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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교회 개혁의 실마리 어떻게 풀까?제3종교개혁 부르며
조효근/본지발행인  |  dsr12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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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3호] 승인 2018.04.11  13:4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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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지켜보아도 싹수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개혁운동을 일찍이 마음먹었어도 목사직만큼은
피하고 싶었으나 목사까지 된 후는 내가 이 시대의
크리스천이라는 것이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 스위스 제네바 대학 내에 있는 종교개혁 기념비.

나의 신앙과 인생에서는 본격개혁 열망의 시기가 왔다. 나는 1957년 열다섯 살 내 종교 바로 한 번 해보자는 마음 단단히 먹고, 부모님 동의 없이 가출했다. “출가”가 정확한 표현입니다. 나는 일곱 살 때부터 출가를 준비해서 열두 살 초등학교 마치고 1차 시도했다가 연기하고 중학교를 마치는 둥 마는 둥 열다섯 살 봄에 대장정에 나섰습니다. 아브라함 갈데아 우르, 또는 하란 탈출과 같은 결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아브라함입니다, 또 더 정확하게 아브라함의 직계손이라는 책임감으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일차 목적지를 미국으로 계획했는데 서울에 머물게 되었고, 서른다섯 살인 1977년 1월에 “들소리”와 “그루터기”를 개혁문서의 출발 깃발 삼았었습니다. 1977년 1월에 나는 아내와 상의했습니다. 결혼을 하기 전 내가 했던 말, “나는 집닭이 아니라 산 꿩(매)이다. 정처 없고 모험을 기반 삼아야 되는데 각오할 수 있는가?”를 물은 바 있었습니다.  

1957년부터 1977년까지 20여 년 동안 무수한 시도와 좌절, 그리고 훈련을 거듭한 끝에 나는 드디어 1977년에도 또 한 번의 출가에 성공했다. 이불보따리 둘러메고 4평짜리 사무실로 오기 전 아내에게 딸 둘, 아들 하나, 이 아이들 먹이고 입히는 일은 당신이 책임지고 나는 학비를 책임지마 하면서 떠났습니다.

그때 그 무렵, 1959년 한국교회가 WCC 문제로 교단들과 교회들이 쪼개지기 시작해 남부끄러운 꼴 많이 보였고, 아무리 지켜보아도 싹수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개혁운동을 일찍이 마음먹었어도 목사직만큼은 피하고 싶었으나 목사까지 된 후는 내가 이 시대의 크리스천이라는 것이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이 초라한 한 과정을 여기에 옮기는 것은 유서 쓰는 심정이기 때문입니다).

어느덧 짧지 않은 41년차 창간(창업) 주간을 맞이해, 오늘은 푸념인지 넋두리인지를 여기에 쓰고 있습니다. 아내와 아직 초등학교 입문도 하기 전의 삼남매 그 아이들을 뒤로하고 이불과 세간 살이 묶음을 어깨에 메고 사무실 땅바닥에 신문지 깔고 잠자리를 잡을 때, 나는 집 떠나기 전에 아내에게 힘주어 했던 말이 있습니다. “아마도 내가 단신으로 개혁기독교를 외친다고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을 거야. 10년쯤 계란으로 바위치기 식 싸움을 하다가 내가 죽게 되겠지.” 그 다짐을 하고 출발한 “들소리”가 10년씩, 네 번이나 굴러 40년이 지났는데 쉽게 죽지도 못하고 여기에 왔네요. 요절하는 기회는 놓쳤고, 자연수명으로도 한계에 왔으니 내가 죽지 않겠다고 해도 죽음이 찾아오겠죠.

그런데 이를 어떻게 하죠. 내가 늘 하는 말 “준마는 마구간에서 죽지 않는다”였는데, 큰일 났습니다. 계란덩어리 한 알만큼이나 작은 이 몸을 던져 몸을 깨든지 해서 다 허물어져가는 바위라도 깨부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안타까운 마음으로 41년 기념사를 지금 저는 쓰고 있습니다. 

요즈음 교계는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의 세습 문제와 사당동 총신대 김영우 총장이 벌이고 있는 삼류 개그 쇼 같은 모습을 바라보고 있지요. 똥물 뒤집어쓴 우리들, 옛말에 갑오시끼 망신, 이라는 말이 있는데 쉰 떡 하나 얻어먹지도 못한 채 망신살입니다. 이런 따위의 사건은 늘 있어왔지만 지금 그들에게 묻고 싶은 말은 당신들은 무엇을 얻고자 목사가 되어 목회를 했으며 그 감투 같지도 않은 것 지켜내자고 그 추잡들을 떨고 있습니까?

지금 한국교회는 큰 위기와 책임감 앞에 놓여있습니다. 먼저는 교회가 시대변화를 읽지 못한다 함이고, 다음은 위기 대처 감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저도 습관처럼 명성교회 세습과 총신대 사태로 지면 몇 줄을 더럽히고 있지만 한국교회여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산부터 한 번 계산해 봅시다.

1, 교회 인구센서스

모세가 홍해 건너 광야 40년 앞날을 위해서 먼저 한 일이 열두 지파 인구 조사였지요. ‘들소리’ 지면에 여러 번 호소했던 ‘신자 인구 조사’를 다시 호소합니다. 각 교단과 교회들이 자원봉사자를 내기만 하면 큰 비용 들이지 않고 한국 영토 안에 있는 각 교단들, 그들이 원한다면 교단 소속 없는 교세까지도 한 번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의 100년 계획이 되겠지요. 각 교회마다 교회 연혁, 입교인 명부, 세례인 장부를 통해서 직급별로 신자들의 현황을 자료화 할 수 있습니다.

모세가 430년 이집트 노예생활 했던 자기(히브리) 백성들의 지파별 조사를 홍해 건넌 직후 합니다. “계수함을 입은 자의 총계가 육십만 삼천 오백 오십 명이었더라”(민 1:46). 그리고 40년 광야를 지나서 가나안(팔레스타인) 땅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또 인구조사를 했지요(민 26:51). 홍해 건너온 직후와 40년 세월이 지난 후의 인구가 어떻게 이토록 비슷할까요? 그리고 모세는 왜 40년을 사이에 둔 이집트 식 6십여만 명과 자기 지도력으로 양육한 가나안 입국 직전의 인구가 비슷할까요? 이집트 문명과 습관에 젖은 히브리인들을 광야에 묻어버리고 새 인생들로 가나안을 향해 가게 하려고 그랬을까요.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이지요.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 둘만 예외로 하고서. 여기에는 여러 가지 교훈과 비밀이 있겠지요. 그것들은 저마다 따로 하시고, 오늘 여기서 저는 한국교회가 한 번쯤은 정확한 “기독교 신교 한국”의 인구조사를 할 필요가 있다고 호소합니다.

첫째, 이 조사를 하면서 우리는 대단한 자부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막연한 1천만 명이 아니라 한 자리 숫자까지 신자 수를 찾아 세우게 되면 신자들마다 인구조사 과정에서 “나도 신자”라는 새삼스럽지 않게 묘한 자부심이 생기게 됩니다.

둘째, 교단과 교단, 교회와 교회들의 친밀감이 생깁니다.

셋째, 대한민국의 기독교 신자를 구체적으로 확인해 보세요. 세계 220여 개 나라 중 1천만 명 인구 미달 국가가 잘 모르기는 해도 어림잡아 계산해도 60~70%는 되지 않을까요? 그걸 확인하면서 우리 크리스천은 문득, 야! 우리들이 대한민국의 섬김과 봉사, 그리고 구원을 위한 대들보 노릇을 해야겠구나 하는 소명감이 생길 것입니다.

넷째, 이 많은 신자들을 선의의 의미로 재교육, 재훈련, 재 부흥의 장으로 인도할 경우 어마어마한 창의성 넘치는 아이디어들이 솟아날 것입니다.

다섯째, 교단들이 연합해 일반사회를 향한 효과적인 봉사를 하고, 교계 내부로는 연합교육과 연합(국내외) 선교에까지도 창의적인 발상이 등장할 것입니다.

여섯째, 전국의 교회들이 도시변화에 따른 목회지 변화에도 눈을 뜨게 됩니다. 선의의 목회지 조정 및 교계연합의 길도 보이고, 교회의 대사회를 위한 봉사기구 설립을 위한 계획안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일곱째, 교회가 가진 어마어마한 자원으로 목회자나 선교사만 양성하지 말고 사회 각 기구에 뛰어 들어가서 기독교의 이상을 통해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책임(지도)자를 양성할 수 있는 데까지 한국교회의 의식이 발전할 수 있습니다.

2. 교회는 민심동향을 주목하라

일부 세간에 떠도는 말들, 미국은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만 막으면 되고, 한국은 북한이 핵무기 가지고 있어도 동족 간 무슨 핵무기냐는 식으로 여론이 돌아가는데 이 과정에서 미국과 한국 사이에 틈새가 나고 ICBM 기술 개발 중단, 또 완전 폐기 선에서 미국과 논의하고 대신 미군도 한국서 나간다는 조건이 맞아떨어지기나 하게 될 때도 대한민국은 건재해야 되니까 생각을 많이 해야 합니다.

이 부분은 우리가 더 이상은 알 수가 없고 직접 간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5월 9일 정권이 바뀐 후 한국사회가 돌아가는 현황을 바라보면서 “들소리”의 한 사람으로서 내 자신이 탄식하게 된 후회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한국 정치 사회 현장에서 기독교 신자가 보수와 진보 간의 중간역할을 못했다는 점입니다. 잘은 모르지만 지금 진보를 표방하는 정권도 어느 시간이 지나면 역부족 상황이 올 것입니다. 5천만 명에게 골고루 금수저를 안겨줄 수 없습니다. 그들 모두에게 명예와 부를 챙겨줄 수 없습니다. 지금은 있는지 없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진보와 보수 정치판을 바라보면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교계의 영향력 있는 사람들은 걱정이 없겠지요. 그 축에 들지 못하는 사람들은 애가 타고 미칠 지경이지요.

모든 일이 한계가 있고, 돌이켜보면 때가 있으나, 그래도 지금 이 시간 이 글을 쓰는 나의 절박함이나 어느 누가 이 글을 읽으면서 함께 공감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내게 남은 시간에 내가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들소리 41년을 하면서 과정 속에서 겪은 일들이 많고 또 이 사람은 10년이면 멋진 순교자처럼 죽을 자리가 마련되었으면 했으나 그 영광이 내게 주어지지 않았고, 오늘 41년 차 “들소리” 창업일을 앞두고 회한에 찬 참회록까지는 아니어도 고백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미움을 다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또 내가 그렇습니다. 결국은 보수 진보의 죽기 살기 싸움판이 끝없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으니 중간에 서야 할 솔로몬의 자리도 없고 솔로몬과 같은 인물 또한 잘 보이지 않습니다.

3. 아브라함처럼 살고 싶다

아브라함 이야기로 유대인들과 시비가 붙은 자리에서 예수는 너희가 아브라함 자손이거든 아브라함의 행동을 해야지(요 8:39), 라고 하셨습니다. 8장에서 예수 말씀 중에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요 8:56)고 했습니다.

이 두 구절을 보니까 아브라함 자손들은 입으로만, 또는 족보상으로만 아브라함이 내 조상이라 하지 말고 아브라함처럼 행동하라! 이 말씀을 들으니까 혹 우리들, 나를 포함하여 한국교회가 예수께 받아야 할 책망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부끄럽군요. 그러나 활로를 찾아봅시다.

예수의 말씀 중에 아브라함은 나(예수, 메시아)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가 있지요. 이 부분을 보면 예수의 현재, 그분의 활동현장은 아브라함과 같은 사상일치성을 말씀하고 계시는 느낌이 있습니다.

끝으로 저는 “들소리” 이름으로 예수의 아브라함까지를 말하면서 21세기 개혁의 첫 문은 ①유대인과 예수 그리스도 교회의 불화관계를 해결하고 ②예수의 기독교와 7세기 초 역사 위에 등장한 이슬람, 이들 세 종파의 이해와 상관관계를 재정립하면서 21세기 교회개혁의 실마리를 풀 수 있다고 봅니다.

아브라함의 자식이기를 원하면서, 또 아브라함처럼 예수의 칭찬을 받고 싶은 저와 오늘의 한국교회는 아브라함의 삶과 인생을 살피면서 기독교의 원형인 예수와 예수님의 21세기 제자들 시대를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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