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 승 진
(사)한국기독교
출판협회사무국장

고등학교 1학년 때다. 한 친구가 국어사전에서 미국 욕 ‘Fu** You’의 연원(淵源)을 찾았다고 떠들었다. 자연히 우리들은 관심을 가졌고, 함께 국어사전을 찾아봤다. ‘꼴두기질’이라는 단어는 분명히 국어사전에 있었다. 이 단어는 명사로, 뜻은 “남을 욕할 때에, 가운뎃손가락을 펴고 다른 손가락은 모두 접은 채 남에게 내미는 짓”이라고 기술되어 있다. 17살 청소년들은 신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부스보다 더 크게 떠들며 이 대단한 발견을 자축했다. 미국 욕의 시작이 우리 말로부터였는지는 더 이상 궁금하지도 않았고 의심의 여지도 없었다. ‘발견’과 동시에 ‘유행’이 되었고, 평소 욕을 싫어했던 친구들조차 이 유행에 동참하기도 했다. 한동안 우리 학교 곳곳에서 ‘꼴두기~질’ 하며 말이나 행동으로 서로 모욕하는 통에 소란이 있었다. 물론 심각한 지경에 이른 경우는 거의 없었다. 애초에 장난으로 시작한 탓에 욕설이 가지는 분노나 부정적 의미보다는 놀이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요즘 이와 비슷한 경험을 자주 한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세대, 새로운 언어가 우리 주변을 꽉 채우고 있다. 10대와 20대를 중심으로 새로 만들어지고 사용되는 언어들은 기존 상식과 언어의 체계를 무너뜨렸다. 내용, 형식, 심지어 표기법마저 언어로 사용된다. 예를 들어 ‘드립하다’라는 말은 “농담하다. 개그하다”라는 내용을 새롭게 표현한 것이다. ‘돼지런하다’라는 말은 “돼지와 부지런하다”라는 말의 합성어로 “먹을 때만 부지런하다”라는 뜻을 가진다. ‘고나리자’라는 말은 “관리자”의 오타로 만들어진 파생어로, “지나치게 간섭하는 직장상사를 부정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그밖에도 ‘금수저, 흙수저’와 같은 신조어들이 매일 새롭게 생겨나고 있다.

이런 흐름에서 욕설을 빼놓을 수 없다. 제대로 알아들을 수조차 없는 신기하고 망측한 욕설들이 사용되고 있다. 어찌 보면 시대적, 세대적 특징을 보여주는 문화요소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름 재미를 느끼기도 하고 편리한 대로 차용하기도 한다. 몇몇 신조어들은 매해 국어사전에 ‘표준어’로 등재되기도 하니, 마냥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것도 아니다.

그러나 필자도 기성세대인 탓인지 깊은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국어학이나 문화인류학을 전공하고 연구하는 학자도 아니어서 표준어의 변화가 가져올 사회문화적 변화를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할 능력은 없지만, 10~20대의 젊은이들에게서 시작된 언어의 파괴가 보여주는 부작용은 충분히 체감할 수 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나 SNS 매체 등을 살펴보라. 정치, 사회, 스포츠, 종교, 예술 등 갖가지 이슈들에 대해 사용자들이 적는 댓글에서 기사 내용에 대한 이해부족, 논리적 분석력의 저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의견제시, 그리고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부족 등을 발견하는 것은 아주 쉽다. 미움을 넘어 혐오 수준의 언어폭력을 대하는 것도 일반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온라인에서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다가 만나는 청소년들의 대화를 정상적으로 알아들을 수 있는 기성세대는 많지 않으며 심지어 약간 과장하여 그 대화 속에서 욕설에 가까운 비속어를 빼면 주어만 남는다는 얘기도 허튼소리가 아니다.

근현대 사회에서 사회적 관심은 ‘문맹퇴치’였다. 국가사회의 발전은 근간을 이루는 국민의 언어-문자문화가 형성되고 왕성한 소통이 개인으로부터 국가기관에 이르기까지 전사회적 현상이 될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은 가장 좋은 매체로 평가받았다. 그런데 오늘날 줄인말 현상은 놀이문화나 세대문화에서 그치지 않고 전사회적 현상이 되어 우리에게 새로운 ‘문맹의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다소 억지 같지만, 요즘 300쪽 이상의 책을 제대로 읽어내는 젊은 세대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누가 문맹이 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것이기에 평가를 유보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다행인 것은 내가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출판계에 근무하는 탓에 표준에 가까운 언어를 구사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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