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500주년을 이루어낸 교회는 루터 등 16세기 개혁자들의 수고로 이룩한 “이신칭의”(롬 1:17) 구원론을 확신하게 되었다. 중세 가톨릭 시대에 “행위신앙”에 젖어있던 신자들에게 십자가 대속신앙을 감추어버렸던 그 시대의 한계를 루터나 칼빈 등 탁월한 영웅적 지도자들이 이신칭의 신앙을 찾아주었다.

그래서 이신칭의, 신앙으로 가다듬어진 신자들은 왕 같은 신자와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한다. 왕 같은 신자는 그 당사자에게 우선 왕 같은 영광이 주어지기도 하지만 왕 같은 신자노릇을 하면 자기 자신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많이 복되게 해준다.

우리 조선조 왕조의 세종대왕이나 정조대왕 같은 왕처럼 주 예수를 믿는 성도나 목회자들 중에도 세종·정조 같은 왕이 나올 수 있고, 이순신 장군 같은 민족이 우러르는 영웅적 목회자, 또는 퇴계·율곡 등과 같은 학자나 신학자, 교회의 지도자들이 나올 수 있다. 바로 그들은 자기 인생을 함부로 살지 않고 왕처럼 지엄한 품위를 가지고 살아냈었다.

한국교회여, 개 교회들이 겪고 있는 부족을 채우기 위하여 목회자들이 있다. 마음 깊이 기도하거나 성경을 연구 몰두하여 더 감동적 설교 준비를 못하는 영세한 조건들 때문에 고민하는 목회자들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왕이다. 왕 같은 신자, 왕 같은 권찰, 집사, 권사, 장로, 전도사, 목사 등 교회의 직분자들이 자신감을 가지고 교회를 국회 의사당이나 대법원 청사, 청와대보다 더 존중하는 우리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신자들이 왕 같은 신자로서의 자부심을 확보하고 국회의장, 대법원장, 대통령에게 뒤지지 않을 담임목사나 총회장을 모실 수 있는 기독교 신자로서의 자부심은 “이신칭의”에 자기 명예와 존엄을 다 바치는 신앙, 훈련된 신앙이 있어야 한다.

한국교회여, 지금 우리 대한민국 교회는 전제 군주시대인 줄 아는 중국 공산당의 교만한 흐름이나 기독교 신앙에 인색한 일본을 깨우쳐서 한국의 교회처럼 열기가 있고 복음전파에 충성스러운 모습의 교훈을 보여주어야 한다. 요즘 한국교회의 나태함을 모르고 하는 격려가 아니다. 제발 한국교회는 궁상 그만 떨고 일어나서 왕 같은 신자의 길에 서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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