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명애
화가. 예예동산 섬김이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고상한 일이 ‘예술의 길’이라는 무지갯빛 환상에 끌려, 슈바이처 같은 의사가 되기를 바라셨던 아버지의 꿈을 짓밟고 입학한 미술대학에서 맨 처음 부딪친 난관은 술자리였다. 목사집안에서 성장한 나는 술을 마시는 것은 물론, 술을 어떻게 따르는지도 몰랐다. 더구나 서로 받고 치는 그 질펀한 음담패설은 그냥 듣고 있는 것만도 부담스러웠다. 신문 잡지에서나 그 이름을 듣던 교수님들이 술자리에서는 입에 담기도 민망한 말들을 쏟아냈고, 세련되었다는 클래스메이트 중 몇 명은 말장단을 맞추며 킬커덕댔다. 그러다가 화가인 모 교수와 선배 중 한 사람이 파리로 함께 갔다는 소문이 돌았다.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화단에 나와 활동하면서, ‘술’은 필수이고, 여류화가를 지망하는 멀쩡한 여성들은 남자화가들의 술잔을 따르며 마치 기생들처럼 교태부리는 모습들을 씁쓸히 지켜보아야 했다. 남편도 자식도 있을 텐데… 왜 저렇게 할까 걱정스러웠지만, 그렇게 대인관계(?)를 잘 맺어가는 사람들이 더욱 활발하게 발전해가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점이 있다. 언제서부터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스스로의 자리를 잃어버리고 성적 노리개로 전락한 것일까? 우리 민족이 자부하는 것은 여성의 절개가 아닌가! 출가하는 딸에게 스스로의 순결을 지킬 수 없을 때는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도록 가르치며 은장도를 주었던 그 도도한 여인의 자존심이 언제부터 흐트러져버렸는지 모르겠다. 

지금 사회의 이슈가 된 ‘미투’라는 것이 여성 스스로가 받은 피해를 고발하는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어쩌다가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그토록 피해를 당해야 하는 존재가 되었는지 답답한 마음 금할 수 없다. ‘칼자루를 쥔 자의 폭행’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힘 있는 자들이 저지른 참으로 인간 이하의 짐승 같은 짓이라고 여겨져야 마땅하다. 이제라도 그 더러운 짓이 밝혀져 우리 사회가 개선되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한편, 마치 불빛에 모여드는 불나비들처럼, 출세의 줄을 잡으려고 해서는 안 될 일들을 하고 스스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딸이 유학 떠날 때, 밥 세 끼 잘 챙겨 먹고 건강 잃지 않도록 하라는 뜻으로 “네 몸이 무엇이지?”라고 물었었다. “엄마의 생명보다 소중한 사랑하는 딸이에요”라는 대답 정도를 기대했는데, 딸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에요”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 대답으로 인해 모든 염려에서 해방되었다. 스스로를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고백하는 딸이 스스로를 함부로 하지 않을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예술가가 되려는 젊은 후배(여성)들에게 출세, 명성, 돈보다 더 소중한 것이 그대들의 깨끗한 몸이고 삶이라고 절절히 소리치고 싶다. 왜 남성들 앞에서 그 상대의 지위가 높더라도, 그토록 무력하게 피해를 입어야 한단 말인가? 왜 가해자는 모두 남성이고, 피해자는 모두 여성이란 말인가, 왜 여성들은 항상 짓밟히고 울어야 한단 말인가!

만일, 여성이 성 피해를 입는 경우가 있다면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무섭고 당당하게 처신하고,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그 남성을 혼내야 할 것이다. 왜 여성 혼자 피해 입고 숨고 부끄러워한단 말인가! 그러나 내가 보고 경험한 많은 경우는 여성들의 의식에 문제가 있었다. 남녀 성을 떠나서 어느 분야에서나 무시당하지 않을 실력과, 약점 잡히지 않을 자신의 자리를 지켜가야 하리라.

술과 성적 타락이 상식화 된 예술계에선 더욱 순교적인 자세로 우리의 거룩한 자리를  지켜서 주님의 영광‌이 가려지는 일이 없어야 하리라.

여성들이여! 당신들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며, ‘어머니’의 성직을 받은 사명자입니다!!

 

<복음인in 들소리>는 하나님의 교회다움을 위해 진력하는 여러분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동반자로서 여러분과 동역하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함께 하겠습니다. 샬롬!

후원계좌 : 국민은행 010-9656-3375 (예금주 복음인)

저작권자 © 복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