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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전환
지형은  |  dsr12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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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8호] 승인 2018.06.06  13: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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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 형 은
말씀삶공동체
성락성결교회 담임목사

사람이 다른 동물들과 다른 특징 중에 이성과 지성이 핵심이다. 불후의 고전 ‘팡세’의 저자 블레어 파스칼(Blaise Pascal, 1623~1662)은 사람이 다른 피조물과 다른 점을 생각하는 것에서 찾았다. 신체적인 힘이나 청각이나 후각 등 다른 현상적인 능력으로 보면 사람은 다른 존재들에 비해 결코 강하지 못하다. 사람은 생각하는 능력으로 다른 모든 피조물보다 뛰어나며 위대하다. 생각하는 힘 곧 지성과 이성의 작용으로 사람은 정신문화를 일구고 과학 기술 문명을 발전시켜왔다. 그러나 이런 깊은 묵상을 전해준 파스칼이 사람에 대하여 이런 말도 했다.

“인간이란 도대체 괴물 같은 것이 아닌가? 진기하기 이를 데 없고, 무슨 괴물, 무슨 혼돈, 무슨 모순에 가득 찬 것 등이 아닌가 말이다. 모든 것의 심판자이면서도 어리석은 흙속의 지렁이에 불과한 것, 진리를 맡은 자이면서도 불확실한 오류의 시궁창, 우주의 영광이면서 우주의 쓰레기이다”(‘팡세’, 삼성출판사, 176면).

이 언급에서는 알베르 까뮈 식의 부조리한 인간관이 미리 보이기도 한다. 인간은 도무지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부조리하고 비합리적인 존재, 어떤 때는 신의 자비함을 보이다가 또 어떤 때에는 짐승의 야만성을 드러내기도 하는 존재 말이다. 인간이란 존재의 이중성에 대한 깨달음은 인간의 정신 문명사에서 아주 오랜 일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인간은 신과 짐승의 이중성을 가진 존재다. 동양 사상에서도 사람의 본성을 선하다고 보는가 하면 악하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인간 본성의 이런 특징을 ‘선악의 이중성’이라고 말하면 표현 자체가 이미 부정적이다. 중립적으로 표현해 본다면 인간 본성이 지닌 ‘변화의 가능성’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은 이런 변화의 가능성 덕분에 인간 사회에서 문화라는 것이 가능하다. 생각해 보라. 동물의 세계에 문화는 없다. 변화는 인간의 삶에서 필연적이다. 좋은 쪽으로 바뀌든지 나쁜 쪽으로 바뀌든지 방향이 다를 뿐이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존재하는 인간의 역사와 문화에서 변화는 선택 사항이 아니다.

길지 않은 칼럼에서 변화라는 단어를 끌어내는 서두가 너무 길었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의 변화가 그야말로 소용돌이다. 트럼프와 김정은 두 정상이 펼치는 현란한 반전들이 어지러울 정도다. 변화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은 뭐니 뭐니 해도 트럼프다.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됐을 때 많은 사람이 탄핵으로 도중하차하리라 생각했다. 트럼프가 탄핵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우리 사회에서 남북관계와 관련하여 필요하다면 까짓 것 전쟁이라도 해보지 하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은 대체로 처음에는 트럼프에 우호적이었다. 어떤 경우에도 전쟁은 안 된다고 확신하고 남북의 화해와 대화를 주장한 사람들은 그 반대였다.

그러나 이제는 판이 바뀌었다. 현재 상황에서는 대화를 통한 평화 구축과 상생의 통일을 주장하는, 이른바 진보적 통일론자들에게 트럼프가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트럼프가 탄핵으로 도중하차라도 하면 큰일이다. 지금 남북관계를 중심한 한반도 상황에서 중요한 패는 트럼프가 쥐고 있다. 트럼프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하다.

변화의 시대다. 이런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치 판단을 정확하게 하는 일이다. 핵심 가치와 부차적인 가치를 구분하는 일이다. 이른바 보수니 진보니 하는 것은 북미의 두 정상에게는 부차적인 일이다. 자국의 생존과 이익 그리고 자신의 정치적 입지가 가장 중요하다. 이 핵심 가치 외에 다른 모든 것은 변할 수 있다. 우리는 보통 북한의 지도자들이 아주 고착된 사고구조를 가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틀렸다. 그들은 전략적이었다. 핵심 가치를 중심으로 얼마든지 변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사고의 유연성이 넉넉한가. 변화의 시대에서 살아남으려면 생각이 바뀔 수 있어야 한다. 핵심 가치와 부차적인 것들이 뒤섞인 상황을 정리해야 한다. 생각의 전환, 생존의 기본 조건이다. 한반도의 현재 상황에서 종전 선언, 평화조약, 통일로 가는 길에 가장 필요한 것이 이것이다. 기독교 지도자들이 곱씹어야 할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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