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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온다!
허광섭  |  dsr12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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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3호] 승인 2018.04.11  12:5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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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 광 섭
창현교회 원로목사

‘봄이 온다!’는 남북 예술인 합동공연의 주제다. 지난 2월에 개최한 2018년 평창 올림픽에서 남북선수단은 단일팀으로 입장했다. 또 좀 거북해 보이기는 했어도 여자 하키에서 남북 선수가 한 팀이 되어 경기에 참여했다. 성적에 관계없이 하나가 되었다는 것으로 만족한다는 다분히 정치 논리에서 한 팀을 이룬 것이다. 그 때 북한에서 응원단을 파송했다. 악단과 함께 예술단은 강릉과 서울에서 두 번 공연했다. 북의 공연 수준이 달라졌다. 아직도 차이가 있다는 평가들이 있지만 공연했다는 그것으로 이미 충분하다. 그 답례로 이번에는 남에서 북으로 장비를 가지고 200명의 대원들이 갔다. 

‘봄이 온다!’ 공연 주제를 잡느라 꽤나 신경을 썼으리라 싶다. 이미 봄이 왔다는 완료형은 아니다. 봄이 오고 있다는 현재진행형이지 싶다. 그러나 아직은 아닌, 오고 있는 그 봄은 미래형일 수밖에 없다. 북의 땅에서 봄이 온다는 주제로 공연한 남측 예술단의 공연에 참석한 김정은은 ‘가을이 왔다’는 주제로 서울에서 공연하자고 말했단다. 뭐지? 하고 의문을 가지게 한다. 분단의 세월이 70년이 되고 보니 그 긴 시간 동안 놀라기를 여러 번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일을 포기할 수도 없고 포기해서도 안 되는 것이기에 또 한 번 속고 실망하더라도 기대를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너무 성급한 것은 아닌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남북예술단 합동공연의 마지막 곡으로 노래했다. 어차피 통일은 국제적이든 남북 협의에 의한 것이든 정치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걱정스럽다. 우리 모두가 통일을 감당할 실력과 능력을 준비하지 않은 채 통일이 된다면 어찌하나? 더 두려운 것은 남과 북 어느 정치인 한 사람의 지속 발전의 의지가 없는 일회적인 공적을 위해 통일이 또 이용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북한 텔레비전에서는 남북한 예술 공연을 실황 내지는 녹화 방송을 방영하지 않았다 한다. 필자는 6.25 때 부모님의 등에 업혀 흥남부두의 마지막 배를 타고 남으로 내려온 피난민이다. 어렸기에 내 머리에는 북쪽 삶의 자취가 없다. 그러나 가슴에는 있다. 남쪽으로 피난 오신 아버님이 술을 드시면 늘 부르셨던 유행가가 있다. ‘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 신세….’ 하도 많이 들어서 내가 세상에 태어나 제일 먼저 알게 된 곡이다. 나는 녹화 방송을 기다리며 ‘남북예술 공연-봄이 온다!’를 눈물로 보았다. 

남과 북은 통일이라는 단어 앞에 많은 이론들이 있을 것이다. 1990년 한때 곧 통일이 될 것이라고 조급스럽게 말들이 많았던 적이 있었다. 아주 가까운 친구와 함께 통일에 대하여 말하다 숨이 멈추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북한을 고향으로 둔 목사들은 통일을 이야기 할 자격이 없다. 북한의 교회를 버리고 피난 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는 친구의 그 말을 다시금 씹으며 몇 밤을 설쳤던 적이 있다.

이 민족에게 통일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나라’라는 주제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은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고 외쳤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과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큰 놀람이었을 것이다. 그 큰 자극을 받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글로 남겼다. 그것이 복음서 안에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막 1:15, 눅 10:11). 앞으로 올 것이다(마 6:10, 눅 11:2. 17:20. 22:18). 이미 왔다. 찾으려고 애써라(마 6:33, 12:28, 눅 12:31).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눅 17:21)라고 다양하게 기록되어 있다. 다양하게 표현돼 있는 것은 그만큼 깊이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고 초기 전도에서 좋은 큰 이슈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청중과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말해지고 기록했을 것이다. 

어느 하나를 강조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거저 오는 것이 아니다. ‘회개하라’는 것이다. 마음자리에 하늘이 없는 기다림은 정치적이고 국제적이고 사회적이며 심지어 출세해 보겠다는 기대로 예수님의 말씀을 해석했을 것이다. 제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이 어려움을 당할 때 도망가고 돌아서기도 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나라를 예수님의 지상 과제로 잡고 한 번도 멈추신 적이 없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하늘나라의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신 것이다. 우리 모두 하늘과 민족, 역사와 세계 앞에서 이 민족의 통일을 위해 돌아보며 하나가 되자. 아니, 힘들더라도 일구어 가기 위해 아직은 아니지만 지금을 통일된 현실로 살자. 이것을 하늘의 소리로 품고 키우는 따스한 가슴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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