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회 공동체와 한국 초기 기독교 역사 다룬 책들

초대교회는 어떻게 그렇게 빠르게 지중해 세계와 로마 세계에 확산될 수 있었을까?
“이방인, 여성, 노예 등 사회적 타자에 대한 환대와 포용이 초대교회 성장의 가장 큰 힘”

선교 효율 높이기 위해 교파 간 협력 꽤했던 선교사들, 그러나 사분오열한 한국교회, 일본의 정치 공산당과 사회주의, 민족주의 등과 어떤 관계성을 가지며 발전했는지 조명

 

종교개혁 500주년을 지나면서 한국교회가 얼마나 본질로부터 멀어져있는지를 확인했다. 그렇다면 본질로 돌아가려는 노력이 시급한데, 그 첫 걸음으로 기독교 역사를 살피며 미래의 방향을 모색해보면 어떨까? 초대교회와 한국 기독교 초기 역사를 다룬 책들을 소개한다.

▲ <초대 교회사 다시 읽기>최종현 지음/홍성사

먼저 <초대 교회사 다시 읽기>는 초대 교회사를 교리사가 아닌 역사적 관점으로 접근한 책이다.

저자 최종원 교수(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는 기독교가 세계 종교가 된 요인은 혈통적·문화적 차별을 뛰어넘어 보편적 인간애를 구현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주목한다. 기독교는 로마의 극심한 박해를 받았지만 민족과 인종의 경계를 초월한 공동체의 실현으로 결국 로마 세계의 대안이 되는 놀라운 역설의 역사를 낳았다는 것이다.

이에 저자는 초대교회로 돌아갈 것을 말하면서 체제 밖을 지향한 초대교회 공동체의 역설이 오늘날 우리의 이야기가 되도록 하자고 도전한다.

저자는 먼저 교회의 의미에 대해 짚는 것에서 시작한다. 교회는 탄생부터 세속을 떠난 산 속 공동체가 아니라 도시 속에서 세상과 가장 밀접하게 호흡하며 살아갔고, 유대 지역에서도 중심부가 아닌 가장 멸시 받는 갈릴리에서 시작된 것을 밝히고 “가장 세속화된 현장 속에서 이 세상을 넘어선 가치와 이상이 존재함을 온몸으로 보여준 것이 바로 교회였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초대교회로 돌아가자고 할 때에는, 비록 세상의 변방에 내몰려 나그네로 살아갈지라도, 세상의 가치에 매몰되지 않은 더 숭고한 가치를 전하고, 이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이루겠다는 의지가 표현되어야 한다”면서 이런 다짐과 실천 없는 외침은 맹목에 다름 아니라고 강조한다.

초대교회는 어떻게 그렇게 빠르게 지중해 세계와 로마 세계에 확산될 수 있었을까? 저자는 “초대교회는 타자를 배제하는 유대의 혈통적 인종주의와 헬라 문화 외의 타문화를 야만시하는 헬라의 문화적 인종주의를 극복했다. 민족, 문화, 인종을 뛰어넘는 보편의 인간애를 복음이 구현한 것”이라고 짚고, “이방인, 여성, 노예 등 사회적 타자에 대한 환대와 포용이 초대교회 성장의 가장 큰 힘”이라고 강조한다. 역설적이게도 교회가 급속한 성장 후 성취한 기독교 공인, 정통 신학의 정립과 함께 타자에 대한 관용이 사라지고 배타성이 강화됐다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침체 원인을 짚어볼 수 있는 대목이 아닐까.

▲ <한국 기독교사 1>김명구 지음/예영커뮤니케이션

<한국 기독교사 1>은 한국교회 초기부터 1945년까지, 초기 내한 선교사들의 신앙과 신학, 즉 19세기 영미 복음주의적 관점에서 역사를 기술한 것이다. 기독교 복음이 한국에 들어와 어떻게 진행되고 무슨 이유로 갈라졌으며,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떻게 현상화 되었는지에 대해 다뤘다.

저자 김명구 교수(연세대)는 서문에서 “분명한 것은, 기독교가 한국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영향을 끼쳤고 어떤 그룹과 비교할 수 없는 공적을 남겼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고 ‘역사라는 것이 하나님의 세계 통치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면서 “기독교 복음이 기독교인들의 신앙고백으로만 제한된 것이 아니라, 세계사와 한국 역사를 직결시킨 실체라는 것, 신앙과 역사가 동떨어져 분리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며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책은 근대 한국교회의 시작부터 선교시대, 영적 대각성, 105인 사건과 3.1운동 등 기독교와 민족운동, 분리와 분열의 시대로 나눠 정리했다.

특히 책에서는 선교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선교사들이 교파 간에 협력을 꽤했던 것이 눈에 띈다. 19세기 영미 기독교회 내부는 교파주의 의식이 치열했고, 자신들의 교파 이식을 선교의 중요한 목표로 삼았기에 한국 선교를 둘러싼 미국 북감리교회와 북장로교 간의 경쟁이 있었지만 정작 한국 내부에서는 ‘복음 이식’을 위해 적극적인 협력을 우선시했다는 것이다. ‘조선만큼 각 교파 선교사들 사이에 협력과 조화가 잘 이루어진 선교지는 없었다’고 할 만큼이었다고 저자는 밝힌다.

장로교와 감리교 간에 선교지 분할을 결정하고 장로교는 감리교에 교계예양을 결정할 만큼 효율적인 복음 전파를 위해 힘썼고, 선교 지역 분할은 시간과 재정의 관리, 새 선교단체의 활동 개시 때 제기되는 갈등을 극소화시킬 수 있는 방안이었다고 짚는다.

그러나 한국 기독교가 초기 내한 선교사들로부터 독립하면서 시작된 교파 분열과 신학의 분화로 인한 갈등을 다루면서 이것이 일본의 정치 공산당과 사회주의, 민족주의 등과 어떤 관계성을 가지며 발전했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복음인in 들소리>는 하나님의 교회다움을 위해 진력하는 여러분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동반자로서 여러분과 동역하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함께 하겠습니다. 샬롬!

후원계좌 : 국민은행 010-9656-3375 (예금주 복음인)

저작권자 © 복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