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을 서두르라는 위선의 지시……. 편집자가 꼼꼼하게
교정교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출판사의 구조적 시스템
도 오탈자를 만드는 것이다


“짤막한 여행을 떠나며 급히 챙긴 신간 한 권을 비행기에 앉아 열 쪽도 못 넘기고 다시 접어 넣으며 생각했다. 깔끔한 디자인의 표지 속에 가득 박힌 오자투성이 문장. 이 책을 만든 이는 읽는 이에 대한 생각을 얼마나 한 걸까. 무성의한 칼질과 선도 낮은 재료를 두툼한 양념 범벅으로 덮은 냄비요리가 떠올랐다.”

한 신문에 실린 글이다. 이 글을 쓴 이는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표지에 오자들을 보고 싹 사라졌다. 맛깔난 음식을 먹으려고 하는 순간, 비린내가 나거나 음식에 이물질이 들어간 것을 보고 깜짝 놀라 식욕이 싹 사라진 경험은 누구나 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기대를 갖고 읽은 책인데, 본문과 표지에 오자가 너무 많아 책을 읽고자 하는 ‘독서욕’이 사라진 경험은 누구나 갖고 있다.

‘오빠를 위한 최소한의 맞춤법, 책 쓰자면 맞춤법,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100명 중 98명이 틀리는 한글 맞춤법, 하루 3분 우리말 맞춤법, 건방진 우리말 달인, 우리글 바로쓰기, 고종석의 문장, 말들의 풍경…….’ 우리말 맞춤법과 관련된 책들이다. 인터넷서점에 ‘맞춤법’이라고 검색해보면, 200여 종의 책이 등장한다.

교정과 교열은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신뢰를 주는 기본적인 책의 요소다. 오탈자가 빈번하게 눈에 띄는 책은 어쩐지 믿음이 가지 않는다. 일관성과 통일성이 없기 때문이다(예를 들어 앞쪽에서는 쉐프라고 하고, 뒤쪽에서는 셰프라고 하면 이상하지 않은가?). 맞춤법은 편집자의 ‘절대적인’ 기본 중 기본이라는 말도 있고, ‘교정교열은 100% 완성도를 향한 끝없는 노력’이라는 말도 있다. 과거에 어떤 출판사는 표지에 오탈자가 났다며, 초판을 전량 폐기하고 인쇄를 다시 한 적이 있다고 한다. 독자들에 대한 신뢰를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면, 세상에 오탈자 없는 책이 없을 거 같다. 편집자도 독자다. 독자가 책을 읽을 적에 글자 한 자 한 자를 읽지 않는다. 전체 흐름을 따라 책을 읽는다. 글의 맥락을 읽는다는 말이다. 직업적으로 편집자는 글자 한 자 한 자를 읽어야 하겠지만, 그렇게 하다가도 어느 순간 ‘순수한 독자’가 된다. 더구나 글자 한 자 한 자를 보면 어느 세월에 책 한 권을 마감할 수 있겠는가? 아마 그렇게 시간을 들인다면, 1년 후에나 지금 편집하고 있는 책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마감은 코앞으로 다가오지, 출간을 서두르라는 위선의 지시는 하루하루가 쌓여가지……. 편집자가 꼼꼼하게 교정교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출판사의 구조적 시스템도 오탈자를 만드는 것이다.
 

박상문 / 인물과 사상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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