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종찬 목사
아름다운교회 담임

“가용성 편향”(available bias)이란 말이 있습니다. 가용성 편향이란 특정 사례들이 머릿속에 얼마나 쉽게 떠오르느냐는 여부에 따라 그 발생빈도를 판단하는 것을 말합니다. 언론에서 지속적으로 성폭력을 말하면, 그 사건이 격렬한 감정을 불러 일으켜 자신에게도 쉽게 발생할 것으로 생각하게 되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이는 우리 뇌의 착각에서 오는 것으로, 뇌는 친숙성을 토대로 특정 사건의 가능성을 판단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했거나 자주 들어서 기억하고 있는 사건이 자주 발생한다는 직관적인 믿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문제는 뇌가 실제와 착각에서 오는 갭(gap)으로 인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누구보다 자신이 자기가 속한 조직에 헌신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다만 다른 구성원들이 자신의 기여와 노력을 충분히 인정해 주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부부싸움도 대부분 자기가 상대보다 가정에 기여한 공이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요즘 미투(me too)운동 때문인지 매일같이 성폭행 뉴스로 온 나라가 망신살입니다. 문학계를 비롯하여 연극계, 영화계, 종교계 등으로 번지는 게 끝이 없는 듯합니다. 욕망이 위계(位階)에 편승하면 도덕의 선을 넘어 모든 양심과 법의 질서를 쓰나미처럼 휩쓸어 간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어느 곳 하나 멀쩡한 곳이 없는 것 같습니다. 

속은 썩어 문드러져 가면서도 문화라는 탈을 쓴 채 번지르르 치장만 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다보니 딸이나 손녀를 둔 분들은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상 어느 곳 하나 안전한 데가 없고 낮선 남자들 또한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 불신의 벽이 점점 높아져 가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이 또한 “가용성 편향” 때문일 거란 생각이 듭니다. ‘내가 먼저 시작했고 더 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아 부었는데 후배들이 이에 편승하려 한다’는 가소로운 생각 말입니다. 그러니 그 사람과 작업을 하는 사람은 당연히 반대급부(反對給付)를 되돌려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신인(新人)들은 원로에 대해 무엇인가 해야 하는데 그것이 성(性)으로 치부(置簿)되었고 그것을 뿌리칠 수 없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원로들이 후배들에게 존경받을 수만 있다면 그 어떤 것보다 더 좋은 반대급부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누군가로부터 존경받는다는 것은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의 괘적이 어느 한 부분에서라도 언행일치한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누구나 본성에 따라 실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수를 깨닫고 돌이켰으면 다시는 그 자리로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용서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인생을 불신과 대치로 낭비할 수만은 없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고 용서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야 합니다. 

잠언 기자는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잠16:3)고 했으며, 베드로는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고 했습니다. “맡기라”는 동사는 히브리어 “갈랄”, 헬라어로는 “메림나”로서, 모두 “굴리다”, “던지다” 등의 의미입니다. 이는 “전폭적인 의뢰와 위탁”을 가리키는 단어로, 모든 내적, 외적 측면의 동인과 과정과 그 결과를 모두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탁할 것을 지시하는 말입니다. 신자는 가용성 편향을 믿음으로 초월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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