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행위의 동시동작을 고민하며 걸어가는 평화누림메노나이트교회 배용하 목사

‘이것이 과연 성경이 말하는 교회의 모습일까?’
고민 속 발견한 메노나이트 공동체 순교 역사, 죽음으로 이뤄낸 적극적 평화에 감격

신앙공동체와 함께 농사짓기, 지역민 섬김, 개혁 지향의 책들 펴내는
대장간 출판사 운영… 모두 ‘행동하는 신앙’의 몸짓

 

펑펑 울었다. 억울한 일을 당해서가 아니라 신앙을 지키기 위해 억울함을 무릅쓰고 무참히 죽어간 이들의 모습에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눈물이 흘렀다. 신앙의 이름으로 신앙의 형제를 죽인 자들에게서 자신의 얼굴이 보였다. 삶이 없는 형식적 신앙에 빠진 나, 신앙이란 잣대로 형제를 죽인 저들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어떻게 해야 참된 신앙의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하던 한 그리스도인은 그렇게 껍데기뿐인 신앙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 메노나이트 신앙공동체를 만나다

출판사 대표인 줄만 알았는데, 출석교회를 물으니 “내가 메노나이트교회 목사”라고 소개했다. 개혁 지향의 책들을 출판해온 대장간 출판사 배용하 대표(53)가 고향인 충남 논산으로 내려간 지 올해로 8년째. 출판사를 운영하며 농사에도 공을 들여 농약이나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고 벼농사 3천 평, 하우스 두 동, 그 외에도 600여 평에 갖가지 밭작물을 재배할 정도로 농부가 다 됐다. 농사지으면서 이웃 간에 품앗이는 물론이고 병원을 오가는 일이나 지역민들의 필요를 틈틈이 살피고 있다. 이 모두가 배 대표에게는 ‘행동하는 신앙’의 일환이다. 지역민들과의 소통을 통해 ‘길 위에서 만나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있다고.

신학교를 졸업하고 전도사 시취 받은 후 메노나이트교회로 예배드린 지는 10년쯤 됐고, 2년 전에 한국 메노나이트 교단이 세워지면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평화누림메노나이트교회는 배 목사 가정까지 세 가정, 13명이 공동체로 함께한다. 한 가정은 이곳 토박이로 농사가 생업이고 또 한 가정은 배 목사처럼 생업과 농사를 병행하고 있다. 함께 농사지어 공동체의 먹거리를 해결하고 넘치는 것은 팔기도 한다. 공동체 안에서는 모두 형제자매로 부른다. 참된 신앙의 길을 훈련하고 농사도 함께 지으며 걷는 길, 성도의 교제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순간순간이 너무도 소중하다. 과거 형식에 얽매인 신앙생활에서는 맛보지 못한 것이었다.

“종교개혁 당시 죽음에 자신을 내어주며 그들이 이뤄낸 적극적인 평화를 보고 놀라웠어요. 남편이 끌려가서 구교와 신교의 선택을 거부해 죽고, 뒤이어 아내가 남편이 죽은 자리에서 또다시 양단 간의 신앙을 강요당하다가 죽임 당했어요. 시체도 찾지 못하게 화형시키고…. 나도 그 시대에 살았다면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내 것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무서운 짓을 저질렀겠구나 싶었어요.”

장로교에서 30대에 안수집사가 될 만큼 열심이었다. 그런데 깊이 볼수록 교회에서 재정 사용이나 구조, 신앙의 방식 등 납득할 수 없는 부분들이 보였다. 이것이 과연 성경이 말하는 교회의 모습일까? 확인해봐야겠다는 생각에 40살에 침례신학대학원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신학을 공부하며 만난 재세례파의 순교 역사를 기록한 책은 그를 새로운 삶으로 이끌었다. 쫓기고 죽임당한 역사, 그들은 왜 죽어야 했을까?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는 칼로 이뤄낼 수 없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자신들을 죽이기 위해 뒤쫓는 세력에 결코 폭력으로 맞서지 않았어요. 자신을 죽음에 내어줌으로써 이뤄낸 적극적 평화의 길이었습니다.”

현재 한국에는 각국의 아나뱁티스트/메노나이트 센터의 네트워크 사역을 하는 춘천의 한국아나뱁티스트센터(KAC)와 성경에 근거한 아나뱁티스트 관점의 제자도 평화 공동체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메노나이트 교단의 교회 4곳이 있다.
 

# 신앙, 반드시 삶이다

배 목사가 아나뱁티스트 공동체들을 보면서 가장 감명 받은 것은 삶으로 살아내는 신앙 모습과  공동체 멤버 모두와 함께 걷기 위한 기다림이었다.

“아나뱁티스트의 신앙은 철저하게 삶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절대적 평화를 지향하는 신앙고백을 말뿐이 아니라 삶에서 실천하고, 회의하는 방식이나, 성경 해석 방법 등도 한국교회처럼 한 사람에게 권한이 집중되지 않고 모두가 참여하는 것을 봅니다. 목사들의 경우 몇 년 간은 대가 없이 봉사하고, 자신의 재산을 교회에 헌납해 구제에 사용하도록 하는 등 신앙이 현실적이고 구체적이에요. 삶으로 살아내지 않는 신앙은 대를 이어 전수될 수 없습니다.”

지난 4월 열린 아나뱁티스트 세계 총회에 참석했다가 전체가 함께 가는 모습에 또 한번 놀랐다. 이번 총회 중요 쟁점의 하나는 우리나라에서도 크게 이슈가 되고 있는 동성애 목회자를 허용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였다. 이 논의는 이미 7년쯤 전부터 이어져왔다. 처음에는 다수가 반대했지만 이번에는 1/3만이 반대 입장에 섰다. 아나뱁티스트/멘노시몬스 공동체는 의사결정에 있어 만장일치를 추구한다. 총회라고 해서 각 교회의 대표자들이 단독으로 입장을 표시하는 것이 아니라 교인들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토론 현장에서 새롭게 알게 된 정보를 자신의 교회 멤버들과 공유하고 재차 논의하는 과정에서 설득되기도 한다. 그러나 한 사람이라도 반대하면 그 교회는 반대 입장에 서게 된다. 그리고 안건은 다음 총회로 넘어간다. 1년 임기의 총회장이 자신의 임기에 안건을 처리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거나 정치적 수완에 따라 결과가 뒤집히는 모습 등은 찾아볼 수 없다.

“메노나이트 교회에 가보면 입구에 배나 버스 그림이 있고 ‘Journey’라는 단어가 쓰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신앙이란 함께 걷는 긴 여정이라는 의미지요. 메노나이트 공동체가 쫓기는 역사 속에서도 오늘에 이를 수 있었던 힘이 아닐까요.”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위해 행동하는 신앙의 삶, 함께 걷기 위한 기다림, 이 땅에 적극적 평화를 이뤄내는 일 등 한국메노나이트교단의 4개 교회들은 “한번 살아보자”는 다짐으로 함께하고 있다. 두 번의 총회를 개최했고, 올해 10월에는 배 대표의 집에서 70-80명의 한국 메노나이트 멤버들이 2박3일간 모여 세 번째 총회를 갖는다.
 

# 그들은 왜 죽어야 했을까?

배 대표가 2000년에 대장간 출판사를 인수한 것도 행동하는 신앙으로 안내하는 책들을 한국교회에 소개하고 싶어서였다. 당시 자끄 엘륄이나 박철순 목사의 책이 특히 마음에 끌렸다. ‘대장간’ 이름 그대로 ‘사라져가는 복음의 능력을 되살리고, 낡은 것을 새롭게 풀무질하며, 잘못된 것을 바로 세우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한국교회에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많은데 과연 다른 사람이 그를 인정하는 그리스도인은 얼마나 될까요? 주일날 예배만 겨우 참석하는 정도로 그리스도인라고 말하고 교회는 그런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한국교회가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책들을 만들고 싶습니다.”

왜곡된 복음, 받기만 하는 은혜, 행위 없는 믿음, 두려움과 불안을 조장하는 미신적 신앙 등의 허점이 무엇인지 밝히는 책들을 펴내 그것이 잘못된 것을 알 수 있도록 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마이클 하딘의 <예수가 이끄는 삶>과 정재익의 <맡겨주심>이다. <예수가 이끄는 삶>은 릭 워렌의 <목적이 이끄는 삶>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자기암시, 자기최면에 빠지게 할 수 있다는 우려로 펴냈다. <맡겨주심>은 자본주의와 재물의 신에게 축복을 비는 오늘날 교회 현실에서 맘몬의 질서에 대항하는 태도를 가르쳐준다. ‘거룩한 부자’ ‘기적을 말하는 물질관’은 맘몬의 다른 얼굴일 뿐이라며 배격한다.

두 권 모두 한국교회에 꼭 필요한 책이라는 생각으로 펴냈지만 그다지 많이 팔리지는 않았다. 그래도 책을 읽은 이들에게서 ‘잘못된 신앙관을 견제할 수 있게 되었다’는 피드백이 오기도 한다. 이전에 디자인 업체를 통해 벌은 돈은 대장간 출판사를 운영하며 거의 다 털렸다(?). 그래도 “이왕 시작했으니 팔 것 다 팔고 돈 떨어지면 보따리장수라도 해서 메워야 하지 않겠냐”며 웃는 배용하 목사, “책을 내고 그 수익으로 다음 책을 낼 수 있다면 좋겠다”며 바람을 드러냈다.

이 외에도 아나뱁티스트 관련 책들과 자끄 엘륄, 크리스토프 프리드리히 블룸하르트 등의 시리즈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 책들의 핵심은 행동하는 신앙, 삶이 바뀌는 거듭남에 대한 것이다. 시골교회 목사의 삶을 다룬 <목사 사용 설명서>(김선주 지음)를 읽고는 배 목사 자신도 “목사라면 당연히 지역민과 같이 호흡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담긴 진한 인생이야기에 귀 기울이면서 함께 울고 웃고, 요즘 목회의 맛을 알아가고 있다고 했다.

“성경에서 하나님 나라와 그 백성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즉 하나님 나라의 법이 있다는 겁니다. 내가 하나님 나라를 믿고 그 법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런 삶은 손해나는 것을 알면서도 감당해야 할 때가 있어요. 그러지 않고 내 이기심대로 산다면 그걸 믿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삶이 흐트러질 때면 순교자들의 역사를 떠올린다. 그들은 왜 죽어야만 했을까? 그리고 다시 깨우친다. 그들이 옳았다는 것을. 예수가 그랬던 것처럼, 결국 그 길뿐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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