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카이 토모아키가 제시한 신학 - 울타리에 갇혀 있는 한국의 보수·진보 신학계에 답 될까

▲ <신학을 다시 묻다>
후카이 토모아키 지음
/홍이표 옮김/비아 펴냄

신학은 분명 교회의 학문이지만 교회라는 담을 넘어 지속해서
사회의 영향을 받았고 또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리스도교가 본래 갖고 있던 모습과 사회적인 기능을 회복하는 일에
신학이 기여하여 오늘날 세계에 말을 건네고 대화를 시작하는 ‘신학’이어야 

 


“종교에 대한 회의와 비판이 점증하는 이 시대, 특히 그리스도교를 향한 비판이 점증하는 이 시대에 이 책은 그리스도교의 의미, 그리스도교 신학의 의미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새로운 접근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의미가 있다.”

한국과 일본의 근현대 그리스도교 역사 및 사상사를 연구하고 있는 홍이표 씨가 이 책 번역자로서 피력한 글이다.

‘사회사를 통해 본 신학의 기능과 의미’라는 부제에서 가늠해 볼 수 있듯이 저자는 신학은 분명 교회의 학문이지만 교회라는 담을 넘어 지속해서 사회의 영향을 받았고 또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당연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분석한다.

교회가 형성되었을 당시부터 신학이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그 성격을 바꾸어왔는지를 탐구하면서 세속화 시대와 근본주의가 횡행하는 이 시대에 신학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답한다. 신학은 고정불변의 학문, 초월적인 영역에만 관심하는 학문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교회, 사회와 긴밀한 영향을 주고받으며 자신의 기능을 수행하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학문, 지극히 현실적인 학문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예수의 죽음 이후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발생한 ‘신학적 물음’이 어떻게 신학이라는 학문으로 정착하는지,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된 뒤 서유럽 세계로 확장하는 흐름과 맞물려 어떻게 그 성격이 변화하는지, 그리스도교 유럽의 붕괴 이후 신학은 어떻게 전환했는지, 그리고 근대 세계 출현 이후 새롭게 바뀐 모습은 어떠한지를 살핀다.

8장으로 된 내용에서 저자는 신학이 고정된 불변의 것이 아님을 시종일관 강조한다.

한국의 보수와 진보 신학계는 그 나름대로 자신의 울타리에 갇혀 있어서 갈등의 대리적 도구였을 뿐 대화와 소통, 성찰의 도구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고 옮긴이는 말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신학을 안다는 것은 수면 아래 있는 얼음의 세계, 사회의 심층 구조, ‘눈에 보이는 세계’를 산출한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발을 내딛는 것”이라는 저자의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또한 그리스도교가 본래 갖고 있던 모습과 사회적인 기능을 회복하는 일에 신학이 기여하여 오늘날 세계에 말을 건네고 대화를 시작하는 ‘신학’이어야 한다고 저자는 제시한다. 이때 비로소 신학은 파우스트의 ‘아아! 신학마저도’라는 탄식 대신 ‘과연, 신학은’이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신학의 역할을 너무 좁게 잡거나 역사를 거쳐 발전해 온 다양한 신학 전통과 그 유산을 배제하는 태도는 신학을 빈곤하게 만들 뿐”이며, “교회의 신학이 교회 밖의 신학이나 교회 혐오의 신학을 잘 다루지 못한다면, 즉 이 신학들이 가한 비판에 응답하지 못한다면 이는 교회의 신학이 미천한 폭과 깊이의 민낯을 드러낸 것이라고 밖에는 할 수 없다”는 저자의 말이 왜 한국 신학의 현재를 말하는 것 같이 들리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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