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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이지만 을의 삶을 살기
김영제  |  dsr12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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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6호] 승인 2018.05.16  13: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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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제 목사
선교중앙교회 담임

을의 시대가 온 것일까? 을들의 반란이 연일 뜨겁다. 정치, 경제, 연예, 종교계 등 각 분야에서 억압 받고 숨죽이며 살던 사람들이 미투로, 촛불집회로 일어나고 있다. 그동안 참고 살았던 억울한 사람들의 눈물이 한 방울, 두 방울씩 모여 강을 이루고 바다를 이루더니 이제 쓰나미가 되어 세상을 덮치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힘있는 강자를 ‘갑’으로, 힘없는 약자를 ‘을’로, 갑들의 폭력을 ‘갑질’이라고 부르는 신조어가 유행하더니 이제는 영어사전에까지 등재되는 일상용어가 되었다.

인류 역사는 갑과 을의 갈등과 반목의 연속이다. 특히 우리 역사에는 을들의 상처와 한이 많다. 유교가 지배하던 조선시대에는 왕권과 양반들에 의해 수탈당하고 멸시받던 수많은 을들의 고통이 있었다. 동학혁명을 비롯한 을들의 반란이 가끔 있었지만 갑들의 무력에 제압당하고 말았다. 일제 식민통치 기간에는 일본과 친일파들에 의해 짓밟혔던 수많은 을들이 있었다. 해방 후에는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사상의 갈등과 혼란 속에서 갑과 을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6.25 전쟁 전후에는 극에 이르렀다. 북에서는 기독교 신앙과 자유 민주주의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을로서 숙청을 당하였다. 남에서는 사회주의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빨갱이’라는 주홍글씨를 달고 죽임을 당하거나 숨을 죽이며 살아왔다. 지금까지도 좌파 우파의 갈등과 반목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민족의 현실에 마음이 아프다.

역사 속에 묻혀있던 사건들, 힘이 없어 숨죽이고 살아왔던 사연들이 적폐청산, 을들의 반란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이 적폐청산은 어디까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또 그렇게 해서 억울한 사람들의 한이 모두 풀릴 수 있을까? 그런 과정에서 역으로 억울한 일을 당하는 을들이 생기지는 않을까? 때로는 갑과 을이 바뀌기도 한다. 갑질을 하던 전 정권의 사람들은 지금 을이 되어 고생하고 있다. 다시 정권이 바뀌면 지금 갑질하는 사람들은 을이 되어 고통을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렇게 하면 살맛나는 세상이 올까?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이 방법밖에 없는 것일까?
 
하나님은 분명 갑이시다. 그는 우주의 창조자요, 통치자요, 전능자이시다. 못하실 것이 없으시다. 힘으로 누가 그를 대항할 수 있을 것인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아담과 하와가 사탄의 편에 서서 하나님처럼 되겠다며 반기를 들었다. 하나님은 사탄을 멸하실 수 있다. 그러나 종말의 날까지 멸하지 않으신다. 배신자를 없애버리고 새로운 인류를 창조하실 수도 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신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여인의 후손을 보내어 인간의 죄를 대속하시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말씀하신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여인의 후손으로 보내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체이시지만 인간의 몸을 입고 종처럼 낮아지셨다. 그에게는 불가능이 없었다. 그런데 그 분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힘없이 로마병정에게 붙잡혀 가셨다. 죄 없는 분이 주먹질과 채찍질 당하시고, 조롱받으셨다. 침 뱉음과 속옷까지 발가벗기는 수모를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성령님의 능력도 무한하시다. 능력과 기적으로 모든 일을 하실 수 있다. 그렇게도 원하시는 땅 끝까지의 세계 복음화도 맘만 먹으면 간단히 하실 수 있는 분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오늘도 전도의 미련한 방법으로 일하신다. 세계 각처에서 당신의 백성들이 박해받고 추방 당하고 죽임을 당하는데도 힘과 무력을 사용하지 않으시고 오직 사랑과 인내로 일관하신다. 삼위 하나님은 마지막 종말의 날까지 참고 인내하시며 갑으로서 을의 길을 가실 것이다. 인류를 힘과 무력으로 통치하거나 구원하지 않으시고, 오직 사랑과 인내로 주의 뜻을 이루어 가실 것이다.

예수님은 갑으로서 을의 삶을 사는 법을 보여주신 모델이시다. 주님은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라고 하셨다(막 10:43~45). 주님은 그렇게 말씀하시고, 그대로 살고 가셨다. 그러나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부활하셨다. 그리고 지금 온 인류를 사랑으로 살려내고, 사랑으로 변화시켜 가신다. 주님의 방법은 낮아짐이요, 십자가요, 죽음이었다. 증오와 복수가 아닌 사랑이었다. 그리스도의 제자 된 우리도 어려워도 힘들어도 주님 가신 그 길을 걸어가야 하지 않을까? 그것은 바보들이 가는 길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지혜에서 나온 최고, 최선의 길이다. 진정한 하나님 나라 운동은 오직 이 진리, 이 방법으로만 가능하다. 살맛나는 세상을 만드는 길은 갑이지만 을의 삶을 사는 것, 이 길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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