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 나를 믿는 자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를 해결할 수 없는 프로테스탄트 500년 해석사의 한계를 생각하면서 요한복음 11장 24절 이하를 지워버릴 수 있으면 오히려 편하겠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지 마라, 다시는 더 죽음이 나를 상관할 수 없는 날들을 살아갈 수 있으면 그것이 곧 그 말씀에 대한 해석이 아니겠는가. 물과 불로 세례를 받으면 된다. 신령과 진리로 하면 또 된다. 물과 포도주 관계의 알레고리를 풀어도 해석이 나온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그대로 해석할 수 있는 자들은 가능하다. 너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라고 하시지 않던가.

바울처럼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말고 죽을 때가 되면 죽으라. 삶과 죽음의 갈림길은 요단강 건너기 이전의 가치관일지니 예수 안에는 삶과 죽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닌 것쯤은 배우면서 신자 노릇을 하자.

강하고 담대한 신앙이다. 그 신앙으로 예수의 자녀들은 시퍼런 로마제국의 칼날 틈새로 자유했으며, 평화와 사랑의 복음을 전했다. 그리고 전성기 로마제국을 향해 과일 깎는 칼 하나도 휘두르지 않고 일단 굴복시켰었다.

두려워하지 말자. 북한 핵도 너무 무서워하지 말자. 우리가, 대한민국 안에서 사는 기독교 신자들이 다시는 죽을 수 없는 예수의 부활생명을 이어받았을 때는 김정은이 아니라 그 어떤 세력이 덤벼들어도 부활 신앙자를 무너뜨릴 수 없다. 담대하자. 그래서 말인데 오는 부활절 날은 어느 약속된 장소에 부활신앙으로 모이자. 전국 각 도시마다 동시다발로 모여서 우리의 부활고백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 영화로운 예배를 올리자.

그 많은 시련과 핍박 때마다 탁월한 용기와 담대함으로 연약한 신자들의 모범을 보였던 성도들이여, 여러분의 신앙에 기대한다. 다시 죽을 수 없는 보배로운 신앙을 소유한 성도들이여, 우리들이 가진 이 믿음으로 어려운 때를 슬기롭게 헤쳐 나갔으면 한다.

북한의 공산당 세력과 대한민국 안에서도 상당한 숫자의 좌파 논리에 매달린 이웃들이 있을 때는 우리 부활신앙으로 모범을 보일 수 있으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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