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천년여행 [ 231 ] / 사제 왕 요한 38

그는 참아내려고 했던 눈물을 
태자와 눈이 마주치자 
흘리고 말았다.
“파울로! 우리는 예수님처럼 
 살기로 했지 않은가. 
 산 자가 되려고 
 복음의 초대를 받았으나 
 살리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다시 
 그 목숨을 내놓는 거야.  
 이 말은 그대가 내게 
 해 준 말이잖은가?”
 파울로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 중국 시안의 병마총 앞에서 여행자들이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투루판 지역이라 했으나 투루판을 중심해 쿠차, 카슈가르, 야르칸트, 허탄 등 타클라마칸 지역 성벽국가들에 위치한 카라 키타이 군 조직을 투루판 주교인 요한이 책임지는 것이다.

늦은 밤 을지 고 총사령관이나 태자도 잠들었을 시간에 요한 주교는 주교관 인근의 주변을 서성거리면서 생각에 잠겼다.

그 시간 파울로 역시 갑작스러운 태자의 명령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밖으로 나왔다. 낯선 지역인지라 조심스러웠으나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는데 누군가 돌 던질 만큼의 거리에 서서 하늘을 우러르며 중얼거리기도 하고 한숨을 쉬는지 헉, 헉 거리기도 하는 소리가 희미하게 느껴졌다.

“누구냐!”

그 순간 요한 주교가 파울로 가까이 오다가 멈춘다.

“누구시요. 저는…”

“그만, 그만하라!”

짤막하지만 위엄에 찬 목소리였다. 파울로도 그 순간, 상대가 누군 줄 알 수 있었다. 요한 주교였다. 요한 주교는 경무장을 하고 있었다. 주교는 파울로임을 먼저 확인했기에 마음을 놓고 그 가까이로 다가왔다.

“밤늦은 시간에 호신용 장구 없이 서성거리면 안 됩니다. 낮과 밤이 전혀 다른 곳이 사막이오. 목숨을 아껴야 하오.”

“송구하옵니다. 제가 경솔했나이다.”

“그래, 어이해 잠을 자지 않고 나왔는가?”

파울로는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주교는 파울로의 속마음을 읽었다. 주교는 그를 이끌었다. 주교청 별실이었다.

“갑작스런 태자 마마의 명을 받고 나서 걱정이 많았는가. 파울로는…”

“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막막합니다. 내가 어찌 그 야만의 땅으로 가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목숨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가?”

“네, 아…”

파울로는 단둘이 마주앉은 요한 주교의 입에서 느닷없는 말이 튀어나오자 움찔 놀랐다.

“저는 태자 마마를 처음 뵈올 때 바로 이 사람이다, 이 사람이 십자군이 찾고 있는 바로 그 프레스터 존(사제 왕 요한)이라고 확신했어요. 그리고 이분과 함께 운명을 같이 하리라 각오하고 십자군 진영으로 돌아가지 않고 태자님을 따르기로 했을 때 제 목숨을 하나님께 내놨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당장 테무진에게로 가라 하시니 버림받은 꼴이 되어 잡념에 빠졌군요. 태자와 목숨을 같이 한다면서 그 정도 가지고 당황해서야 되는가.”

파울로는 입을 닫았다.

“파울로 용사여. 내가 초원의 동향을 대충 압니다. 우선 케레이트 옹칸에게도 보낼 터이니 거기서 초원세력들의 질서를 파악하고 그곳의 분위기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을 거야. 지금 초원의 영웅들은 케레이트 토그릴 옹칸, 나이만족의 왕칸, 그리고 테무진과 그의 라이벌 자무카와의 경쟁이 끝나면 테무진이 몽골족을 통일하게 될 거야. 그때쯤은 초원은 테무진의 무대가 됩니다. 만약 테무진과 자무카의 자웅 겨루기에서 자무카가 승리한다면 초원은 토그릴 옹칸의 무대가 됩니다. 그러나 나는 자무카보다 테무진을 선택합니다. 그러니까 토그릴 옹칸 밑에서 테무진이 부를 때까지 신임을 얻으면 성공하는 거야. 테무진의 신임을 얻게 되면 그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잘 가르치고 아시아가 유럽을 도와서 기독교 세계제국의 날을 앞당길 수 있어요. 그 엄청난 사명을 파울로가 담당하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는 토그릴 진영이나 나이만족 왕칸의 휘하에도 그들에게 좀 더 분명한 복음, 사제 왕 사상을 심을 인재들을 보낼 터이니 그리 알고 있으면 좋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우리 카라 키타이 복음은 사제 왕 복음을 말씀하는 것이죠.”

“응, 파울로! 그것까지 알고 있구먼.”

요한 주교는 벌떡 일어나 뛸 만큼 좋아했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파울로의 눈에 경망스러울 만큼이었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흥분하고 있었다.

투루판 주교는 파울로의 어깨에 손을 얹고 기도했다. 축복의 기도였고 감사의 기도였다. 파울로 또한 자기가 투루판 주교의 신임을 받게 된 것에 만족했다.

다음날 마침 파울로는 태자와 을지 고 총사령관 앞으로 가서 하직인사를 올렸다. 그는 참아내려고 했던 눈물을 태자와 눈이 마주치자 흘리고 말았다.

“파울로! 우리는 예수님처럼 살기로 했지 않은가. 산 자가 되려고 복음의 초대를 받았으나 살리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다시 그 목숨을 내놓는 거야. 이 말은 그대가 내게 해 준 말이잖은가?”

파울로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파울로, 언제쯤일지는 모르나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는 거요. 그때 그대는 테무진의 일급 참모가 되어 있을 것이고 내가 기대하는 명령을 성공적으로 지켜낸 영웅이 되어있을 거야. 나는 그날을 믿고 기다릴 겁니다.”

파울로는 고비사막 서북쪽 끝자락 최전방 진지로 가서 케레이트 연락병을 기다렸다. 케레이트뿐 아니라 동북쪽으로는 나이만과의 연락망이 있다. 최전방 부대 조직으로 초원의 군사 이동이 카라 키타이를 향한다든가 하는 비상시는 매우 신속하게 주요 부대들이 결집해 일차 방어망을 형성하는 조직체였다.

파울로가 케레이트 군영으로 갔을 때는 테무진의 몽골 세력이 주변을 위협하고 있는 때였다. 케레이트로 갔지만 테무진 진영으로 갈 수 있다거나 케레이트의 옹칸을 만나지도 못한 채 일년 정도의 세월을 보냈다. 파울로는 옹칸 토그릴 직속부대에서 심부름이나 하고 다른 종족과의 전쟁터에 나가더라도 직접 전투는커녕 예비마를 지키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인내로 기다렸으나 버림받은 것 같은 마음이 자꾸만 그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그러던 어느 날 옹칸의 부름을 받았다. 40살쯤 보이는 장골이었다. 그러나 초원의 최강자다운 위엄보다 찬찬히 바라보면 눈가에 자애로운 미소를 간직하고 있었다.

“그대가 카라 키타이 태자의 아끼는 참모 파울로인가? 그런데 어찌하여 로마 기독교의 학자가 될 사람이 아시아의 끝까지 왔단 말인가?”

“네, 저는 십자군 부대 중간 장수로 에뎃사 전투에 참여했습니다.”

“그래요. 그런데 그대가 테무진을 만나고 싶어서 이 험한 초원까지 왔다는데, 그 이유는 내게 밝힐 수 없겠지?”

“아닙니다. 말씀드릴 수 있나이다. 제가 카라 키타이에 먼저 왔지요. 십자군이 찾는 네스토리우스 파 나라의 왕 중에 프레스터 존이 있다고 해서지요.”

“그래, 카라 키타이 창업주 카간 야율 대석이 사제 왕 요한이라 했지.”

“어떤 이들은 케레이트 토그릴 옹칸이라고 하고, 또 나이만의 왕칸더러 프레스터 존이라고 합니다.”

“그런가? 그럼, 그대 파울로는 누가 사제 왕이라고 하는가?”

“네, 제가 아시아로 건너올 때는 한 사람 사제 왕 요한을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키타이에서 훌륭한 선생님을 만났는데 그분은 말씀하시기를 사제 왕은 한 사람뿐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래, 그대에게 그 가르침을 준 선생이 카라 키타이에 있다고?”

“네, 나의 선생님은 인류의 구세주는 예수님 한 분이시고 세계 각 나라마다 축복받은 나라들은 사제 왕을 가질 수 있다 하셨어요. 저는 그 말씀과 성경의 가르침이 일치한다고 봅니다. 성경에는 나를 믿는 너희는 나의 하는 일을 너희도 할 수 있다는 말씀이 있는데, 그래서 저는 그 말씀에 대한 신뢰가 있습니다.”

“그래요? 그 선생님이 누구신가?”

“네, 저희 카라 키타이 태자이십니다.”

“저런, 어린아이가 아닌가?”

“아닙니다. 저보다 더 건장한 헌헌장부이시고 그 총명이 매우 놀랍습니다.”

“태자가 그대를 테무진에게 보냈단 말이지?”

“아닙니다. 테무진과 옹칸께옵서는 연합체로서 테무진을 만나라 하심은 같은 젊은이고 옹칸은 쉽게 만나뵙기가 어렵기에 먼저 테무진을 만나라 하심인 줄 저는 알고 있습니다.”

“변명하지 않아도 돼. 내가 곧 테무진을 만나도록 하지.”

당시 몽골 초원은 케레이트 옹칸과 테무진의 연합체 관계로 모두들 떨고 있었다. 수많은 종족 집단들이 이합집산 하는 초원에서 실질적인 최강자인 토그릴과 전설적인 “카불 칸”이 증조부인 테무진 명문가와의 결합은 초원의 균형이 깨지는 사태였기 떄문이다.

파울로는 테무진의 소문을 귀를 열고 듣고 있었다. 테무진은 신진 세력이기는 하지만 몽골족뿐 아니라 초원의 전설적인 영웅 “카불 칸”의 직계손인데 의외로 그는 성품이 소박하고 약자에 대한 배려가 깊었다. 테무진은 한 부족의 최고가 되었으나 늘 사치하지 않고 평범한 생활을 즐겼으며, 음식을 먹어도 하급병사들과 같은 수준을 원했고, 특별한 때가 아니면 누더기 옷을 즐겨 입었다. 이미 그는 몽골 부족의 칸으로서 수만 명의 하부 조직을 두고 있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옹칸의 궁으로 파울로가 불려갔다. 황금기둥이 반짝이는 대칸(대왕)의 궁전이었다. 역시 금으로 장식된 보좌에 토그릴 옹칸이 앉아있고 그 옆에 테무진이 와 있었다. 그동안 먼발치에서 그의 모습을 본 일은 있었으나 초원의 현지에서 태자 요한이 무척 궁금해 하는 테무진을 만난다. 파울로는 잔뜩 긴장했다.

“테무진! 여기 카라 키타이 태자의 친구인 파울로가 자네를 만나고 싶어서 와 있어요. 자네를 만나기 위해 내 군진에 온 지 1년이 넘었어요. 잘 사귀어 보시게.”

파울로는 옹칸이 자기 소개를 해주자 벌떡 일어나서 테무진 앞으로 몇 걸음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어 군례를 올렸다.

“어, 어 왜 이러시오. 그대는 카라 키타이 태자님의 친구라면서….”

테무진의 젊고 너그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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