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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의 도발자들 >4<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천년여행 [ 233 ] / 사제 왕 요한 40
조효근/작가  |  dsr12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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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2호] 승인 2018.03.28  19:5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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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두 사람은 하나다.
우리 둘 중에는 2인자가 없다.
공동 1인자요 공동운명체다.”
자무카가 선언했을 때 모두 우레와 같은
박수를 쳤으나 파울로는 한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은 없지, 라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 여기 키르키스탄에도 네스토리우스의 후예들이 있을까요 키르키스탄의 여인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어떻게 하는 겁니까? 나는 내 생명의 은인도, 사랑하는 아내까지도 지킬 수 없는 인간이 되고 말았소. 인간이 이토록 비참할 수 있나요?”

테무진의 울부짖는 모습은 평소의 모습이 아니었다. 맹수의 모습이었다. 그의 얼굴은 분명히 새끼 잃은 북방의 호랑이 같았다. 파울로는 졸지에 당한 비참한 한 인물의 모습 앞에서 아무런 위로를 줄 수 없었다. 잠이 들었을까 말까 한 새벽 깊은 시간에 자기 가족과 따르는 자들을 이끌고 도망쳐야 하는 테무진의 모습에서 초원 종족들의 생존환경을 경험하게 되었다. 달리 도움을 줄 수 없었다. 할 말을 잃은 파울로가 허공을 응시하며 자기의 다음 행동을 찾고 있는데 테무진이 그를 붙잡았다.

“친구여, 내가 너무 어리석은 모습을 보여 미안하오. 그러나 염려 마시오. 나는 잃어버린 아내는 물론 코아친 노파를 곧 찾을 수 있소. 나 이 정도의 환경에 절망하는 놈 아니외다. 잠시만 더 기다려 주시오.”

파울로는 테무진의 ‘기다리라’는 말뜻을 알아들었다. 그는 “걱정 마시오. 나는 당신에 대한 신뢰가 무한합니다. 당신은 큰 지도자가 될 인물입니다. 내가 곁에서 돕겠소” 하고 말하면서 테무진의 분노에 동감하고 있었다.

테무진은 옹칸 케레이트의 토그릴을 찾아갔다. 자기 가족의 비극을 말했다. 토그릴은 테무진의 처지에 대한 확실한 답을 주었다.

“알겠다. 네가 나를 ‘아버지’라고 말하는데 내가 어찌 너를 외면하겠느냐?”

시원한 말이었다. 그러나 옹칸은 군사 2만 명을 주겠다면서 자무카에게도 도움을 요청하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테무진은 처음에는 의아했다. 그러나 옹칸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뒤늦게 알았다. 정치적 계산법을 가르쳐준 것 같았다. 같은 몽골족 출신으로 명분은 테무진이지만 현재의 실력자는 자무카였다. 자무카의 벽을 넘어야 처자식 지키는 자격이 된다는 뜻, 벽을 넘어야 그 너머의 평원을 질주하는 법을 가르치는 듯했다. 테무진은 자기의 비참한 현실을 자무카에게 전했다. 카사르와 벨구데이 두 동생을 자무카에게 보냈다. 자무카는 테무진이 부하들 편에 전하는 도움 요청에는 옹칸의 뜻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았다. 초원 세력들의 불문율이다. 명분이 있어야 한다. 토그릴의 군대와 자무카의 연합군은 그들이 피할 수 없는 명분이 있었다. 테무진은 케레이트 옹칸 안다(예수게이)의 아들이고, 자무카 또한 테무진의 안다였다. 이들이 아내의 가족을 빼앗긴 테무진을 도와서 연합군을 형성했을 때 초원의 윤리는 그것의 정당성을 인정한다. 명분은 세력 간의 전쟁도 그 이상으로 평가한다. 막상막하의 세력을 가진 종족들 간의 전쟁에 연합군의 전쟁이란 명분 싸움이다.

케레이트 옹칸과 테무진의 경쟁자인 몽골족의 자무카는 테무진과의 신의를 지키고 늘 버거웠던 메르키트 족을 괴멸시킬 공동의 명분을 얻었다. 이는 군사와 정치의 복합기술이었다. 

테무진 시대의 12세기 몽골 초원의 전체 인구가 1백만쯤 되었다. 그들 모두가 군사력으로 동원할 청장년들은 대략 10만여 명이다. 케레이트의 옹칸과 자무카가 동원할 군사가 각각 2만 명씩이면 4만 명의 연합이다. 최강자인 케레이트 옹칸을 위협하는 세력 하나는 메르키트족이고 또 하나는 나이만족이다. 전체적인 초원 부족들의 정예 군사를 10만 명이라 했다. 여기서 명분을 확보한 케레이트와 자무카의 연합군 4만 명은 무적이었다. 더구나 자무카는 전투의 천재였다. 자무카는 테무진보다 한두 살 위였으나 전투경험이 풍부하고 대외적으로 이미 그 용맹을 인정받고 있는 장수였다.

옹칸은 자무카를 총사령관으로 세웠다. 자무카는 이에 만족하고 테무진을 자기의 부하로 삼지 않고 별정군 지휘를 주어 친구이며 경쟁자인 그에게 자기와 동급의 명분을 세워주었다. 테무진의 머리도 빠르게 회전했다. 이미 유럽 십자군 진영에게까지 그 명성을 가진 옹칸은 테무진 부친 예수게이의 의형제로 예수게이가 세상을 떠난 지금은 테무진의 아버지 노릇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 자신은 같은 몽골족 경쟁자인 자무카보다는 자신이 아버지로 호칭하는 옹칸의 지위를 지키면서 후계 수업을 하면 되는 것이다. 자무카는 테무진과의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테무진과 또 테무진의 아버지인 초원의 최강자인 옹칸의 부자간 세력과 투쟁을 해야 하는 것까지를 알고 있을까.

테무진은 메르키트 세력을 진멸하고는 잃어버린 아내 보르테를 되찾았고, 자무카는 부자이면서도 군사력이 강한 메르키트족을 괴멸시키고 전리품을 잔뜩 챙겼다. 그리고 케레이트의 옹칸은 명분을 두둑하게 챙겼다.

태풍이 지나갔다.

드디어 테무진은 아내인 보르테와 재회했다. 그것뿐이 아니다. 모처럼 4만 명의 군사를 공동지휘하면서 전쟁이 무엇인지, 전투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전투 중 전략전술 등을 어떻게 요리하는지까지도 배웠다. 군사동원령 또한 경험했다. 많은 것을 얻었다. 10년쯤은 성장한 듯한 느낌과 함께 큰 자신감을 얻었다.

자무카는 연합군을 이끌고 메르키트족 전체를 씨를 말리려 들었다. 메르키트의 주력부대가 괴멸되었으며 테무진은 빼앗겼던 아내를 찾았다. 계모인 소치겔이 행방불명되기는 했으나 생명의 은인인 코아친 노파는 찾았다. 이복동생 벨구테이의 분노는 멈추지 않았으나 더 이상의 살육은 피하고 싶었다. 그는 옹칸과 자무카에게 덕분에 원수를 갚았으며 메르키트족이 거의 전멸했으니 그만 종전하자고 요구했다.

연합군이 전투를 정지하고 옹칸의 군사들은 돌아갔다. 테무진은 그 자신을 따르는 작은 규모의 군사들은 대책이 없었다. 몽골족 집단이지만 대다수가 의형제인 자무카의 부하들이다. 초원의 조건은 전사 집단이어야 한다. 자기방어 장치가 없으면 어느 시간에 목숨이 없어질지 모른다. 도망치던 메르키트 패잔병들이 언제 다가와 목을 칠지, 또 다른 세력들의 먹잇감이 될 수도 있었다.

테무진은 체면불구하고 일단은 자무카군 진영에 남기로 했다. 위험천만한 선택이었다. 파울로가 그래도 되겠느냐고 조심성을 요구했는데도 테무진은 웃었다. 파울로는 자무카 총사령관이 메르키트족을 향해 전투 수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의 야망을 읽었다. 자무카는 초원의 최강자로서의 세력을 가진 옹칸을 대하는 모습에서 조심성이 없었다. 오히려 그에 비하면 그는 테무진을 무시하는 듯했으나 또 다른 눈으로 보면 그를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이미 항복한 메르키트족의 씨를 말리려 드는 모습에서 잔인하고 교활함을 보았다. 바로 그때 테무진이 나서서 옹칸과 자무카에게 ‘필요 이상의 살생은 도리가 아닙니다’ 했을 때 파울로는 테무진이 자랑스러웠다. 또 테무진이 자무카의 휘하로 일단 소나기를 피하듯이 고개 숙이며 들어가는 모습에서 그의 용기도 볼 수 있었다.

자무카는 테무진이 작은 무리를 흔쾌히 받아주었다. 그것도 부하로서가 아니라 그 자신과 동급의 동료로 대접했다. 자무카와 테무진은 숲속으로 들어가서 그들간의 안다(의형제 맺기) 의식을 또 맺는다. 벌써 세 번째라고 했다. 이 또한 그들 초원의 의식이었다. 의식을 마치고 테무진은 자무카가 좋아하는 검은색 말을 주고, 자무카는 테무진에게 백마를 준다. 그들의 좋아하는 색깔인 듯했다. 또 두 사람은 황금빛 허리띠를 서로 교환했다. 허리띠는 남성의 힘을 상징한다. 더 구체적으로는 남근의 위력이다. 서로의 남성적 기치를 존중하는 뜻으로, 또 다른 표현으로는 우리는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의미도 포함된 초원의 관습이다.

“우리 목숨은 하나다. 서로 의지하며 서로의 생명을 보호하자.”

자무카와 테무진은 한목소리로 외쳤다.

그들 둘은 숲에서 나와 동지와 부하들과 함께하는 잔치자리에 마주앉았다. 자무카가 부하들에게 선언했다.

“우리 두 사람은 하나다. 우리 둘 중에는 2인자가 없다. 공동 1인자요 공동운명체다.”

자무카가 선언했을 때 모두 우레와 같은 박수를 쳤으나 파울로는 한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은 없지, 라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자무카와 테무진은 게르 하나를 쳐 놓고 함께 한 이불속에서 잤다.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어떤 조직체제로 이어질까? 두 젊은이가 분명히 외형상 우열이 보이는 듯하지만 특히 자무카가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같은 몽골족이라지만 이미 우열이 드러났다. 자무카의 부하가 1만 명인데 테무진 주변에는 몇 백 명이다. 그런데 자무카는 무엇을 걱정하는 것일까? 혈통, 테무진의 증조부 카불 칸이 그의 직계 손자에게 후광을 뿌리고 있다고 보는 것일까?

특별히 부족들 간의 분쟁 없이 시간은 흘러갔다. 쌍두체제를 걱정할 필요도 느끼지 않을 만큼 초원의 날들이 평화롭게 흐른다.

그때 테무진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가족사의 고민이 터져 나왔다. 메르키트족에게 잡혀갔다가 찾아온 그의 아내, 사랑하는 보르테가 임신했다. 그들은 서로 불타는 사랑을 하는 시쳇말로 잉꼬, 그 이상의 애정이 넘실거리는 부부이기에 쉽게 넘어가기 힘든 사태였다.

테무진의 보르테가 배가 불러온다. 도무지 계산이 맞지 않는다. 주먹구구로 셈해 봐도 알 수 없다. 잃어버렸던 아내를 찾았다고 해서, 금슬 좋은 합궁의 시간이 넉넉했다고 해서 여인이 임신한 후 배가 남산만큼 커지려면 한두 달 가지고 되지 않는다.

말 못할 사정이다. 들추어 말해도 소용없는 시간들, 테무진의 아내는 죽어 마땅할 죄인일 법하지만 산실에 들어가서 아들을 낳았다. 테무진은 그 아들 이름을 ‘주치’라고 했다. 이름의 뜻은 ‘손님’이라는 의미도 있다고 전한다. 몽골사에서 이 대목은 논쟁을 부르고 갈등으로 남는다. 테무진의 큰아들 주치와 둘째 ‘차가타이’의 훗날을 보면 이를 가슴 깊이 묻어둔 테무진의 대범한 마음이 영웅답다고 할 수 있다. 파울로의 관찰력으로는 그렇다. 시간이 갈수록 파울로의 눈에는 테무진의 모습이 비범해 보이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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