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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믿었던 하나님은 전통과 무엇이 다른가90세의 존 캅-예수의 가르침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도록 만든 장애물 거둬내다
양승록 기자  |  dsr12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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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8호] 승인 2018.06.06  14:4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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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한 하나님, 도덕적인 심판자
하나님, 배타적인 하나님,
또는 사람들을 용서하기 위해서
희생제물을 요구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해악”

 

   
▲ <예수의 아바 하나님>
존 캅 지음/박만 옮김/
한국기독교연구소

기독교가 전통적으로 가르친 하나님이 예수가 믿었던 하나님과 전혀 다르다고 말하는 저자는 올해 구순을 맞이했다. 저자는 기독교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행한 끔찍한 범죄들을 지적하고, 다시 하나님에 대한 예수의 혁명적인 통찰에 주목할 것을 촉구한다.

저자의 제안은 단순명료하다. ‘하나님을 예수께서 생각하신 것처럼 생각하자’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매우 진지하게 생각하지만, ‘예수 자신이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그가 자유주의자라고 분류한 사람들과 대부분의 보수적인 신자들은 교회 역사에서 일어난 다섯 가지 일들이 예수 자신의 가르침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도록 막아버렸다고 지적한다.

첫 번째 막아버린 것은 불가타 역본, 즉 성 제롬이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한 역본의 영향이라는 지적이다. 제롬의 훌륭한 번역을 인정하더라도 ‘샤다이’라는 하나님 이름 번역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히브리 성경에는 두 가지 고유 명사가 등장한다. 하나는 ‘야훼’ 번역인데, 제롬은 이를 ‘주님’(the Lord)으로 대체했다. 또 다른 이름 ‘샤다이’를 제롬은 ‘전능자’(the Almighty)로 번역, 독자들이 하나님을 전능한 분으로 생각하게 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초기 교회의 교리 발전 과정에서 비롯된 문제, 즉 공의회들에서 결정된 신조들의 권위가 성경 저자들과 예수 자신의 권위를 대신하게 됐다며, 예수가 신조들의 그리스도보다 중요하게 되는 때가 와야 할 것이라고 저자는 밝힌다.

예수를 주목하지 못하도록 막은 세 번째 신학적 문제는 11세기의 신학자 캔터베리의 안셀무스가 특별한 권위를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 그 상황 속에서 예수는 도망치거나 숨어버릴 수 있었지만 십자가 처형을 받아들였다. 그가 그렇게 한 것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였으며, 여기에는 자신을 죽인 사람들까지 포함된다. 그런데 안셀무스는 예수가 타인들을 위해 죽었다는 생각을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거대규모의 희생제사를 필요로 하신 우주적인 이야기로 만들어버렸다는 것이다.

예수의 가르침에는 사람들을 용서하기 위해 하나님이 엄청난 희생제물을 요구하신다는 대목이 없지만 안셀무스의 주장 이후 예수의 죽음은 인간의 죄를 속량하는 것이며 우리를 용서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는 믿음이 기독교 신학 속에 깊이 뿌리내리게 됐다는 것이다.

네 번째 중요한 장애물은 자연법 이론을 기독교 윤리의 기초로 채택한 것이라고 짚었다. 예수는 모든 도덕 규칙들은 인간의 행복을 위한 것이어야 하고, 이웃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교회는 주로 그리스 사상에서 유래된 복잡한 법체계로 모세 율법을 대체했다고 말했다.

다섯 번째 장애물은 근래의 일로서 종교적 확실성을 위해 특정 자료를 확정하려는 시도라고 진단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매우 불확실한 세계를 보여주며, 다양한 모습으로 불확실성을 제시한다. 그러나 신교의 한 분파는 하나님이 그 저자들이 아무런 실수도 하지 않도록 막으셨다고 선언했다(성경무오설). 그 결과 사람들은 성경 안의 모든 문장들을 똑같이 영감 받아 기록된 문장들로 보게 하여 예수의 특징적 메시지를 진지하게(비평적으로) 주목하지 못하게 됐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이런 잘못된 전통들 대신 우리가 열정적으로 확증할 수 있고 마음을 다해 예배할 수 있는 하나님으로서 예수의 아바(Abba)를 제시한다. 예수처럼 하나님을 생각하고, 또 하나님과 관계 맺을 것을 그는 주장한다.

또 무신론자들의 불신과 적대감을 불러일으킨 하나님은 예수의 하나님이 아니라는 점을 논증하는 저자는 전능한 하나님, 도덕적인 심판자 하나님, 배타적인 하나님, 또는 사람들을 용서하기 위해서 희생제물을 요구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왜 해악이 될 수 있는지 담담히 써내려가지만 적지 않은 이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적인 논증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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