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천년여행 [ 229 ] / 사제 왕 요한 36

“마마, 북방이 심각한 부분이 있습니다.
저희가 심어놓은 정보에 의하면 테무진
이 케레이트의 옹칸을 뛰어넘었다는 것
입니다.”
“엣, 뭐라고요!”
태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테무
진이 케에리트의 옹칸을 뛰어넘다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
은 정확한 정보였다.

 

▲ 내몽골의 한 예배당 밖 표정


쿰가인 영수가 태자 앞에 한쪽 무릎을 꿇어 군례를 올렸다. 그의 얼굴 표정은 엄숙했다. 태자가 그에게 다가가서 두 손을 붙잡아 일으킨다.

“어르신, 이러실 필요 없으세요. 실제로는 제게 져주신 것인 줄 제가 압니다.”

“아, 아닙니다. 시간이 지나면 제가 더 큰 망신을 당할까봐서 조금 일찍 항복했습니다.”

쿰가인 영수가 태자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나서 훈련장을 휘둘러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는 앞으로 기마전술을 좀 더 연마해야 합니다. 대장님의 기마술은 고구려와 몽골의 기마술이 조화를 이룬 것으로 이를 뭐라 해야 하나요. 신출귀몰일까요. 고구려 전성기인 광개토대왕의 전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럴 것이다. 태자가 선보인 기마전술은 을지 고 사령관으로부터 배운 비술이니 쉽게 흉내 내기 어려울 것이다.

다음날 오전 시간 쿰 노인은 태자의 부름을 받았다. 태자는 쿰 노인을 상대로 하서 주랑의 주민들 실태를 더 상세히 듣고 싶어 했다.

“투르크인들을 먼저 도와야 합니다. 투르크는 아나톨리아에 이미 뿌리를 깊이 내렸으나 중앙아시아 일대는 아직 순수합니다. 해서 우리는 하서 회랑 북쪽 고비사막 일대의 투르크인들과 친숙해야 합니다. 아나톨리아 투르크인들은 강성 이슬람으로 종교심이 강화되어 있으나 하서 회랑이나 타클라마칸 일대는 투르크 이슬람들이 기독교를 자기들의 형제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독교인들의 특성을 살려가면서 중앙아시아나 몽골 초원에서는 그들과 충돌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소. 아시는 바대로 그 같은 전통은 이미 6백여 년 전 알로펜 주교가 이끄시던 가르침인 줄 저도 압니다. 그 점에 있어서 저는 제가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이 큽니다. 그래서 우리 카라 키타이 제국 안에서는 종교가 다르다고 상대방을 깔보거나 불이익을 주는 자는 결코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 이 늙은이도 동감입니다. 그런데 한 말씀 여쭙자면 탕구트 일족인 토번은 녹록하지 않습니다. 저들의 불교도로서의 자부심은 범접하기 어려울 때가 있어요. 저들은 마니교나 조로아스터교와 우리 기독교를 동일 형태의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그것까지는 그렇다 해도 우리가 조로아스터교와 동일 종류로 저들 탕구트 지역 불교도들에게 평가된다는 것이 참 이상해요. 그리고 왜 저들은 조로아스터교에 대해서 경계심을 많이 갖고 있는지도 이상스럽거든요.”

“글쎄요?”

태자는 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 답보다 그는 종교들 간의 지나친 대립에 기독교가 휘말린다는 것이 싫었다. 그는 어떤 경우에도 타종교와 대립상황을 원치 않았다. 또 못난 사람들일수록 종교들끼리 불쾌한 감정에 휘말린다고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대화를 한쪽 구석에서 지켜보던 파울로가 지식을 뽐낼 기회를 얻었다는 듯이 넌지시 두 어른들 사이로 끼어든다. 소생이 한 말씀 올릴 수 있을까요, 하더니 당돌하게 나섰다.

“오래된 일이기는 해요. 알렉산드로스가 박트리아에 그리스 사람들을 남겨두고 떠났는데 그리스계가 지배세력이 되었어요. 알렉산드로스 부하 출신 중에 메난드로스 왕이 있었어요. 그때가 예수님 시대 직전일까요. 당시 박트리아에는 페르시아 국교였던 조로아스터교가 대세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불교가 박트리아에 와서 지배세력의 비호를 받았다가 조로아스터교 신자들에게 엄청난 핍박을 받았습니다. 아마 그때의 원망이 지금까지도 남아있지 않았을까 합니다만….”

파울로가 말끝을 흐렸으나 태자가 그를 크게 칭찬했다.

“파울로, 영특하군요. 그리고 그 말에 상당한 의미가 있어 보이는 군요. 그래요. 우리는 역사를 보는 긴 눈을 가지고 현재나 앞날을 가늠해보는 공부도 중요해요.”

쿰 노인도 인심 좋은 얼굴에 환한 웃음을 담고 말없이 파울로를 향해 머리를 끄덕인다.

“우리는 그래서 타종교에 대한 겸허한 자세를 유지해야 합니다.”

파울로는 태자가 조금은 이상주의 쪽으로 기운다는 생각을 했다. 충분히 존경하면서도 어디선가 불안한 생각이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쿰 노인의 건의를 받아들여 태자는 소그드 식 장기여행보다는 사주(둔황)에 머물면서 북방 초원지대의 동향을 살피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새벽도 군사훈련을 마치고, 잠시 쉬고 있는 태자의 숙소에 급보가 날아들었다. 투루판(고창)의 요한 주교가 보낸 파발이었다. 태자는 속히 왕성으로 돌아오라는 을지 고 총사령관의 내용이었다. 태자는 전령에게 무슨 급한 일이냐고 물을 수도 없었다. 일단은 투루판으로 가기로 했다.

태자가 투루판에 도착하자 궁궐에서도 군사들이 와 있었다. 주교청으로 들어간 태자는 주교로부터 대강을 들었다. 초원의 세력에 이상한 조짐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주교님, 그게 무슨 급보입니까? 을지 고 사령관이 왜 그러실까요?”

태자는 평소의 침착했던 모습과는 달리 흥분하고 있었다. 초원의 동향이야 신경을 써야 하지만 급박한 징조는 아직 아니라는 태자의 생각이었다.

“마마, 북방이 심각한 부분이 있습니다. 저희가 심어놓은 정보에 의하면 테무진이 케레이트의 옹칸을 뛰어넘었다는 것입니다.”

“엣, 뭐라고요!”

태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테무진이 케에리트의 옹칸을 뛰어넘다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정확한 정보였다. 태자가 알고 있는 초원의 정보로는 열아홉 살 나이가 된 테무진은 예상보다 빠르게 초원의 영웅들을 긴장시켰다. 테무진과 같은 몽골계로 언젠가는 이 초원에서 마지막 승부를 겨루어야 할 인물인 자무카가 있다. 그는 테무진보다 더 좋은 참모진을 거느리고 있으며 따르는 전사들도 지금 테무진 군사의 열 배 정도 더 많았다. 그리고 몽골 초원의 동편에 타타르족, 중앙에는 최강의 세력인 케레이트족의 옹칸 토그릴이 버티고 있다. 그는 유럽 기독교나 십자군 세력들에게 사제 왕(프레스터 존) 요한으로 존경받는 위인이다. 그리고 서쪽으로는 케레이트에게 뒤지지 않을 만큼의 세력을 가진 나이만족이 테무진과 자무카를 겨냥하고 있었다. 

십여 개 부족의 세력들 중 케에리트와 나이만족은 군사가 가장 많을 뿐 아니라 둘 다 기독교 왕국이요 케레이트 옹칸이나 나이만의 왕칸 모두 왕이면서 제사장으로 자기 종족을 위해 몽골 초원이 있고, 장차 자기들이 유럽까지 통치할 인물들이라고 자부하고 있었다. 테무진으로서는 감히 넘볼 수 없는 하늘의 별 같은 존재들인데 초원의 흐름이 자꾸만 테무진을 주눅 들게 했다. 테무진의 부친 예수게이는 케레이트 옹칸 토그릴과 의형제를 맺고 지내다가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의 증조부 카불 칸이 대몽골 부족 연맹체를 이끌었던 시대가 있었기에 테무진은 카불 칸의 후광을 입었다. 초원지대의 무당들이 테무진을 큰 인물로 예언하면서 초원의 민심이 테무진을 경계하기도 하고 부러워도 하는 현상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테무진이 주목받는 것은 그가 하는 행동마다 증조부 카불 칸의 덕성을 그대로 닮았다는 인심이 흐르고 있었다. 그는 크고 작은 부족들 간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승리할 경우 적의 부대를 해체시킨 후 자기 부하로 인정하고 믿어주었다. 노예로 삼거나 군사로 쓸모가 없어도 부양하고 돌본다. 자웅을 겨루었던 적장도 항복하고 따르겠다 하면 주요 지휘관으로 신뢰하고 무조건 신뢰했다. 그의 사람 다루는 솜씨가 독특하다고 소문이 났다.

“주교님, 우리가 언제부터 초원을 두려워했나요?”

“물론 두려움의 상대는 아니죠. 그러나 초원을 다스리던 시대는 지금 우리 카라 키타이(서요)가 아니라 대제국이었던 지난날입니다. 지금은 금나라(여진족)에게 제국을 넘겨주었으니 옛날 이야기입니다. 지금의 몽골 초원은 조금만 깊이 살펴보면 우리에게 위협이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는 테무진(후에 징기스칸)의 성장 속도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또 있습니다. 나이만 족의 왕칸은 노골적으로 우리 카라 키타이를 노리고 있습니다. 저들은 우리와 같이 네스토리우스 파 기독교로 똘똘 뭉친 나라인데 자기네가 유럽으로 진군해 갈 때 우리나라는 연합세력으로 거느리기 위해서 하나님이 세우셨다고 내놓고 말한답니다.”

“아하, 거기까지군요. 말씀을 듣고 보니 저를 불러들인 어른은 을지 고 총사령관이 아니고 혹시 주교님이 아니신가요?”

태자가 요한 주교를 떠보기라도 하려 들자 요한 주교가 정색하고 손사래를 친다. 주교는 태자 곁으로 한걸음 더 다가앉으며 태자에게 말했다.

“태자 마마, 이제는 보위에 오르셔야 합니다. 그 시기가 지금인 듯하옵니다. 한가하게 소그드 상인들과 어울려 지낼 때가 아닙니다. 이 늙은이의 충정을 받아주셔야 합니다.”

“아이고, 주교님. 왜 그러세요. 며칠 사이에 왜 이렇게 급해지셨나요.”

밖이 소란했다. 사령관 기를 든 두 기마군이 주교청 마당에 들이닥친다. 그리고 호령이었다.

“총사령관님 행차시오! 어서 받드시오.”

태자와 주교가 벌떡 일어났다.

“이거 무슨 일인가?”

태자가 밖을 내다보자 을지고 총사령관이 걸어오고 있었다.

“태자 마마, 어디 계시옵니까?”

을지 고 사부의 목소리가 찌렁찌렁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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