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 은 성
총신대 교수

교회역사 속에서 항상 논의되는 문제는 교회정치 또는 교회론이었다. 교회의 개혁을 부르짖으려면 꼭 되씹는 주제는 교회정치였다. 중세교회가 시작하기 전 초대교회를 총 결산한 아우구스티누스는 인생을 마무리하기 전 두 주제에 매진했는데 하나는 교회론이고, 다른 하나는 은혜론이었다. 전자는 도나투스와의 논쟁이고, 후자는 펠라기우스와의 논쟁이었다. 

중세교회의 타락을 알리면서 개혁을 부르짖은 체코의 얀 후스가 당대의 신학자들과 논쟁했던 것은 교회론이었고, 그보다 먼저 중세교회와 논쟁했던 존 위클리프 역시 교회의 개혁을 부르짖었다. 종교개혁 시대에 이르러 종교개혁자들이 가장 많은 것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교회정치였다. 이들의 후계자들이었던 스코틀랜드 언약도나 청교도 역시 교회정치에 큰 관심을 가졌다. 1642년부터 1649년에 있었던 웨스트민스터 총회에서 다룬 큰 주제는 교회정치에 관한 것이었다. 그전 1571년 대륙에서 개혁교회들이 박해받는 가운데 한 자리에 모임을 가졌다. 엠던 회의라고 한다. 이 회의에서 신앙은 ‘벨지카 신앙고백서’와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서’ 및 ‘주네브 교리문답서’를 선택했지만 교회정치로는 장로교정치를 채택했다. 

교회정치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① 감독제도 ② 회중정치 ③ 장로정치이다. 감독제도에서 떠오르는 인상은 로마가톨릭교회와 성공회이다. 감독이 주도하는 교회를 말한다. 그런데 이런 교회 형태에 두 신학사상이 있으니 하나는 고올주의(Gallicanism)이다. 이 사상은 군주나 국가 권력이 로마가톨릭교회를 지배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교황지상주의(Ultramontanism)로 고올주의와 반대이다. 고올주의는 다시금 셋으로 나뉜다. 에라스투스주의(Erastianism), 페부르니우스주의(Febronianism), 요셉주의(Josephinism)이다. 고올주의는 프랑스에서, 교황지상주의는 독일에서 발생했다. 그중에서 프로테스탄트에서 일어난 고올주의는 에라스투스주의였다. 이 사상은 하이델베르크에서 시작해 청교도에게 영향을 끼쳐 웨스트민스터 총회에서도 큰 이슈가 되었고, 후에 스코틀랜드에도 영향을 끼쳤다. 이렇게 볼 때 감독제도에 해당되는 교회정치이지만 장로교도가 쉽게 치우칠 수 있다는 사상이라는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에라스투스는 스위스 의사며 신학자 토마스 에라스투스(Thomas Erastus, 1524~1583)에게서 나온 사상이다. 이 사상의 핵심은 국가가 교회정치 업무를 주도하는 것이었다. 혼란 속에 있는 교회인들의 횡포에 대한 좋은 방침이라 여기는 자들은 이 제도를 택해 교회를 안정시키고 싶어 한다.

작금에 일어난 강남에 있는 S교회나 사당동에 있는 한국 최대의 신학대학교인 C대학교에서 일어난 사건을 보면 쉽게 이해된다. 용역들을 동원하거나 국가의 판결을 보는 것이었다. 문제 해결은 깔끔하게 처리되었다. 하지만 교회 내에 지혜 있는 자가 얼마나 없었는지 국가가 뭘 안다고 그것에 의존하면서 그 판결을 맡긴다는 것인가? 이것은 에라스투스주의에서 나온 사상이다. 결국 이것은 장로교제도를 채택한 장로교회가 감독정치를 채택한 영국의 성공회를 닮겠다는 꼴이다. 종교개혁자들이 웃고, 지나가는 행인들도 웃을 정도이다. 가정의 문제를 해결 못해 법원으로 향하는 꼴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한국교회의 개혁을 부르짖는 자들이 기껏 해 외치는 것은 도덕적 회복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개혁이 아니라 사회적 관점에서 본 혁명일 뿐이다. 이것이라도 바로 서기를 바라는 점에서는 이해가 되더라도 정말 근시안적 사고를 갖고 있다고 여겨져 안타까울 따름이다. 

로마가톨릭화 되어가는 한국교회를 갱생시키는 길은 본래의 모습을 찾는 길 외에는 없다. 그것은 온 교회가 고백한 신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바로 교리교육이다. 이제 와서 교리교육을 회복해 장로교 정체성을 찾는 일이 과연 가능할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계속 촉구하면서 선배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국교회를 보면서 비판만할 것이 아니라 한 명이라도 세월호에서 구출하는 심정으로 한 명씩 가르치며 자라게 하여 교회인들, 즉 하나님의 자녀들을 빼내야 한다. 이것은 제 2의 종교개혁이 아니다. 종교개혁의 정신이며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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