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환 목사의 독서 이야기 [87] <신약 윤리학>

▲ 하늘기쁨목회자
독서회대표
하늘기쁨교회 담임

기독교 윤리와 세상의 윤리를 비교할 때 무엇이 더 뛰어날까요? 당연히 기독교 윤리가 뛰어납니다. 세상의 윤리는 기독교 윤리에 지대한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합니까? 기독교인들이 세상 사람들보다 더 뛰어나다고 결코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매우 부끄럽습니다. 신앙인의 믿음 자체에 신뢰가 가지 않습니다.

<신약 윤리학>(프랭크 J. 메이트라 저/CLC 간행)은 ‘예수와 바울의 유산’이라는 부제를 가진 이 책은 신학적인 책이지만 그리 어려운 책은 아닙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윤리 하면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이 바울의 ‘이신칭의’입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윤리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당연히 예수님이 말씀하신 윤리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바울의 로마서 윤리에 매여 있습니다. 그것도 편협하게 말입니다. 그래서 ‘믿음이면 모든 것이 된다’는 생각으로 윤리가 땅에 떨어진 모습을 많이 봅니다. 윤리가 땅에 떨어져 있어도 믿음만 있으면 구원을 받기 때문에 복잡하게 윤리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윤리에 대해 고민하지 않습니다. 책임을 가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이상한 종교가 되었습니다. 부끄러운 기독교가 되었습니다.

저자는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의 윤리를 반영하고 있는 복음서와 바울의 윤리를 반영하고 있는 바울서신을 중심으로 윤리에 대해 말합니다. 기독교인이 윤리를 생각할 때는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윤리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우선순위에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윤리에 대해 무엇을 말씀하셨을까요? 사복음서 윤리의 중심은 ‘하나님 나라’에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이미 온 하나님 나라를 알게 되고 믿게 된 사람들이 그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가운데 살면서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활동에서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회개하고 복음을 믿음으로 현존하는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하나님 나라의 통치법은 이미 성경에 아주 잘 나와 있습니다. 사복음에서 예수님과 율법의 관계를 말하라고 한다면 ‘전혀 불일치가 없음’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선택하신 이스라엘은 그 율법 규정을 지킴으로 하나님과 올바른 언약 관계 안에 있게’ 됩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지 폐지하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이들을 도와 율법을 더 잘 지키도록 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 자신이 모든 율법을 지키셨습니다.

예수님이 ‘율법을 폐지하시는 것이 아니라 완성하시는 것’임을 사람들은 압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신칭의 내용을 보면 율법 폐지처럼 말합니다. 그러나 의식법처럼 완성된 구약의 율법조차도 완성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의 실천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살펴야 합니다. 실체로서 오신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율법의 실체를 부정하는 율법주의가 잘못이지 율법이 잘못은 아닙니다. 그런데 바울은 율법주의와 싸우면서 그것을 율법주의라 말하지 않고 율법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오해가 생겼습니다.

저자는 바울의 윤리를 말할 때 로마서가 너무 큰 비중을 차지하지 말아야 할 것을 이야기합니다. 다른 서신들을 살펴보면 그가 율법과 윤리를 얼마나 강조하는지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놓치고 로마서에 대한 편협한 생각으로 윤리를 무시하는 신학적 해석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법’은 ‘그리스도가 사랑으로 살아내고 해석한 모세 율법’임을 암시한다고 말합니다.

성경을 제대로 알아 이 땅에 기독교 윤리가 아름답게 빛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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