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의 연속에도 봉사하며 감사 고백하는 꿈크리작은도서관 관장 김석순 집사

“자전거가 고장 나서 수리 중이예요. 곧 가겠습니다.”
약속시간보다 한 시간이 지나서 도착한 김석순 집사(46, 개명교회)의 손은 엉망이었다. 가장 유용한 이동수단인 자전거 바퀴에 문제가 생겨 구멍 난 곳을 때우고 바람을 채워 타고 온 것이다. 추운 날씨에 밖에서 오랜 시간 떨었는지 얼굴은 하얗게 질리고 손은 얼음장, 그래도 자전거 바퀴를 고쳐 다행이라며 웃는다.

김 집사를 만난 경기도 광명시 소하로 임대아파트 단지의 꿈크리작은도서관은 그가 관장으로 4년째 봉사하는 곳이다. 꿈을 크게 키워가라는 의미의 ‘꿈크리’ 이름처럼 김 집사는 이곳에서 아이들이 가난과 어려운 환경으로 인해 꿈마저 작아지지 않도록 힘껏 돕고 있다. 김 집사는 이곳 외에도 사회복지관을 통해 독거어르신 도시락 배달 봉사를 한다. 도서관 관장을 맡기 전에는 아파트 동대표로 활약했다. 지금도 집 수도관이 동파됐다는 연락이 김 집사에게 올 정도로 동네에서는 ‘오지랖 아줌마’로 유명하다. 남의 일을 내 일처럼 맡아주니 도움 요청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그에게 봉사는 시간이 남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쪼개서 발 벗고 나서는, 삶 자체가 되었다. 그만큼 봉사에 대한 의지가 남다른데, 봉사에 대한 열정은 김 집사뿐 아니라 두 자녀까지도 닮아 있었다. 고3인 딸은 지난해 9월 전국중고생자원봉사대회에서 금상(여성가족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장애를 안고 있는 아들도 엄마와 함께 도시락 배달 봉사를 한다. 이들에게는 왜 봉사가 당연한 삶이 되었을까?

 

▲ 김석순 집사

10년 전 먼저 떠난 남편,
아들의 장애, 딸의 뇌종양…
그래도 함께 웃는 가족 있어
감사
온가족 봉사의 삶 실천,
“자신의 몸을 녹여
남을 이롭게 하는 삶” 살고파

 

# 봉사, 감사 발견하는 통로

“봉사하면서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보면 그래도 우리는 함께 웃을 수 있는 가족이 있다는 것에 감사해요. 돈 많은 부자가 부럽지 않죠.”

김 집사는 봉사를 통해 오히려 자신이 살아갈 힘과 용기를 얻는다고 했다. 그가 지나온, 또 지금도 겪고 있는 고난의 이야기는 듣는 것만으로도 버겁게 느껴졌다.

김 집사의 남편은 10년 전 췌장암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남편이 죽은 후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빚 독촉에 지난해까지 치다꺼리를 해야 했다. 올해 13살로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은 장애를 안고 있다. 소두증, 즉 두개골이 자라지 않아 머리 크기가 작은 병으로 이로 인해 지적장애와 시각장애를 앓고 있다. 뇌압이 높아 갑자기 경기를 일으킬 수 있고 시신경이 약해 앞을 잘 볼 수 없기에 김 집사는 늘 아들 곁을 지켜야 한다. 봉사는 주로 아들이 학교 간 시간에 한다. 고난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건강하던 딸이 재작년 두통으로 병원에 갔더니 뇌종양이었다. 종양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지만 지난해 재발했다.

그래도 김 집사는 “밤이면 두 아이의 코 골며 자는 모습을 볼 때면 그저 감사뿐”이라고 말한다. 어떻게 그토록 힘겨운 시간들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 자신의 삶도 벅찰 텐데 봉사에 힘을 쏟는 이유는 뭘까.

“남편이 죽고 난 후 막막한 심정으로 집에 누워서 천장만 쳐다보는데 아이들이 보였어요. 어떻게든 아이들을 지켜내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 일어났어요.”

결혼하고 가훈으로 정한 것이 ‘소금과 같은 존재가 되자’였다. 소금은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 되는 꼭 필요한 존재지만 그 중요성은 드러나지 않는다. 자신의 몸을 녹여 남을 이롭게 하는 삶, 남편과 함께 꿈꾸던 삶이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반드시 봉사를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그리고 김 집사는 남편과의 약속을 아이들과 함께 지켜가고 있다.

아들을 돌봐야 하기에 김 집사는 일을 할 수 없어 기초생활수급가구로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아서 생활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분명하게 가르친다. 받은 것은 반드시 갚아야 한다고. 그래서 때로는 아이들에게 ‘나쁜 엄마’가 되기도 한다. 봉사는 선택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는 것임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김 집사는 봉사하면서 내가 더 기쁘고 감사한 일들을 마주할 때가 참 많다고 말했다. 

“딸이 머리가 아파 벽에 기대 있는데 할머니 한 분이 오셔서 ‘우리 같은 노인들 돌아봐줘서 너무 고맙다’며 등을 다독여주셨대요. 자기는 의무감에서 했던 건데 어르신이 진심으로 고마워하시는 것을 보면서 너무 부끄러웠다고 하더라고요.”

딸은 그 후로 더 봉사에 힘을 쏟았고 지난해 전국중고생자원봉사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하게 됐다. 받은 상금 100만원도 선교지와 복지관에 나눠서 드렸다. 봉사를 통해 받은 것이니 필요한 곳에 나누는 게 당연하다는 말과 함께.
 

# 건강한 거지근성(?)

김 집사는 스스로 ‘거지 근성’ 있다고 말한다. 병원침대, 휠체어 등등 어디서든 필요 없는 물건이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무조건 가져온다. 그럼 꼭 필요한 사람이 생긴다는 것이다. 동 대표를 하면서 집집마다 어려운 사정과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있으니 물건이 생길 때면 어느 집에 주어야 할지가 떠오르는 것이다. 혼자 힘으로 옮기기 어려우면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도움을 받아 필요한 곳에 전달한다.
사람들은 “김석순의 손에 들어가면 필요한 곳에 쓰인다”는 신뢰가 있어서인지 김 집사에게 동네의 물건들이 모인다. 대부분 쓸 만한 것들이다. 김 집사는 그런 신뢰가 고마우면서도 더 정확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스스로 철저하게 점검한다. 주변에서는 “너무 곧아서 부러질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런 철저함은 김 집사의 신앙과도 맞닿아있다.

“하나님 믿는다면서 엉터리로 하고 불의를 저지른다면 그건 하나님 욕 먹이는 거잖아요.”

때로는 교회의 중직을 맡은 이들이 오히려  불의를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는 것을 보기도 한다. 그럼 주변에서 “장로가, 권사가” 하며 더 손가락질하더라는 것. 자식이 잘못할 때 부모가 욕먹듯이 신앙인으로서 작은 실수가 하나님을 욕먹게 만드는 것을 보면서 김 집사는 더 철저하게 하려고 애쓴다. 그렇게 분명하고 철저하게 해야 사람들이 “김석순이 믿는 하나님을 궁금해 하고 신뢰할 것 아니냐”는 얘기다.

정부지원을 받지만 아이들의 병원비를 감당하며 생활하기란 늘 빠듯하다. 김 집사의 ‘거지 근성’은 절약하는 삶에서도 발휘된다. 유독 춥다는 이번 겨울에 보일러를 딱 두 번 틀었단다. 추우면 내복 입으면 된다는 것. 아들을 위한 장난감은 못 쓰는 물건으로 뚝딱뚝딱 만들어주기도 하고, 반찬이 김치밖에 없으면 그것으로 얼마든지 다양한 음식을 만들 수도 있다.

“돈은 있으면 쓰고, 없으면 안 쓰면 돼요. 가난해도 가족이 함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고 삶의 이유지요.”

왜 힘들 때가 없을까. 김 집사는 아직 어린 아들이 아빠를 찾을 때 가장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또 목욕탕이나 수영장을 갈 때면 아빠의 빈자리는 더욱 크게 느껴진다. 삶의 무게에 짓눌리는 것을 느낄 때면, 막막한 현실에 눈물이 솟을 때면 아이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밖으로 나간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펑펑 울고 나면 속이 후련해지고 또 다시 일어설 용기가 생긴다고 했다.

힘겨운 삶 속에서도 매일 ‘감사일기장’을 쓰고 있다는 김 집사, 아이들이 밤새 아프지 않고 아침에 눈 뜬 것이 감사하고, 아들이 별 탈 없이 학교 다녀온 것이 감사하고, 오늘 하루 온가족이 함께여서 감사하고…. 매일 감사일기장에 쓸 것이 많다며 웃는다.

그래도 김 집사는 하나님을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다. “왜 나에게 이런 고난을 주셨나요? 왜, 왜, 왜…” 그러면서도 “다 이유가 있으실 것”이라며 끝없이 떠오르는 궁금증을 잠재운다.

김 집사는 “지금도 끼니를 굶는 아이들이 있다”면서 자신들은 기초생활수급 조건에 충족돼 도움을 받지만 그마저도 받지 못하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 “사회가 돌보지 못하는 이들을 교회가 품어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데 자전거가 또 말썽이다. 뒷바퀴를 고쳤더니 이번에는 앞 바퀴에 바람이 빠졌다. 김 집사는 “또 고치면 된다”며 집에서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들에게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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