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 > 연재 소설
초원의 도발자들 >3<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천년여행 [ 232 ] / 사제 왕 요한 39
조효근/작가  |  dsr123@daum.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1661호] 승인 2018.03.21  13:02:25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메르키트족 군사들이 집요하게 추격했다. 태양이 떠오르자 말발굽에 풀이 밟힌 자국을 따라서 뒤를 밟았다. 부르칸 칼툰은 산새가 험하지는 않았으나 빽빽한 나무숲이 테무진 집단을 보호해 주었다.
메르키트족 전사들은 테무진 잡는 일 정도는 시간 싸움일 뿐 이미 적들은 독 안에 든 쥐들로 여겼다. 

   
▲ 카자흐스탄의 한 이슬람 사원 앞에서 신랑 신부와 일행들이 즐거운 날을 보내고 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테무진이 파울로를 일으켜 세웠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우리는 서로 친구로 사귈 처지이지 누가 누구를 우러를 입장이 아니오. 지나치면 욕이라는 옛 어른들의 말도 있습니다.”

파울로는 테무진의 소탈하고 겸손한 태도에 긴장을 풀었다. 마주앉아서 테무진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의 얼굴은 평범해보였다. 지금 그는 옹칸 토그릴에게 중요한 부탁을 하러 왔다고 들었다.
“테무진, 파울로 학자님과 이야기 좀 나누게. 자네를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야. 자네의 앞날에 축복이 열릴지도 몰라요.”

토그릴은 둘을 남겨두고 다른 방으로 건너간다. 파울로는 칸의 궁정규모를 잠시 둘러보았다. 초원의 이동식 거처지만 일반 주거보다 열 배는 더 커 보이는 말 그대로 궁궐이었다.

“파울로 님, 뭘 나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었소. 그게 사실이오.”

테무진은 미소를 띠며 파울로의 표정을 살핀다. 파울로는 태자의 마음이 테무진 칸을 향하고 있음을 말해주었다.

“우리 카라 키타이 태자는 장차 초원의 큰 지도자가 될 테무진 칸과 사귀고 싶어 하오. 직접 오시겠다고 하는 것을 제가 일단 다녀오겠다고 사정사정해서 왔으나 오늘에야 귀인을 뵙는 기쁨을 얻었습니다.”

“난 아직 칸이 아니오. 우리 몽골 부족을 내가 이끌고 있지만 실제는 자무카 세력과의 갈등이 있지요.”

“저도 들어서 압니다. 그러나 초원의 현실이 각박해도 가문의 전통이 있지 않습니까. 당신의 증조부께서는 몽골 초원 전체를 이끄셨던 카불 칸이심을 저도 압니다.”

“부끄럽소. 못난 후손이죠. 그러나 내 마음 깊은 곳에 증조부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테무진 칸이시여.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있는데, 저를 휘하에 군사로 받아주시오.”

“허허, 거 무슨 말씀. 각기 길이 있거늘 그리고 선생은 학문을 하는 카라키타이의 중요인물이신데….”

“네, 그렇습니다. 카라 키타이의 장래가 초원의 주요지도자들과의 관계에 달려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평화죠. 또 동맹이기도 합니다.”

“평화요 동맹이라…, 잘 모르겠습니다.”

그때 옹칸 토그릴이 나타났다.

“테무진! 파울로 학자를 동지로 받으라. 파울로는 기독교의 선생님이다. 우리 케레이트나 테무진이 기독교의 핵심 가르침을 통해서 로마제국과도 형제의 길을 열 수 있어. 바로 이 사람 파울로는 키타이 사람도 아니고 로마의 학자요. 십자군 알지. 무슬림과 전면전을 벌이고 있는 십자군 부대의 주요 장수이기도 해요. 너나 우리 초원의 갈 길에 매우 중요한 선물로 하나님이 보내신 거야. 나는 저 사람이 내 곁에 있으면 좋겠는데, 테무진을 지목하고 왔으니 내가 보내줄게.”

토그릴은 선언했다. 누가 끼어들 수 없다. 두 젊은이는 토그릴의 선언이 아니라 명령에 더는 가타부타를 할 수가 없었다. 이 말을 하고는 토그릴 옹칸은 자기 집무실로 들어가 버렸다.

테무진과 파울로는 한동안 침묵했다. 파울로는 옹칸 토그릴의 성품이 그의 지위와는 달리 섬세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파울로가 자기를 찾아오지 않고 테무진을 지목한 데 대한 서운한 마음을 숨기지 않음을 볼 수 있었다. 초원을 찾아올 때 메르브 네스토리우스 교단 본부의 선교사 자격으로 올까도 생각했었다. 선교사 신분일 경우 옹칸이나 테무진을 깊이 있게 사귀는데 거리감이 있을까 하여 피했다. 직접 초원의 군사가 되어 신임도 얻고 자신의 기량도 키워볼 뱃심이었다. 그런데 토그릴 옹칸이 자기 속내를 보이니까 갑자기 조심스럽다는 느낌을 가졌다. 혹시 자신을 간자로 의심할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테무진은 파울로와 동행해 자기 종족이 야영하고 있는 케를렌 강 최상류로 갔다. 맑고 숲속 깊은 곳에서 흘러내리는 강가에 앉아 파울로는 테무진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테무진은 아직 부족집단을 이끄는 부족장이 아니고 칸은 더더욱 아니었다. 초원의 이동종족들은 수시로 부족들 간의 전쟁이 있었다. 요즘은 테무진의 어머니와 그의 아내인 보르테의 출신 종족인 메르키트족의 공격을 두려워하고 있다. 언제 갑작스런 기습을 당해도 피하기 쉽고 방어나 공격이 용이한 지형을 찾아 주거지를 정한다.

테무진이 파울로를 자기 집으로 부르기에는 시기가 좋지 않아서 망설였으나 파울로가 지금 함께 가겠다고 우기니까 오게 된 것이다. 케레이트 옹칸에게 검은담비 모피를 들고 가서 아버지 도와주세요, 했던 것도 급한 요즘의 형편이라 어수선하기도 했으나 파울로가 욕심나기도 해서 같이 온 것이다.

테무진 집안은 메르키트족에게 크게 원망 들을 원한이 있었다. 테무진 부친 예수게이가 다른 남자에게 가마타고 시집가는 메르키트족 신부 헐룬을 납치해 아내를 삼고 테무진을 낳았으니 이는 사돈관계 이전에 메르키트족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준 사건이었다. 불법한 일이기는 하지만 초원에서는 늘상 있는 일이다. 그런데 메르키트족은 초원의 최강자로 불리는 옹칸 토그릴의 케레이트 부족에게 뒤지지 않을 부와 군사력을 가진 콧대 높은 종족이다. 그런데 흘러간 카불 칸의 영웅시대는 전설일 뿐인 몽골족 자손인 예수게이에게 정혼한 가문의 신부를 빼앗겼으니 두고두고 원한이 남아있었다. 더구나 테무진이 또 메르키트족의 딸 보르테를 아내로 삼은 일까지 벌어졌다. 그런데 초원의 무당과 점술사들이 하나같이 테무진이 장차 큰 인물이 된다는 소문을 내고 있어서 질투가 난 것일까? 요즘 메르키트족 눈치가 수샹해서 경계하고 있는 중이었다.

테무진과 파울로가 낮인지 밤인지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우며 기독교 복음과 장차 초원은 물론 중앙아시아 저 너머 비잔틴(동로마) 땅까지의 평화 세계를 설계하다가 깊이 잠든 새벽이었다. 테무진 집안에서 일하는 노파 코아친이 마침 새벽잠을 설치고 있었다. 그녀가 몸을 뒤치는데 미세하게 땅바닥이 울리고 있음을 느꼈다. 몽골 사람이면 바로 이런 순간의 감각이 발달해 있다. 사방이 뻥 뚫린 초원이다. 코아친이 다시 귀를 땅바닥에 밀착하고 유심히 들어보니 말발굽소리다. 많은 숫자의 말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분명했다. 코아친 할멈은 황급히 테무진의 모친 헐룬을 깨웠다. 메르키트족들일 것이다. 날이 밝지 않은 시간이기에 기습이었다. 헐룬은 재빨리 식구들을 깨웠다. 게르와 살림살이를 챙길 여유는 없었다. 모두들 마굿간으로 가서 말고삐를 잡았다. 가난한 테무진 집안에는 말이 부족했다.

당시 테무진과 함께 피한 가족은 테무진의 모친 헐룬, 남동생 카사르, 카륜, 테무게, 여동생 테물린, 계모 소치겔, 이복동생 벨구테이, 테무진의 아내 보테르, 친구 보르추, 젤메, 그리고 파울로가 있었고, 그들과 함께할 군사들은 그곳에 없었다. 집요한 기습이었다. 남자들이 먼저 말을 타고 달렸다. 여인들이나 나이 많은 노파들은 말을 타기도 쉽지 않았고 또 말이 두세 마리쯤 모자랐다.

말을 탄 일행들은 테무진 동반 게르 두 곳에 연락책을 보내고는 주변 가까운 산인 부르칸 칼둔으로 피난했다. 테무진은 따라오지 못한 사람을 산에 올라서야 헤아려보았다. 계모 소치겔과 아내 보르테가 보이지 않았다. 또 코아친도 보이지 않았다. 테무진은 계모와 아내는 책임감 때문에 뒤에 따라올 것으로 생각했다. 코아친은 마음에 걸렸으나 보르테를 자기 딸처럼 아끼는 할멈이니 보르테를 지키기 위한 어떤 방법을 세웠을 것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최후의 순간 테무진이 살아남아야 하니까 예비마를 따로 보호해야 했다.

메르키트 전사들이 몰려왔을 때는 모두 피신한 뒤였다. 코아친 할멈이 짐을 싣는 수레에 보르테를 숨기고 양털 짐으로 가장해 테무진의 반대 산 쪽으로 피해서 가다가 급한 마음에 수레가 뒤집혀 메르키트 병사들에게 보르테가 잡히고 말았다. 메르키트족은 작전에 성공했다. 이제는 테무진만 잡으면 완전 성공이었다.

메르키트족 군사들이 집요하게 추격했다. 태양이 떠오르자 말발굽에 풀이 밟힌 자국을 따라서 뒤를 밟았다. 부르칸 칼툰은 산새가 험하지는 않았으나 빽빽한 나무숲이 테무진 집단을 보호해 주었다.
메르키트족 전사들은 테무진 잡는 일 정도는 시간 싸움일 뿐 이미 적들은 독 안에 든 쥐들로 여겼다. 메르키트 전사들은 부르칸 칼툰 산 전체를 세 겹으로 에워쌌다. 단단히 벼룬 것이다. 테무진이 초원의 주인이 된다는 점쟁이들의 점괘를 여지없이 비웃어버리기로 했다.

메르키트 전사들과 테무진의 인내심의 싸움이었다. 하지만 테무진은 참는 일에는 늘 자신이 있었다. 그의 처세훈은 인내심이다. 충분히 참고 견디어내는 성품이 몸에 배었다. 떠나자, 메르키트 전사들은 무작정 세월을 허비할 수 없었다. 테무진은 산에서 섣불리 내려가지 않았다. 자기 아내 보르테가 적들에게 잡혀갔다. 잡혀가면 어떻게 되는 것을 그는 잘 안다. 당장 어느 홀아비나 힘센 놈의 첩실이 되어버린다. 보르테를 아내로 맞이하면서 모처럼 행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던 그가 아리땁고 착한 자기의 아내를 지키지도 못했으니 부끄럽다. 적들이 포위망을 풀었음에도 그 자신은 납작 엎드려있고 벨구데이와 절메, 보르추를 정탐꾼으로 적들을 역추적하게 했다. 혹시라도 잠복조를 남겨두었는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세 사람은 며칠 동안 메르키트족 주변을 살폈으나 산속에 매복조를 두었다는 낌새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들은 테무진에게 돌아와 모두 떠났음이 분명하다고 보고했다. 그때서야 테무진은 가슴을 치며 탄식하다가 크게 울부짖었다.

“야, 나는 내가 살자고 코아친 할머니를 내팽개쳤구나. 그 할머니가 잠귀가 밝았기에 우리가 살았고 내가 살아남았는데, 내가 코아친 할머니를 적들에게 남겨두고 나만 살자고 도망쳤구나. 여러분, 이놈 테무진 벼룩이 목숨 같은 나 살자고 은혜를 저버린 이놈을 용서해 주시오.”

테무진은 땅을 치면서 울고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 앞에서 용서를 빌었다. 이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파울로는 테무진을 얼싸안고 같이 운다.

조효근/작가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10-460 서울시 종로구 창경궁로 16길 73-6(연건동)  |  대표전화 : 02-3676-3082~5  |  팩스 : 02-3676-3087
신문등록번호 : 서울 다 06483  |  등록일 : 1988.5.31  |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 조효근  |  이메일 : dsr123@daum.net
Copyright © 2013 들소리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