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5:13-16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이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주님을 따라 산 위에 오른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말씀입니다. 주님의 부탁이고 비전입니다. 모름지기 주님을 따르는 제자와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살아야 할 소명이고 과제입니다.

그때 산 위에서 이 말씀을 들었던 제자들은 주님이 말씀하신 ‘소금’의 의미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에게 익숙한 율법에 소금의 용도와 의미가 정확하게 제시되었기 때문입니다. 소금은 성결과 정화(출 30:35), 변함없는 영원한 약속(민 18:19)을 의미하였습니다. 이런 구약 율법의 전통을 이어받아 주님은 소금을 화해와 평화로 해석하셨습니다(막 9:50). 썩어가는 세상 속에서, 갈등과 분쟁이 끊이지 않는 세상 속에서 변함없는 구원의 약속을 성취하는 교회가 되고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이 또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빛은 하나님의 창조, 제일 첫 번째 작품이었습니다. 빛은 그 후 이루어진 모든 창조, 모든 질서, 모든 생명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빛은 어둠 속에서 그 능력과 영광이 드러납니다. 아무리 칠흑같이 어두운 어둠이라 할지라도 어둠은 결코 빛을 이기지 못합니다(요 1:5).
주님은 창조의 빛, 그 자체이셨습니다. 그리고 그 빛을 세상으로 반사하는 거울로 제자들을 세우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어두운 세상을 밝히라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삼일운동이 일어났던 1919년, 한반도에 기독교 복음이 전파된 지 30년 조금 넘은 초창기였습니다. 교파를 초월해서 교회에 다니는 신자가 15만에서 20만 정도로 전체 인구의 1% 수준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기독교는 삼일운동의 모든 과정에서 주도적이고 핵심적인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또한 대중 투쟁단계에서 서울과 지방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고 투옥된 수감자 가운데 25%가 기독교인이었으며 전체 수감자 중 5% 정도를 차지하고 있던 여성 수감자의 80%가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소금이 그 맛을 내려면 녹아져 없어져야 하고, 등불이 그 빛을 밝히려면 기름을 태워야 합니다. 맛과 빛은 희생을 요구합니다. 

독립만세운동에도 희생이 따랐습니다. 그 유명한 ‘제암리교회와 수촌리교회 방화사건’, ‘아오내장터 만세시위’, 공주읍 만세운동 등 수난 받는 민족과 함께하는, 민족을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는 한국교회의 모습이 그립습니다. 

그렇게 해서 삼일운동을 거치면서 기독교에 입교하는 불신자들이 늘어났습니다. 독립운동이라는 기독교인들의 ‘착한’ 행실을 보고 믿지 않던 ‘그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교회를 찾아 나왔습니다. 전도는 교리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로 하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진실 된 믿음의 행위, 세상을 위한 소금과 빛, 나라와 민족을 위한 자기희생이 전도와 선교의 지름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모든 자랑스러운 역사가 ‘과거지사’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와 상관없는 조상들의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부끄러울 뿐입니다. 사심 없이, 순수한 믿음으로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살았던 믿음의 조상들 앞에서 부끄러울 뿐입니다. 그런데 부끄러운 것이 수치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부끄러울 때 철저히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부끄러움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은 부끄러움이 회개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회복해야 할까요? 무엇보다 회개를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삼일운동 15년 전에 일어났던 초기 부흥운동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1903년 원산에서 시작하여 1907년 평양으로 옮겨 간 초기 한국교회 부흥운동은 처음부터 끝까지 ‘회개운동’이었습니다. 철저한 죄의 회개와 윤리적 갱신이 부흥운동의 목적이고 내용이었습니다. 회개와 중생과 성화, 이것이 초기 부흥운동의 핵심이었습니다.

이런 회개의 부흥운동을 거치면서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참 기독교인’(real Christian)이 되었고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높은 수준의 성결을 실천하였습니다. 그 결과 목회자들은 교회 안에서만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지도자’로 인정받고 존경을 받았습니다. 목회자의 말이 교회 안에서만 통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통하였습니다. 목회자의 ‘영적 권위’(spiritual authority)가 교회의 ‘사회적 지도력’(social leadership)으로 연결된 것입니다.

위기의 시대를 사는 오늘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회개입니다. 회개를 통하지 않고는 구원으로, 믿음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전도도, 선교도, 사업도, 행사도 회개로 시작할 것입니다. 회개는 신앙의 출발입니다.

그리고 그 운동은 ‘미투’(me too)를 넘어 ‘투미’(to me)로 나가야 할 것입니다. 남을 향한 것이 아니라 나를 향한 운동입니다. 피해자의 고발이 아니라 가해자의 고백이어야 합니다. 남을 정죄하는 운동이 아니라 내 자신을 돌아보는 운동입니다.

*이 설교는 3월 1일 오후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기독교대한감리회 주최로 개최한 ‘3.1운동 100주년 준비대회’에서 한 것을 요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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