 대결이 될까. 이들 둘은 밀고 당기면서 여러 합을 겨룬다. 태자가 장창을 던져버리고 쿰 노인의 칼을 피해 가까이로 달겨든다. 쿰 노인이 갑자기 적이 무기 버리는 것을 보고 어찌 할 줄을 모르는 사이 태자가 쿰 노인의 칼을 잡아 가로챘다. 쿰 노인은 칼을 놓치고 말았다. 태자는 쿰 노인이 칼을 다시 잡을 수 있는 시간을 주는 뜻으로 전투 훈련장을 멀리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그는 비호같은 동작으로 시몬이 들고 있는 칼을 가로챘다. 다시 쿰 노인 가까이로 다가서자 쿰 노인도 칼을 다시 잡았다. 태자는 곧바로 노인을 공격했다. 그러나 역공을 당했다. 하마터면 낙마할 뻔 했으나 한순간 태자가 말 등 위에 몸을 바싹 붙이고 말의 몸통을 감고 돌았다. 쿰 노인이 잠시 당황한다. 그러나 그도 이내 태자의 빈틈을 노렸다. 태자의 칼이 다시 번뜩이며 쿰 노인의 칼과 크게 부딪친다. 다시 태자는 좌우로 상체를 흔들며 속도를 냈다. 태자의 칼이 땅바닥을 쓸어내는가 했으나 그 칼은 어느새 쿰 노인이 탄 말 엉덩이를 한 대 칼등으로 냅다 갈겼다. 쿰가인 노인의 말이 휘청거리자 태자는 한 발 비껴 옆으로 달리면서 쿰 노인의 칼을 피했다. 이번에는 쿰 노인의 칼이 머리통을 향해 온다는 것을 직감하고 태자는 그의 몸을 말의 복부로 피했다. 대단한 기마술이었다. 지켜보는 이들이 비명을 지르고 아우성친다. 순간 태자가 말의 앞가슴 쪽에서 튀어오른다. 말과 태자가 한 몸이 되어 공중으로 치솟는다 하는 순간 쿰 노인의 칼이 또다시 땅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태자가 이번에는 말에서 뛰어내렸다. 쿰가인 노인에게 칼을 다시 줍도록 했다. 그러나 쿰 노인은 태자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태자의 칼이 쿰 노인의 등을 가볍게 친다 했으나 쿰 가인 노인이 또 칼을 떨어뜨렸다.

이번에는 태자도 칼을 내던지고 육탄전을 하려고 노인에게 덤벼들었다. 그때 노인이 껄껄껄 웃으며 태자 앞에 항복하노라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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