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지도자의 심리‌‌‌‌‌[218]

“지혜로운 교회 리더는
장례예식을 성도들을
돕는 기회, 전도의 기회로 삼는다.” 

 

▲ 최종인 목사
평화교회 담임

시민의식이 높아지고 예전과 다른 죽음문화가 발달함에 따라 장례의식이 상당한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장례의식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사별의 아픔을 겪게 되는데, 장례의식이 잘 진행된 경우에는 사별가족의 슬픔을 건강하게 해소하도록 돕고, 회복탄력성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교회 리더는 장례예식을 성도들을 돕는 기회, 전도의 기회로 삼는다.

첫째, 장례식은 사별을 기정사실화하도록 도와준다. 장례의식을 통해 사별 가족들이 고인의 시신에 직면함으로 단지 주검을 보는 것만이 아니라 죽음의 현실과 고인의 종국(終局)을 납득시키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장례예식을 거행하는 것은 유족들이 사별 슬픔을 겪어내는 첫 번째 과업인 죽음을 수용하도록 한다.

둘째, 장례예식은 사람들에게 고인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사별 가족들이 고인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장례식은 고인과 대화할 기회를 줄이고 있다. 가족들이 고인과 만나는 시간은 입관순서의 기회뿐이다. 많은 친구들이나 친척, 성도들은 그런 기회조차 없다. 그저 장례식장에 가서 인사하며 영정사진 너머로 고인을 추모할 뿐이다.

셋째, 장례예식은 돌아가신 고인의 인생 역정을 보여준다.  어떤 목회자의 장례식에 갔는데 그의 친구들이나 그가 목회한 교회 성도들이 그에게서 들은 설교나 추모 글을 읽는 것을 보았다. 나는 주로 화장장에서 가족들과 기다리는 동안 고인이 어디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질문한다. 유족들과 대화를 통해 다시 한 번 고인의 인생역정을 들여다보게 된다.

넷째, 장례예식은 고인의 사망이 일어난 후 즉시 유족과 근접한 사회적 지지망을 이끌어내는 효력을 가지며 이러한 사회적 지지는 사별 슬픔을 촉진하는데 매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근래 들어 조용히 가족들끼리 모여 장례를 치르자는 분위기도 있지만, 내 생각으로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나 관계가 소원한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고 주변의 친한 사람들을 초청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어떤 가정에서는 너무 빨리 장례식을 치르는 경우도 있으나, 그것은 장례의식 본연의 기능인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다섯째, 공동체와 사별 가족에게 초점을 두었으면 한다. 교회는 단순히 장례를 돕는 장례도우미가 아니다. 장례순서를 지시하는 장례지도사도 아니다. 장례예식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이다. 가족들이나 조문객들 중에는 믿지 않는 이들이 틀림없이 있다. 장례식 설교는 항상 원초적 복음을 전하는 자리여야 한다. 구원으로 초청하는 자리로 만드는 것이다. 장례식을 마치고 교회에 등록하는 유가족들이 있다. 교회가 전도하기 힘든 때에 장례식장은 전도관이 된다. 장례의식을 통해 유가족 개개인에게 주목하고 관심 갖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교회 안에 ‘사별자 모임’과 같은 자조집단이나 모임을 만들 수 있다. 규모가 작은 교회는 지역 사회의 다른 사별지지 집단을 후원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지역의 복지관이나 문화센터 같은 곳에서 지지집단들이 구성되어 있다. 담임목회자나 담당 교역자들이 지역 사회에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사별의 슬픔과 건강하게 사별을 애도하는 것에 대해 가르칠 수도 있다. 최근 우리 교회에서는 <사별가족 돌봄 사역>이란 책자를 만들었다. 교회가 꼭 해야 할 일이다.

사별가족과 장례사역에 관심 있는 분들은 교회로 연락 바란다(02-2617-9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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