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 승 호
홍성사 편집팀

사진가 김대벽(金大璧, 1929~2006) 선생님을 처음 뵌 것은 2003년 이른 봄, 창덕궁에서였다. ‘창덕궁과 창경궁’이라는 책을 준비하면서 첫 현장 답사 날. 저자 한영우 선생님과 김대벽 선생님 그리고 실무진이 모여, (오늘날과 달리)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된 후원 너머 안쪽 건물들과 터까지 둘러보았다. 이날은 사진에 담을 곳들을 ‘찜’해두며 전체적인 밑그림을 중심으로 한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그 후 몇 차례에 걸쳐 창덕궁 촬영에 나섰다. 일정을 잡았다가도 날씨 때문에 다시 조정해야 하는 일이 더러 있었는데, 어렵사리 현장에 모였을 때는 ‘필요한 컷을 꼭 담아내려는’ 자못 비장한 결기마저 감돌았다. 책임편집자였던 나는 숙지한 원고 내용을 떠올리며 선생님의 촬영 장비를 들고 동선을 따라 함께 움직였는데, 삼각대를 세워놓고 촬영에 임하시는 선생님의 진지한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함경북도 행영의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신 선생님은 어릴 적 꿈이 목회자였다. 신학대학을 졸업하셨지만, 재학 중 군복무를 마치고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사진 작업이 훗날 사진가의 길에 몸담게 된 출발점이 되었다. 문화유산 전문 사진가로 손꼽히는 선생님은 40여 년 동안 한옥과 궁궐 건물 등 전통 건축물을 필름에 담아오셨는데, 우리 기층문화에 깃든 사람의 체취를 정직하게 담는 데 주력하셨다.  

사진의 기본적인 문법도 모르면서 감히 이야기하기엔 좀 뭣하지만, 선생님의 사진은 담백하고 깔끔하면서 정갈하다. ‘육안으로 본 세계를 그대로 카메라에 담는다’는 촬영 원칙을 지키며 작업해 오셔서일까. 이렇다 할 기교나 연출 흔적 없이, 보는 이를 편안하게 하면서도 뭔가 꽉 찬 내면세계가 깃들어 있는 듯하다. 편안하면서도 살짝 긴장감을 주는 ‘그 무엇’을  한마디로 뭐라 하면 좋을까? 모르긴 해도 그 원천은 한국인의 심성을 정직하게 담아내려는 소박하면서도 한결같은 의지가 아닐까 싶다.

어느 더운 여름날, 선생님과 오전 촬영을 마치고 점심을 하게 되었다. 야외 작업이 길어지는 날은 식사하면서 약간 호기를 부리거나 흐트러진 모습을 보일 수도 있건만, 선생님은 결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다. 작업이 다 끝날 때까지는 긴장을 놓지 않으시는 것이었다. 식사를 마칠 무렵 선생님께 건강의 비결을 여쭈었다. 선생님의 답은 짧고 명료했다. “늘 감사하는 마음, 그겁니다.” 그렇구나!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이 대가이신 이분의 일상에도 스며 있어 영육간의 강건함을 지탱하고 있구나….

선생님과 사진 촬영은 두 계절에 걸쳐 계속되었고, 그 후 두 계절이 더 지난 그해 연말에야  책이 나왔다. 말미에는 적절히 축소한 ‘동궐도(東闕圖)’ 전도를 접어서 실었다. 선생님이 찍으신 사진 가운데 일부는 이듬해 달력으로도 만들었다. 눈부신 햇살 아래에서의 많은 기억이 담긴 책도 달력도 이미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한 컷 한 컷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새봄을 맞이하면서 새록새록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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