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동유럽 근현대사> 저자 오승은 박사

수많은 외세의 침략과 복속, 강대국들 사이에 낀 현실, 내부 갈등… 동유럽이 걸어온 역사와 현재를 몇 가지로 함축해보니 한반도 역사와 닮아도 너무 닮았다. <동유럽 근현대사>(책과함께)의 저자 오승은 박사는 아예 “동유럽은 한반도의 ‘이란성 쌍둥이’ 같은 곳”이라며 낯설기만 한 동유럽 이야기를 우리 곁으로 바짝 끌어당긴다. 세계열강들의 각축 속에 방향을 잃고 우리끼리 서로 물고 뜯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실마리, 동유럽 역사에서 발견할 수 있을까?
<편집자주>

세계열강들의 각축 속에 방향 잃고 우리끼리
물고 뜯는 현실… 한반도와 닮은꼴-동반의 해법 찾기
진정한 평화 구현은 주변 강대국과의
민주화 이뤄질 때 가능, 자기 성찰의 힘 길러야

 

 

▲ 오승은 박사

△ 학계에서는 비주류로 여겨지는 동유럽 역사에 관심 갖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 후진국으로 여겨지는 동유럽을 한반도와 쌍둥이라고 하면 욕먹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동유럽을 공부할수록, 늘 강대국에 치여서 어쩔 줄 모르는 그 역사는 우리의 복사판이라는 게 더욱 확고해졌다.

1991년에 유고슬라비아 전쟁 발발과 UN제재 조치로 그쪽으로 가지 못하고 런던대학교 킹스칼리지에서 ‘크로아티아 민주연합과 크로아티아 민족주의’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2년에 귀국해 ‘동·서유럽 간 불평등’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책은 그 일환이다.

처음엔 한반도와의 유사성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데 서유럽의 중심지 런던에서 동유럽을 공부하면서 ‘서유럽에 의해 만들어지는 주변부 동유럽’이라는 문제의식에 서서히 눈뜨게 됐고 시간이 흐를수록 한반도의 자화상이 보였다.

△ 역사를 다룬 책이라고 하기에는 글씨도 큼직하고 읽기 쉽겠다 싶었는데 문장 하나에 함축된 분량이 적지 않다는 걸 느꼈다.

- ‘3중의 문명 교차로’인 동유럽은 역사가 복잡하다.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대륙이 만나고, 더불어 종교적으로도 동방정교, 서방 가톨릭, 이슬람 3대 종교문명이 1500년 이상 만나고 교차하며 각축을 벌인 역사가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다. 그러나 우리의 동유럽 역사 이해는 두텁지 못하다. 냉전시대 이후 사회주의에서 시장경제로의 체제이행 이후 빈곤문제가 심화돼 몰락한 중산층이 길거리 쓰레기통을 뒤지고, 돈 없는 가정이 분신자살하며, 부패한 정치인에 대한 실망으로 대규모 시위가 빈번하지만, 한국의 언론에서 그려내는 동유럽은 평화롭고 목가적이기만 하다.

동유럽은 굉장히 많은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곳이다. 내가 박사논문 쓴 것은 크로아티아로 동유럽의 14개국 중 한 나라다. 동유럽에 대한 이해가 왜곡된 면이 많은 것을 보면서 동유럽 전체를 소개하는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 우리가 동유럽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박사논문 쓰면서 가지고 있던 문제의식 중 하나는 동유럽을 서구중심의 왜곡된 시각으로 그리는 서구 역사학자들의 역사 서술이었다. 동유럽 역사는 줄곧 외세에 공격받고 침략당하고 지배받는 역사였다. 그런데 그들이 침략당한 역사를 정치와 경제가 발전하지 못한 동유럽의 책임으로 돌리는 냉랭한 시각을 보면서 화가 났다.

유학 간 때가 1992년 4월 보스니아에서 민족전쟁이 일어나 크로아티아로 확산되던 때였다. 매일 저녁 뉴스에서는 그날의 전투 현장 소식과 함께 사망자가 몇 명인지를 알리는 것이 핫 토픽이었다. 거리에 사람들의 시체가 널려있는 모습을 수없이 봤다. 시장에서 빵 사려고 줄서다 포탄이 터져 죽은 사람들을 보면서 왜 하필 이런 곳의 역사를 공부한다고…, 내가 선택을 잘못 했구나 싶었다.

그런데 동유럽이 한반도와 닮았다는 것을 발견하면서 그들의 역사를 다시 보게 됐다.

2003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판문점을 방문해서는 이곳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이라고 발언했다. 그렇게 만든 게 누군데? 하는 반발심이 일었다. 남북한이 세계열강들에 의해 치고받는 상황으로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왜 싸우느냐고 손가락질하는 격이 아닌가. 이는 동유럽이 국제지정학적으로 베르사유조약, 얄타 체제, 베를린협정 등 열강들의 각축 속에서 이뤄진 역사의 부작용을 지금도 겪어내고 있는 현실과 오버랩 되는 부분이다. 동유럽의 현실을 모두 서구 열강의 책임이라고 할 순 없지만 그들의 문제를 빼놓고는 해법을 찾을 수 없다. 서구 중심적인 역사 해석을 넘어 역사의 민낯을 제대로 봐야 동유럽이나 우리나 엉클어진 오늘에 대한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봤다.
 

▲ 동유럽근현대사

△ 동유럽이 안고 있는 문제 중 민족주의를 짚으셨다. 우리도 분단현실 속에서 민족주의를 지향하는 움직임이 있는데, 어떻게 보시나?

- 동유럽 역사 해석의 쟁점 중 하나는 민족주의다. 20세기는 피지배 민족들이 전 세계적으로 해방과 독립을 맞이한 시기로, 그 물꼬를 튼 것이 동유럽이었다. 그런데 동유럽에서 여러 민족이 공유하며 함께 살아온 공간에 대해 특정 민족만이 영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민족국가의 수립은 그야말로 피를 부르는 폭력적인 과정이었다.

브루바커에 따르면 민족국가 건설은 ‘핵심 민족화’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국가 건설의 주도권을 쥔 핵심민족과 그 주도권에서 배제된 비 핵심 민족으로 분리돼 신생 독립국가 건설은 모든 구성 민족을 포용하기보다는 ‘핵심 민족을 위한’, ‘핵심 민족에 의한’ 정체(政體) 만들기 과정으로 진행됐다.
보스니아의 독립을 반대해왔던 보스니아 세르비아계는 1992년 5월 25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수도인 사라예보에 포격을 감행, 보스니아 내 이슬람교도에 대한 인종청소를 자행하는 보스니아 내전을 일으켰다.

우리나라도 남북 분단 현실에서 일부가 민족주의를 주장하기도 하지만 그런다고 진정한 통일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특히 국제외교에서는 더욱 통하기 어려운 얘기다.

△ 동유럽과 한반도에 대한 해법 찾기, 어떻게 가능할까?

- 해법은 두 가지로 본다. 먼저, 내적으로 민주화가 탄탄하게 이뤄져야 하고, 그것과 함께 주변 강대국과의 민주화가 돼야 한다. 현재 동유럽은 체제이행의 부작용, 우파 포퓰리즘의 부상 등의 문제를 안고 있지만 진정한 민주화를 요구하는 개혁의 바람 또한 거세게 불고 있다. 크로아티아의 젊은 철학자 스레츠코 호르밧이 주도하는 ‘유럽민주화운동25(DiEM25)’이 대표적이다.

동유럽의 진정한 민주화를 위해서는 단순히 동유럽 민주주의 발달만이 아닌, 16세기 이후 지속된 동·서유럽 국가 간의 불평등한 관계라는 근원적인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화는 한 나라 차원에서 국민주권의 완성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동·서유럽 국가 간의 관계, 동유럽 국가와 유럽연합과의 관계 등에서도 다면적이고 복합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목표라 할 수 있다. ‘열강의 각축장’이었던 역사의 결과로서 여전히 갈등의 불씨를 안고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그들의 행보에 주목해야만 하는 이유다.

두 번째는, 전체를 보는 사고의 유연성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동유럽이 서유럽보다 가난한 게 문제가 아니라 외세에 치이면서 방어하고 싸우는 데 익숙해져 사고의 유연성을 잃어버리고 자기 성찰이 안 된다는 것이다. 좁은 시야로는 자기들 안에 있는 괴물을 보지 못한다. 민족주의를 앞세운 인종청소가 그것이었다. 현실의 문제를 풀어가려면 스스로 편향된 것은 아닌지 살피고, 내 안의 적폐와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 

결국 자기 성찰을 통해 문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 전체를 보지 못하고 나만 옳다고 여기는 사회는 결국 해체된다. 동유럽을 빗대서 우리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앞으로 중점적으로 펼쳐가야 할 부분이다.
 

△ 동유럽 역사에서 기독교의 역할과 영향을 빼놓을 수 없을 텐데, 동유럽의 기독교에 대해 어떻게 보시는지?

- 동유럽 인구의 다수는 슬라브족으로, 600여 년에 걸쳐 로마 제국이 동·서로 분열된 분기점을 따라 지금의 동유럽으로 이주해 들어왔다. 395년 로마제국이 동·서로 분열되고, 1054년엔 기독교가 동·서로 분열되는 혼란스러운 국면이었다. 로마 제국의 입장에서 보면 슬라브족은 이민족이었으므로, 슬라브족은 가톨릭과 동방정교 간의 치열한 선교경쟁(개종전쟁) 속에서 살 길을 모색해야 했다. 15세기 이후에는 동유럽을 둘러싼 동·서 기독교 대립의 구도가 기독교 대 이슬람의 싸움으로 전환됐다.

헝가리를 중심으로 서쪽 나라들인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등은 서로마제국에 더 가까워 가톨릭을 받아들였고, 콘스탄티노플 쪽은 동방정교를 받아들이는 등 종교를 중심으로 동유럽 안에 분열선이 생겼다. 문제는 종교적인 정체성이 민족 정체성으로 전이된 것이다. 강연하다보면 유고슬라비아 전쟁을 종교전쟁으로 보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종교전쟁을 빙자한 영토전쟁이다. 안타까운 것은 민족경쟁의 싸움에 어느 누구보다 종교계 지도자들이 앞선다는 것이다.

동유럽이든 우리든 종교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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