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펜의 아시아(AD 610~1625) 천년여행 [ 238 ] / 사제 왕 요한 45

“카라 키타이 영토와 보호지대에서 우리는 이슬람과 한 종교 한 형제처럼
살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야율 직고와 같은 고지식한 장군은 기겁을 했겠네요.”
“아닙니다.
자기도 나와 같은 자세로 이슬람을 대하겠다 하더군요.”

▲ 타지키스탄의 허허벌판 사막에서 이 두사람은 무슨 대화를 나누는 것일까.

사제 왕 요한은 카라 키타이 4대 카간이다. 자신의 왕조가 초원의 강자들과 어떤 위상으로 만날 수 있을까를 깊이 생각했다. 이미 파울로가 테무진의 친구요 기독교 스승으로 자리를 굳히고 있음을 알았다. 토그릴 옹칸의 선교부에 가 있는 선교사들을 통해서 소식을 듣고 있었다.

파울로가 요 며칠 사이 보내온 소식에는 옹칸이 테무진을 몹시 경계한다는 소식이었다. 사제 왕이 아는 케레이트의 옹칸은 군사 지휘관으로나 그의 백성을 이끌어가는 리더십에는 빈틈이 없다고 보았다. 그가 서양의 교황청이나 동로마 귀족들에게 최고의 실력자요 살아있는 네스토리우스로 인정받고 있음도 알고 있었다.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다. 인기척에 마음을 가다듬었으나 눈을 감은 채 그대로 있었다.

“폐하, 지성춘이옵니다. 곤하시나이까?”

요한 왕이 눈을 지그시 뜨자 빙긋이 웃음 짓는 지성춘의 곱게 늙은 노안이 눈앞에 있었다.

“어찌 그리 좋은 기분이시오.”

“폐하, 위에 오르신 지가 벌써 1년이 지났습니다. 지방 순시는 안 하시렵니까?”

“지방이라니…, 내게는 이곳 사마르칸트 또한 지방이오. 내가 곁에 있으니까 불편하시오. 내시부 대신께서는….”

“아, 아닙니다. 오늘 저녁은 나비소 장군께서 총사령관님 사저로 폐하를 모시려 합니다. 괜찮으실까요?”

“괜찮다마다. 나비소는 내 어머니 같은 분이오. 가야지요.”

요한 왕은 야율 직고 사령관을 불렀다. 야율 사령관은 매우 긴장했다. 도무지 빈틈이 없는 왕이 두려웠다. 자기를 내치지 않고 왕성을 지키고 왕통의 존엄을 지켜가야 하는 수도요 중앙군 사령관에 임명했으니 그는 조국에 대한 마지막 봉사로 알고 몸을 아끼지 않았다.

왕의 집무실에 들어서자 요한 왕이 다가왔다.

“어서 오시오. 요즘 건강은 어떠신가요?”

“폐하, 가까이 모신 뒤로는 제가 이 나라의 장수 노릇을 하고 있음에 자부심이 있나이다. 제가 아는 한 각 군의 장수들은 물론이고 병사들이나 농사나 짐승을 기르는 사람들마다 살맛이 난다고들 합니다.”

“그런가요. 그거 반가운 소식입니다. 우리 민족이 크게 일어나야 합니다. 야율 장군. 중앙군을 제외하고 각 군의 종합관리를 해야 하겠는데 무슨 방안이 있습니까?”

“네, 저도 그 생각을 하고 있나이다. 참모 부장에게 연구해 보라 했나이다.”

“내 생각에는 각 군의 병력을 갑절로 늘려야 하지 않겠느냐입니다. 일단은 열 살에서 쉰 살까지를 현역군으로 하고, 노년층도 남녀 불문하고 병적에 올리도록 하세요. 이를 다음 주까지 보고토록 하세요.”

“네, 폐하!”

“참, 야율 성소 장군의 근황은 어떤가요?”

“네, 유드게스 사령관을 통해서 소식을 듣고 있나이다. 폐하의 태산 같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 산다고 하더랍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폐하를 모시고 요 제국 창건 이후 전성기를 이룰 것입니다. 우리는 폐하의 방침대로 초원의 북방군과 연합하여 유럽의 문을 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소. 거대한 중앙아시아 무대를 우선 살기 좋은 제국으로 만드는 일입니다. 장군! 장군은 이걸 알아야 하오. 우리 개국조이신 어른의 방침대로 우리의 영토 안에는 유목과 농경을 겸해서 생산력을 높일 수 있소. 그리고 무역을 통해서 이웃나라들과 우호관계를 이루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일이 있어요.”

왕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더 중요한 일이라 하셨사옵니까, 폐하.”

야율 직고는 요한 왕의 얼굴이 긴장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혹시 무슨 고민이라도 있을까?

“아, 그래요. 내가 잠시 생각을 다듬었소이다. 더 중요한 일은 이슬람 형제들과 좀 더 친하게 지내야 합니다.”

“이미 우리는 그리하옵니다.”

“더요. 더 친밀해야 하오. 마치 우리 기독교와 이슬람이 같은 종교처럼 말이오.”

“네, 거 무슨 말씀….”

야율 직고는 이슬람과 기독교가 똑같은 종교라는 내용으로 받아들였다.

“숙부! 내가 한 말을 오해하지 마세요. 기독교가 이슬람과 똑같은 종교라는 뜻이 아니오. 내가 알기로는 아브라함 조상의 두 아들에게서 나타난 두 종교이니 형제라는 뜻으로 한 말이오. 우리들 네스토리우스 파가 중앙아시아와 중국 대륙에서 7백여 년 살아오는데 이곳에는 종교와 사상들이 많아요. 특히 불교는 종교적인 특성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고요. 우리는 조상 중 한 분이신 네스토리우스 총대주교님이 로마에서 쫓겨난 덕분에 아시아 종교들과 함께 지내면서 느끼는 바도 있지요. 종교란 큰 틀에서 하나입니다. 모두가 아브라함 종교의 형제요 인척 신분의 종교들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 기독교와 이슬람은 좀 신사적으로 살펴보면 저기 지중해 쪽에서 지금도 죽기 살기로 전쟁에 몰두하는 이슬람과 기독교의 십자군 전쟁은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아요. 양쪽 다 잘못되었어요. 십자군 전쟁이 지금 싸움을 시작한 지가 120년 쯤 되었어요. 앞으로도 언제까지 싸울지는 모르지만 둘 다 야만적인 소행들입니다. 나는 우리 중앙아시아 일대의 이슬람과는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든지 형제처럼 서로 돕고 사는 관계를 만들고 싶어요. 아시겠습니까?”

요한 왕은 눈을 번뜩이면서 말했다. 그의 눈가에는 눈물이 젖어 있었다. 야율 직고는 왕의 열정적이고 또 정확한 말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들은 말없이 허공을 응시했다.

“장군, 내가 너무 허황된 말을 하는 것은 아닐까요?”

“아, 아닙니다. 지당하시옵니다. 그러나 그것이 쉽지는 않은 일인지라…, 소장이 부족하여 송구할 뿐이옵니다.”

“아니오. 피차 마찬가지요. 나 역시 실행해 나갈 마땅한 방도가 있는 것은 아니오. 다만 나를 비롯하여 인간들이 생각보다 무지하고 미련하다는 것을 마음 아파할 뿐입니다.”

요한 왕은 야율 직고를 내보내고 저녁 시간에 맞춰서 지성춘 환관장의 안내로 을지고 총사령관의 관저로 자리를 옮겼다.

나비소. 나비소가 나비처럼 사뿐히 다가와서 요한 왕 앞에 엎드린다.

“어이, 왜이러십니까?”

요한 왕이 나비소의 어깨를 토닥였다. 나비소가 몸을 일으키더니 왕을 껴안는 시늉을 했다.

“마마, 제가 마마를 껴안아 무릎에 모시고 즐거워하던 때가 다 가버려서 이제는 슬프옵니다.”

요한 왕이 나비소를 마주보며 아이처럼 웃는다. 나비소는 일흔 살이 넘은 나이인데도 하얀 얼굴에 주름진 곳이라고는 목덜미뿐이고 자애로움만이 철철 넘쳤다.

“마마, 오늘 이 시간에는 마마의 비 마마를 언제쯤 맞이할까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 싶나이다. 장군과 제가 점찍어 둔 훌륭한 왕비감이 있기도 해서요.”

“전혀 뜻밖이옵니다. 저는 제가 왕궁에 갇혀서 고생한다고 위로하고자 불러주신 줄 알았나이다.”

그때 을지 고가 들어왔다.

“폐하, 송구하옵니다. 제가 의무 사령부에 갔다가 그만 늦었나이다. 죄를 지었나이다.”

을지 고는 의무 사령부 장교인 정진주를 데리고 오려다가 늦었다. 정진주는 요한 왕의 비로 점찍어 둔 인물이었다. 요 제국 폐망 시에 여진족의 포로가 되었던 정호주 장군의 집안 후손이다. 그의 부친과 함께 고비사막을 거쳐서 카라 키타이로 온 인재다. 그의 부친은 중앙군 사령부 소속 정일추 장군이다.

“사부님, 저더러 왕비를 맞으라 하지 마세요. 사부님은 제가 누군지 아시지 않습니까. 저는 왕이기 이전에 사제입니다. 로마제국 사제들은 결혼하지 않습니다. 수도원 수사들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니 저에게 결혼하라는 말씀은 하지 말아주세요.”

을지 고와 나비소는 웃어넘기고 있었다.

“사부님, 서양의 교황이나 비잔틴 황제가 카라 키타이 창업 황제이신 할아버지를 사제 왕으로 지목했지요. 그럼, 그때 야율대석 우리 창업군주가 뭐라 하신 말씀을 사부님은 들으셨다 하셨지 않습니까. 제가 사제 왕이라고. 제가 사제로서 우리 예수님을 크게 빛나게 하실 거라는 말씀을 저에게 들려주신 분이 사부님이시잖아요.”

“그러나 폐하가 결혼을 하지 말라고는 하시지 않았어요.”

“그런 말씀을 왜 하시겠어요. 참된 사제는 결혼하지 않습니다. 사제는 주 예수님과 한 몸입니다. 예수님처럼 오직 십자가로 도(道)를 이룰 날을 위해서 일하는 것입니다.”

“…….”

“사부님, 참 오후에 야율 직고 사령관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제가 사부님과 늘 나누던 말을 했더니 많이 놀라시더군요.”

“무슨 말씀을 하셨는데요, 폐하!”

“네, 카라 키타이 영토와 보호지대에서 우리는 이슬람과 한 종교 한 형제처럼 살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야율 직고와 같은 고지식한 장군은 기겁을 했겠네요.”

“아닙니다. 자기도 나와 같은 자세로 이슬람을 대하겠다 하더군요.”

“나비소가 아룁니다. 그러니까 기독교와 이슬람을 하나의 종교처럼 한 형제처럼 이끌 때까지는 가정을 이루지 않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겠나이다. 나의 왕이시여, 사제시여!”나비소가 말없이 마유주를 들이키더니 양 볼 그리고 눈가에 홍조를 띤 얼굴로 말했다. 눈이 촉촉해져 있었다. 어여쁜 모습으로 보였다. 안아주고 싶은 할머니였다.

“그래요. 저는요, 요즘 초원의 최강자와 사귀는 꿈을 많이 꾸고 있어요. 테무진, 그 사람이 보고 싶어요. 그 사람과 아시아의 왕별 다툼을 해보고 싶어요. 그러나 우리가 그들을 유럽으로 안내하는 문이 되고 그들이 유럽을 깨워낼 것이라는 예감이 있어요. 패배감이 아니라 하나가 되는  꿈을 지켜낼 것입니다.”
“이 늙은이가 폐하를 모시겠습니다.”

“이 할미도 함께요, 마마!”

요한 왕은 을지고가 내미는 것을 받았다. 정진주가 요한 왕에게 올리는 글이었다. 요한은 그것을 펴들었다. 사제시요 우리들의 왕이시여. 저와 4명의 소녀들이 여성 “카라진” 부대를 훈련시켜서 사제 왕의 나라를 더 크게 일으키는 일에 도움이 되려하나이다, 라고 적혀 있었다. 요한 왕은 정진주가 누구냐고 물었다. 을지고는 나비소의 직속 부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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