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 은 성
총신대 교수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중학생이 되면서 새로운 과목을 경험한 것은 영어였다. 말로만 듣던 외국어를 처음 접하니 매우 신기했다. 알파벳 하나씩 배우는 것은 마치 수학공식처럼 기호를 배우는 듯, 코드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문법에 기초된 언어들을 나열해 의사소통하는 것이 나에게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영어를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한꺼번에 완성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 실망과 좌절을 맛봐야만 했다. 영어에 한이 맺혔는지 영어의 종주국인 영국에 가서 언어연수하고 TOEFL 시험에서 합격, 꿈에 그리던 미국에 가서 학위를 받고서야 비로소 영어에 익숙하게 되었다. 중학생 시절의 영어를 생각하면 끔찍하지만 자유하게 되어 하나님께 감사한다.

영어를 배우면서 힘들었던 것들 중 하나는 숙어(idioms)였다. 단어의 뜻만 알면 되는 게 아니라 몇 단어들이 모여 문장에서 새로운 의미로 드러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명사가 동사로, 동사가 명사와 형용사 및 부사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동사에는 수많은 종류가 있을 뿐만 아니라 어떤 형태를 갖추면서 그 의미도 달라진다. 단어의 뜻을 외우는 것도 힘든데 그 의미를 알기 위해 숙어나 문장까지 외워야 한다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 언제 그 의미들을 다 파악할 수 있을지 막막하던 시절이 있었다. 수많은 세월을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익숙해져 이제는 자유를 느낀다. 인생이라는 수업료를 들인 후에야 마침내 그 자유를 갖게 되었다. 코드로 느껴지던 언어가 자연스럽게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문자로 형성된 글을 읽노라면 그 단어 본래의 뜻을 파악하는 것이 먼저 중요하고, 단어들이 모인 숙어가 중요하고, 단어들의 순서가 중요하고, 문장에 쓰인 의미도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한꺼번에 파악하겠다고 덤벼들다가는 큰코다칠 뿐 아니라 좌충우돌하기도 한다. 하지만 하나씩 점령해 나가야 하고, 세월을 통해 경험이 쌓이면서 익숙해진다는 것도 깨달아야만 한다.

성경은 인간의 언어로 쓰였고 하나님께서도 인간의 언어를 통해 의사를 전달하셨다. 구약성경의 히브리어와 신약성경의 그리스어를 배우는 이유도 그 단어들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잘 파악하면 하나님의 의도를 어느 정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의할 점이 있다. 단어의 뜻에만 몰두하다보면 그 단어들의 모임, 즉 숙어가 주는 의미가 뭔지 파악하지 못할 때가 허다하다. 더욱이 성경의 언어를 한글로 번역하는 경우에도 오해가 있다. 그래서 성경신학만을 통해 성경의 뜻을 파악하지 말고 조직신학이라는 학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전자는 본문이라면 후자는 전체의 뜻을 우리에게 제공하기 때문이다.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성경의 의미를 파악하게 된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영이다!”라는 의미는 환영, 귀신, 혼, 기(氣) 등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 문자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영, 돌아다니는 귀신처럼 인간의 몸에 들락날락하는 존재라고 해석하기 쉽다. 하지만 아니다. 하나님께서 영이라는 의미는 하나님에 대한 인간적 상상력을 포기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 인간의 인격, 즉 인간 내면인 영의 기능을 보며 편견을 갖는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그리고 가시적이지 않지만 엄연히 존재한다는 의미도 있다.

이렇게 성경을 자신이 좁게 알고 있는 지식으로 해석하기 시작하면 1도의 차이지만 세월이 지나면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를 보일 수 있다. 처음부터 진리에 대한 바른 해석을 배우거나 학습하지 않으면 언제든 오해와 왜곡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의 자녀, 중생된 자, 중생을 경험한 자, 신자,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다면 반드시 학습자의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12년 간 영어를 배워도 여전히 그 뜻을 해석하지 못하는 문맹이 되는 것처럼 아무리 오랜 세월 교회를 다녀도 진리의 의미를 전혀 파악하지 못할 수 있다. 배우지 않고 깨닫지 못하는데 신앙에 대해 무슨 가치관을 가질 수 있을까? 신자라면 반드시 학습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우리 삶에서 구현하는 것은 세상, 즉 지상에서의 삶의 목적이다. 오늘도 부지런히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자 한다면 그분에 대한 지식을 배우는데 익숙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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