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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에서 주체적 삶으로 살게 하는 ‘그안에교회’10년 간 4차례 건물 옮기며 35명의 신자들이 함께-신자가 자리한 그 ‘현장’에서 제대로 살아내려 몸부림
양승록 기자  |  dsr12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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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0호] 승인 2018.07.04  06:3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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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조직이나 건물보다 ‘신앙인의 유기적인 상호작용의 장’

‘성(聖)’과 ‘속(俗)’을 의도적으로 가르지 않고 오히려
이 둘을 긴밀하게 소통하는 ‘관계’로

사회 속에서 신앙인으로 살아내기 위해 힘쓴 이들이
만신창이가 된 모습으로 주일날 교회에 왔을 때 서로를 다독이는 사랑의 관계

궁극적인 교회 해체는 ‘신앙인들’이 자기 교회를 스스로 떠나
이 세계(사회) 안으로 깊이 되돌아가라는 권면

“교회는 건물의 유무나 인원, 형태가 중요하지 않으며, 최선 다하는 삶에서
신자들이 ‘자신’의 일로 여기며 응원해주는 것이 우리 교회의 정체성”


 

   
 

‘우주적인 주님 안에 우리가 함께 있는’이란 뜻을 담고 있는 ‘그안에교회’(김흥현 목사)를 5년 전 취재했을 때는 서울 광나루에 위치한 장신대학교 내의 한 공간에서 예배 드리며 공동체성을 키워가고 있었다. 개척교회의 생존이 어렵다는 시대, 그안에교회는 여전히 ‘생존’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그안에교회 신자들은 동작구 노량진동에 위치한 커피점 ‘쏘’(SSOH) 3층에서 예배 드리고 있었다. 주일예배 후 점심 식사 시간이 끝나갈 무렵, 김 목사와 신자들과 함께 그안에교회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초심을 잃지 않고 여전히 치열하게 고삐를 쥐고 살고 있는지 들을 수 있었다.
 

  ‘사회적 교회’ 실현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매주일 단 한 번의 정기모임을 갖고 있는 그안에교회는 5년 전에 비해 ‘깊어진’ 느낌이었다. 이유가 무엇일까. ‘교회가 무엇인가 하는 저변이 확장되고, 교회론이 신자들 속에 자리매김한 것 아닐까’ 하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안에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라 사는 실천적 제자공동체’를 표방한다. 그래서 주일마다 그들은 그 발걸음을 늦추지 않고 걸어갈 수 있기를 공동기도문을 통해 고백하며 기도한다.

그안에교회는 인원이 적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35명이 ‘우리의 운명은 백년을 이어가게 한다’는 자부심으로 오늘을 산다. 건물 있는 교회로서 공동체가 커가는 것보다는 각자의 삶 속에서, 각자가 일하는 그 사회 속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체가 되어 책임 있는 삶을 살아낼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둔다.

이 부분은 그안에교회 정체성인 공동체성을 지향하며 펼쳐내는 것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이 공동체성에는 ‘관계성’(Koinonial Church)과 ‘하향성’(Incarnational Church)을 추구하며, ‘사회적 교회’(Social Church)로서 자리매김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사회적 교회’ 실현을 지향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사회(Social)’를 ‘조직체계’나 ‘구조’가 아니라 ‘인간관계(relation)의 장’으로 이해한다. ‘교회’ 역시 ‘조직이나 건물’보다 ‘신앙인들의 유기적인 상호작용의 장’으로 적극 이해한다. 건물로서 교회 유지를 우선 목표로 하지 않고  ‘신앙인’이 교인들 상호관계에서 배우고 경험한 공동체성을 자기가 일하는 세계에 실현할 수 있는지를 모색한다.

이런 맥락에서 그안에교회는 사회와 교회를 엄밀한 경계로 구분하지 않는다. ‘성(聖)’과 ‘속(俗)’을 의도적으로 가르지 않고 오히려 이 둘을 긴밀하게 소통하는 ‘관계’로 생각한다. ‘성(聖)’을 어떻게 ‘속(俗)’으로 전환해서 해석하고 현실화할 수 있는지 고민한다. 사회를 굴복시켜 ‘선교해야 할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사회’는 우리가 실제로 살아가는 터전이라는 부드러운 관점을 유지한다.

“신앙인으로서 우리에게 더 중요한 장은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입니다. 그런 점에서 ‘교회’는 치열한 각축장을 걸쳐 돌아온 이들이 ‘안식하는 휴게소’로서 충분합니다. 짙은 ‘동지의식’으로 서로를 격려합니다. 누구든 지나온 삶을 정비하고, 쉼을 누리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정기 주일모임은 ‘흩어졌던 동지들이 자기 순례를 마치고 돌아온다’는 사고가 깊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안에교회는 사회 속에서 살아내는 신자들의 모습을 중요하게 주목했다. 그래서 서른다섯명의 신자는 각각 자기가 몸담고 있으면서 살아내는 현장을 곧 ‘사회적 교회’로 풀어내고 있다. 자기 직업이나 영역 안에서 하나님의 세계를 삶의 언어로 구사하고, 행동하려고 하는 과정에 의미를 두는 것이다. 그렇게 고군분투한 삶의 모습을 교회에 와서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는 곳이 그안에교회다. 성공담이나 자랑이 아닌 말씀대로 살기가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 실패하고 갈등하는 내용, 그 속에서의 희로애락을 나눈다. 그런 과정을 중요하게 보고, 신앙의 여정은 그러해야 함을 서로가 알아간다.

김흥현 목사는 사회 속의 신자들을 ‘패잔병’에 비유했다. 사회 속에서 신앙인으로 살아내기 위해 힘쓴 이들이 만신창이가 된 모습으로 주일날 교회에 왔을 때 서로를 다독이는 사랑이 필요하고, 개개인의 신자는 자신 외에 나머지 34명의 신자들이 힘겹게 싸우고 있는 자신을 응원해주고 있음으로 힘을 받는다는 것이다.

개인이 현장에서 부딪히며 애쓰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주일 공동체 모임과 예배를 통해 긴 호흡으로 확인하며 위로와 격려를 받으며 다시 현장으로 기꺼이 가서 싸우려는 그안에교회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 그안에교회 담임 김흥현 목사

 교회가 아니라 신앙인이 주체가 되어

그안에교회는 세계 참여를 실제로 감당하는 주체가 ‘교회’가 아니라 ‘신앙인’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신앙인’의 존재이유는 ‘자기 교회 유지’가 아니라 ‘공공성이 확보되고 실현되는 세계 유지’를 위해 더 애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세계참여를 위해 훈련하는 사고틀은 ‘하향성’(아래로 향하는 속성)이다. 이것은 세계 속에 항시 존재하는 ‘낮고, 여린 대상’을 찾고 주목하려는 노력이다. 이 관점을 더욱 명확하게 훈련하기 위해 하나님이 보여준 세계참여방식을 훈련하고 연습한다.

이를 위해 두 가지 활동을 하고 있다. 먼저 세계를 위한 기도는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어린아이부터 어른들까지 드리는 예배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도록 돕는다. 이 공동기도를 통해 세계를 위한 ‘신앙적 공공성’이 우리를 통해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 그 지혜를 모색한다.

매주일 예배에서 함께 드리는 이 ‘세계를 위한 기도’는 공존하기 위한 세계참여를 실현하려는 작은 행동이다. 또한 ‘수요함께걷는기도’는 수요일에 산과 들에 펼쳐진 여러 길을 걸으며 묵상하는 움직이는 기도회다. 우리가 머무는 이 피조세계에 어떤 일이, 어떤 모습으로 일어나고 있는지를 살핀다. 아울러 꽃과 나무와 바람과 햇빛과 비와 눈을 관찰하며 이 세계가 유지해야 할 샬롬을 진지하게 모색한다.  

 사회 안에서 신자 역할 중요

10년간 4번의 장소를 옮겨가며 예배드리며 공동체 모임을 해온 그안에교회에는 지난 5년간 최소 5명, 많게는 13명의 신자가 증가했다. 그것을 이야기하면서 신자들은 전혀 의기소침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수백 명, 수천 명, 수만 명이 한꺼번에 매주, 1년, 수십 년 한 곳에 머물러 교회를 유지하는 것을 경계한다. 공간으로서 교회는 남은 자 같은 몇몇 ‘가족’이 머물러 있는 ‘고향’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모임공간으로서 교회 유지를 위해서 최소한의 사람만 남아있을 뿐 수시로 자기 세계로 떠났다가 돌아오는 일이 반복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신자는 자기가 참여할 사회적 영역을 결정하는 것에 더욱 신경 쓰기를 권장한다. 언제든 그 세계로 떠나갈 준비를 하고 몸을 움직여야 함을 견지한다.

지난 2014년 이래만 보더라도 그안에교회는 적어도 10여명 이상이 기꺼이 자기 세계로 흩어졌지만 그들은 지금도 여기 남은 자들과 교통하고, 서로 격려하며 지지하고 도움을 요청하고 후원하는 관계를 이어간다.

“그들이 떠나지 않았다면, 이 작은 규모의 교회가 양적 인원이 늘어난 채로 만족하면서 예배드릴 것입니다. 기분이 좋겠지만, 지금 우리가 인원 면에서 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은 이런 ‘교회(건물) 해체’의 결과를 방증합니다.”

그러나 이런 시도를 교인들이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는 모두가 이 교회 해체를 즐기고 있단다. 오히려 언젠가 흩어진 이들이 다시 돌아와 남은 자들과 함께 고단한 몸을 풀고 피로를 회복하는 즐거운 시간을 기대한단다.

그안에교회는 신앙동지들의 ‘만남’으로 충분한 공간을 즐긴다. 우리 경험이라 제한된 생각이겠지만, 신앙인들의 ‘모임’을 위해 큰 건물로서 교회는 굳이 필요하지 않다. ‘신앙인’들이 서로 위안하고 격려할 교회공간이면 충분하다.

이 경험과 함께 공부한 것들을 볼 때, 그안에교회는 교회 해체가 오늘날 더욱 강조되는 필연적인 시대요청이라고 여긴다. ‘교회 해체’는 이 시대에 ‘교회다운 교회’를 실현하려는 이들에게 남겨진 마지막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안에교회는 ‘공동체’ 건축이 아니라 ‘공동체성’을 실현하는 ‘신앙인들의 모임’을 지향한다. 이것이 교회를 유지하는 힘이라고 믿는다.  

어떤 의미로 교회 해체를 말하는 것일까.

그안에교회가 말하는 ‘교회 해체’는 두 가지 개념이다. 첫째, ‘교회 해체’는 ‘건물’로서만 유지하려는 ‘교회’에 대한 저항이다. ‘건물 유지’에 내몰려야 하는 목회현실에 대한 대항이며 대안이라는 것이다. 둘째, ‘교회 해체’는 건물에만 머물러 있으려는 신앙인들을 자기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세계와 더 깊숙이 관계 맺어야 한다는 각성, 의식전환이라는 것이다.

궁극적인 교회 해체는 ‘신앙인들’이 자기 교회를 스스로 떠나 이 세계(사회) 안으로 깊이 되돌아가라는 권면이다. 교회가 아니라 자기 세계 안에서 하나님의 의도를 실현하자는 결단을 촉구하는 것이다. 때가 되면 교회구성원들은 하나님의 세계를 위해 자기 교회 밖으로 스스로 길을 떠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교회 해체’는 신앙인 자신이 내리는 ‘흩어짐’이며,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고 자기 삶의 자리로 더욱 진입해서 들어가려는 결단인 셈이라는 것이다.

  ‘헤세드’의 힘, 원동력

조용하게 설명했지만 결코 쉽지 않은 시도를 그안에교회는 하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가지 않은 길, 그러나 말씀을 통해 알려주시는 그 순수의 신앙을 좇아가는 그안에교회. 그 힘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김 목사는 “한 단어를 놓지 않고 끝까지 붙잡을 수 있게 한 은총”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처음에는 그도 몰랐지만 ‘헤세드’(히브리어-인자, 인애, 사랑)에 대해 깊이 파고 파며 붙잡으니 그 땅 속 깊이에서 하나님의 품성(샬롬, 다바르)과 만나게 되었고, 마침내 목회의 핵심 단어가 되었단다.  

‘헤세드’의 은혜는 인간을 자기 피조물로서 완전하게 수용하고 포용하는 하나님의 성육신 은총을 의미하며,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무엇인가를 대접받겠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향해 끝없이 자기 사랑을 베풀겠다는 약속이라는 것이다.

그안에교회는 ‘헤세드’를 토대로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한다’는 말을 해석한다. ‘하나님의 피조물인 인간을 하나님의 헤세드로 대한다’는 모토를 훈련하고 있다. 실제적으로 예배 및 우리 의식의 변화가 일어난 것은 ‘헤세드’를 경험한 산물이라고 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예배구성이다. 예배를 통해 모든 이들이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래서 시간이 되었더라도 늦는 신자가 있다면 기다렸다가 오면 예배를 시작한다. 예배 첫 부분은 ‘소그룹나눔’으로 시작한다. 매주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자기가 지나온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 하나님을 향한 예배의 첫 시간이다. ‘돌아와 삶을 나눔’은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즐거운 시간으로 되돌려 주신 흔적이라는 것을 반영한다.  

두 번째는 기도다. ‘헤세드’는 타인을 전적으로 수용한다. 하나님은 타인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는 분이라는 것을 경험한 공동체로서 대표기도를 변경해 ‘공동체를 위한 기도’를 드린다. 매주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진솔하게 이 교회를 위한 ‘자기 기도’(20자 정도)를 드리는데, 그것을 듣는 과정은 그 자체로 훌륭한 은혜의 시간이란다.

세 번째는 올해 ‘전도서연구’가 실천사항 중에 하나인데 설교와 강의 그리고 독서, 독서 후 토론을 통해 전도서를 심층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자유로운 자기 의지’를 수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만을 위한 하나님에서 세계 모든 이들을 위한 하나님으로 인식, ‘하나님의 자유’를 실제로 경험하고 있단다.

“우리는 이 ‘헤세드’라는 단어 하나로 하나님을 충분히 이해하려고 하고, 헤세드는 그안에교회의 신앙의식을 바꾸어가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교회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만으로 자기 기능을 다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신’을 사랑하는 이는 필연적으로 ‘그의 피조물인 타인’을 사랑해야 마땅합니다. 그런 점에서 ‘그안에교회’는 예배부터 가장 여린 참여자들을 위한 절차로 언제든지 변경하고 조정해서 진행합니다. 나아가 우리는 이 시대에 ‘인간’으로서, 또는 피조물로서 겪는 이유 없는 고통과 억압, 생명 위협, 차별, 배제에 대해 진지하게 저항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질문했다. 50명도 채 되지 않는 신자들과 함께하는 김 목사는 어떻게 생계를 유지할까. 그의 답변은 ‘생존에 있어서 최저의 비용’을 사례비로 받는다. 최소 12명인 4인 기준 3가정이 삶을 나누면(십일조 개념) 가능한데, 그것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한다. 국가기준의 최저 생계비가 충족되지 않을 것 같아서 추가질문을 했더니 김 목사는 교회 집사 부부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일주일에 하루 로스팅하는 고정 일터가 있다고 말한다. ‘투잡’이 아닌 목회 안에 노동이 들어있다는 생각으로 신자들과 협의해 일하고 있다.

그안에교회 신자들 중에는 오래된 신자와 함께 최근 몇 개월 내 합류한 신자들도 있다. 이들은 “나 자신의 완전한 변화에서부터 시작하게 됐고,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한 부분을 정확하게 알아가고 있다”, “기존교회에서 갈등이나 한계가 느껴져 고민하다가 만난 이 교회에서는 본질적인 부분을 붙잡고 몸부림하게 한다”, “어디에 있어도 우리가 교회에서 배운 것을 현장에서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을 실현하는 여정에 있다”고 고백한다.

6개월 전에 그안에교회에 왔다는 한 신자는 “신자 한 사람이 교회가 아니고 모여야 교회라고 배웠는데, 여기에서는 혼자 남을 수도 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고 심각하게 고민하며 교회가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또 한 신자는 “제가 이곳에 왔을 때 12명의 신자가 있었는데, 바로 이분들이 그안에교회가 살아날 수 있는 원인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교회는 건물의 유무나 인원, 형태가 중요하지 않으며, 최선 다하는 삶에서 신자들이 ‘자신’의 일로 여기며 응원해주는 것이 우리 교회의 정체성”이라고 말했다.  

그안에교회는 이렇게 ‘신앙공동체’ 개개인이 하나님의 사랑을 사회 속에서 여러 관계와 일 속에서 이뤄내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고 고민하며 살아내는 중이다. 그안에교회는 하나님이 ‘인간으로서 인간을 나처럼 사랑해 달라’는 뜻으로 ‘헤세드’를 먼저 실천해 주셨다는 것을 배워가며 실천하고 있었다.

이런 여정에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그안에교회 신자들의 고백과 삶이 후대에 어떻게 남게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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