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과 영적 충전을 위한 기도의 집 ‘예예동산’지기 권태환 장로와 유명애 권사 부부

파킨슨씨병으로 인해 대학교수 정년 은퇴 후
강원도 춘천 금병산 기슭에 집 짓고 기도와 쉼의 터전 마련
“이 땅에서의 마지막 사역”

세계적 초교파 성경공부 모임인 CBSI 통해
성경의 깊이 깨달아, 8년간
영어교재 100여 종 번역하고 출판 위해 전시회 개최

▲ 아름답게 노년을 사는 유명애 권사와 권태환 장로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풍류1길, 구불구불한 차로가 끝나는 지점에 울창한 나무들과 잘 가꿔진 잔디밭 사이로 예예동산이 보인다. 금병산 기슭, 지금은 몇몇 집들이 이웃하고 있지만 처음엔 산에서 먹이 찾아 내려온 멧돼지, 뱀 등 산짐승이 출몰할 만큼 퍽 깊은 산속이었다. 이곳에 사람의 발길이 줄을 잇기 시작한 것은 바쁜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의 쉼과 영적 충전을 위한 기도의 집 ‘예예동산’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면서다.

정년은퇴 후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이곳에 집 짓고 찾아오는 이들을 기쁘게 맞이하고 따뜻한 잠자리와 식사를 대접하며 섬겨온 권태환 장로(78)와 유명애 권사(73) 부부는 날마다 기적을 체험하고 있다며 “어느 때보다 행복한 삶이요 신앙생활”이라고 했다.

우선 내 것 없는 삶을 지향하며 집을 열고 그것을 12년째 이어온 것이 기적이요, 그동안 9천여 명이 짧게는 하루, 길게는 1년을 함께 살았지만 단 한 번도 얼굴 붉힌 적 없는 것 모두가 기적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가장 놀라운 것은 모든 것이 ‘무료’인데 양식이 단 한 번도 바닥난 적이 없다는 것. 또 이곳에서는 기도와 쉼, 말씀 묵상으로 영적 양식까지 채워지고 있다니 입소문으로 찾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 부부는 가족의 경계를 확장하고 쉼이 필요한 이들을 섬겨오면서 ‘1+1=2’에서 그치지 않고 ‘∞(무한대)’가 되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분주함을 뒤로하고 찾은 예예동산, 자연 속 하나님의 창조섭리를 마주하는 이곳의 시간은 평온하고 느리게 흘러갔다.
 

▲ 강원도 춘천시에 자리한 예예동산, 이곳을 찾는 이들을 값 없이 섬기며 “예예”로 화답한다는 뜻이다.

# 은퇴, 새로운 삶을 시작하다

이들 부부가 자연 속 삶을 선택한 것은 권 장로의 병 때문이었다. 권 장로는 서울대학교 사회학 교수로 왕성하게 활동해왔고, 유 권사 역시 수채화가로 기독미술인협회 회장을 지내며 기독미술 발전을 위해 고군분투의 삶을 살아왔다. 권 장로가 파킨슨씨병에 걸려 모든 활동을 중단해야 했고, 정년 은퇴 후 부부는 ‘이 땅에서 마지막 사역’이라고 여기고 예예동산을 세웠다.

“우리 사회의 고령화 문제가 심각하다는데, 그리스도인들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기독정신으로 공동체를 이뤄 살면 인구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건강한 노인이 그렇지 못한 노인을 한둘씩 책임져 주자, 행복한 안식을 나누어 주는 착한 노인들이 되자고 결정했다. 다행히 교직생활로 인한 연금수혜자이므로 우리 것을 나누자는 결심으로 모든 것을 무료로 시작했다.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 55:1~2) 하신 말씀의 실천으로 이곳을 찾는 이들을 ‘예~ 예~’ 하고 값없이 섬기는 의미에서 ‘예예동산’이었다.

그런데 값을 매기지 않아도 형편이 되는 이들은 이런저런 모양으로 사례했다. 얼마를 헌금하기도하고, 농사짓는 이들은 “예예동산 생각이 났다”며 새로 정미한 쌀이나 갓 딴 과일, 채소 등을 보내준다.

유 권사는 “처음엔 과연 가능할까 하는 걱정도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놀랍도록 채우고 먹이셨다”며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백성을 먹이신다는 말씀이 여기 와서야 믿어지더라”면서 더없이 행복하다고 했다.

지난 40년 간 유 권사가 분주한 일상에서도 놓지 않은 것이 목요 그림 시간이었다. 두 자녀를 키울 때도 목요일만큼은 그림을 그렸는데, 예예동산에서는 집 앞이 온통 초록이요 형형색색의 꽃이니 모두가 그림의 소재가 된다. 매주 목요일이면 함께 그림을 그리며 덮어두었던 꿈을 펴려는 이들이 먼 곳에서부터 모여든다. 오전 10시쯤 모여 그림 그리고 함께 점심을 지어 먹고는 또다시 그림삼매경이다.

“남편은 처음에 ‘쉼의 집’이라고 지은 이름에 ‘꿈의 집’이라는 명칭을 하나 더 붙였어요. 바쁜 일상에 쫓기고 나쁜 공기에 시들어가던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상상력이 풍부해져서 한참 꿈에 부푼 청소년들처럼 앞날의 계획들을 늘어놓거든요.”

무공해 식탁, 맛 좋은 물과 소나무 숲을 지나온 맑은 공기, 분주한 삶에 쫓겨 살던 이들은 이곳에서 무엇보다 ‘고요함’이 무엇인지 새롭게 깨닫게 된다며 유 권사는 예예동산의 매력을 소개했다. 예예동산을 다년간 많은 이들 가운데 자신의 집을 열고 나그네를 섬기는 일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큰 보람이다.

“자연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에요. 욕심을 내려놓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 경계를 넘은 가족, 풍요를 맛보다

예예동산지기 유 권사는 이날 아침에도 11명의 식탁을 차렸다. 세계적 초교파 성경공부 모임인 CBSI(Community Bible Study International) 미국인 강사진 4명, 미국의 명문대 교수 은퇴 후 사람이 그리워 가끔씩 이곳을 찾는 이, 집과 멀리 떨어진 학교에 다니는 대학생 둘….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예예동산에 머무는 동안은 한솥밥 먹는 식구요 가족이다. 식탁 책임은 유 권사의 몫, 매일 삼시 세 끼 차려내는 일이 보통이 아닐 텐데, 일흔이 넘은 나이에 힘에 부치지는 않을까.

“소박하지만 따뜻하게 차려낸 밥상의 매력은 대단해요. 그 앞에서는 서운하고 화난 마음도 풀어지고, 여럿이 함께 나누는 식사는 언제나 꿀맛이지요. 5~10월까지는 십여 가지 넘는 밭작물로 부식 걱정을 하지 않아도 돼요.”

맞벌이 가정의 젊은 부부, 오해가 싸움이 되어 아내가 남편에게 폭력을 당해 심각한 상태로 예예동산에 피난(?) 왔다. 뒤늦게 아내를 찾으러 온 남편의 분노는 대단했다. 아내도 이혼만이 길이라며 남편을 보지 않으려 했다. 이튿날 저녁, 남편을 숲으로 산책 보내고 유 권사가 식탁을 차리는데 누워있던 아내가 돕겠다며 거들다가 갑자기 흐느껴 울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남편에게 따뜻한 밥 한 끼 제대로 차려 준 적 없었어요. 다 제 탓이에요….’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도 한풀 누그러진 듯했다. 식사 후 ‘둘이 할 이야기가 많을 것 같다’며 한 방에 몰아넣었더니 밤새 이야기소리가 두런두런. 올 때는 따로였는데 다음날 아침 일찍 둘은 같은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가끔씩 고맙다며 과일바구니를 들고 예예동산을 찾는다.

삶에서 어려운 일을 만나 갈 곳이 없어진 이들, 예예동산에서 1년씩 지내며 직장을 찾고 상황이 안정되어 새로운 삶을 이어갈 수 있었던 이들은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가 되어 반대로 예예동산의 일들을 도와주기도 하고,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끼리 서로 필요를 채워주며 연결되는 일들도 다반사다.

권 장로는 “여러 세대가 같이 살고, 같이 먹고, 같이 일하며 화목하게 지내는 게 우리네의 일상적인 가족의 모습이었어요. 핵가족화 되면서 다 깨어졌죠. 성경에서 말하는 가족도 혈육만을 따지는 우리의 편견과는 거리가 멀어요. 일차로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중요하고, 이차적으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중요한데 그것은 가장 가깝게는 가족, 이웃, 친구, 공동체, 이방인에게까지 확장된다”면서 예예동산이 기독교 공동체를 실현하는 터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성경을 공부하다, 신앙을 다시 배우다

이곳에서의 삶이 더욱 의미 있고 풍성해진 것은 성경에 새롭게 눈뜨면서다.

8년쯤 전 미국에서 사역을 마무리하고 귀국해 예예동산에 머물게 된 노에녹 목사와 김미경 사모를 통해 CBSI 공동체 성경공부를 만났다. CBSI는 배운 대로 덮어놓고 믿는 신앙이 아니라 성경공부를 통해 성경이 말씀하는 것을 그대로 따라가도록 안내한다.

CBSI는 1975년 미국 워싱톤에서 시작돼 세계 80개국에 전파된 기독교 성경연구 공동체로 참석자 개개인이 자기 주도적이면서도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묵상하며 삶의 변화를 경험하도록 안내한다. 이를 통해 섬기는 교회와 지역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생명력 있게 살아가도록 돕는 세계적인 초교파 성경공부 모임이다.

주중에는 각자 교재를 통해 말씀을 공부하고 주말에 모여 나누며 성경에 담긴 의미를 깊이 묵상하고 깨달아간다. CBSI 성경공부를 통해 자연스럽게 한울섬김교회가 세워졌고 CBSI 한국지부 역할도 감당하고 있다. 50여 명의 성도들은 복음 안에 한 가족으로 살아가는 기쁨과 실천하는 신앙의 능력을 경험하며 나아가고 있다.

놀라운 것은 영어로 된 성경 신구약 교재를 권 장로가 아픈 몸에도 불구하고 8년 간 하루 8시간씩 매달려 번역을 완성한 것이다. 자그마치 100여 종에 이르는 엄청난 분량이다. 파킨슨씨병을 앓은 지 17년째,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권 장로는 “CBSI는 주제별 성경공부가 아니라 성경 전체를 읽으며 성경을 성경으로 풀어가도록 안내합니다. 결국 성경으로 돌아가서 부단히 복음 앞에 자기 삶을 비춰보고 끊임없이 깨어져야 한다”면서 “번역을 마칠 때까지만 생명을 붙잡아 주실 것을 기도했는데 거동보조기 없이도 걸을 수 있게 됐다”며 성경을 다시 보게 하신 것이 하나님이 병을 주신 이유가 아닌가 한다며 감사를 고백했다. 지금은 청소년과 어린이를 위한 교재를 준비하고 있다.

전국의 150여 교회들이 CBSI를 통해 성도들이 변화되고 목회에 활력을 얻고 있다.

올해는 부부로 살아온 지 50년, 뜻 깊은 일을 계획했다. 번역이 완료된 CBSI 한국어 교재를 책으로 펴내는 것이다. 그동안은 교회들에서 요청하는 대로 복사·제본해 무료로 배포했는데 점점 요청하는 곳이 많아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 일을 위해 유 권사는 그동안 그린 그림을 내놓고 CBSI 교재 출판 기금 마련을 위한 전시회를 갖고 있다. 1차로 4월 7~29일까지 서초아트-원갤러리에서 가진 데 이어 5월 7~20일까지 KBS 춘천방송국의 초청으로 강원도 춘천시 퇴계동의 KBS춘천방송총국에서 갖고, 강촌 아가갤러리에서도 진행한다.

“남편이 목숨 걸고 해낸 일인 만큼 책으로 만들어서 많은 이들이 성경에 눈 뜰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책으로 만든 교재도 무료로 배포할 계획이다.

어느덧 점심시간, 콩나물밥과 함께 앞마당에서 뜯은 쑥으로 끓여낸 된장국 맛이 일품이다. “하나님 앞에 선 나, 이 단순한 원리가 삶도 신앙도 행복하게 만든다”며 예예동산에서 발견한 깨달음을 나눠주는 권태환 장로와 유명애 권사, 대자연 속 그들의 시간은 오늘도 평온하게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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