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는 수삼 년 전까지만 해도 쉽게 평가절하를 받거나 사회로부터 멸시를 받은 일이 없었다. 비교적 평탄한 가운데 교회가 성장해 왔다. 단, 2007년인가 아프가니스탄 단체 의료 선교를 떠났다가 납치된 일이 있은 후 일부 비판자들이 안티(Anti)라는 이름으로 크리스천들을 혹평하기 시작했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성 소수자들의 도발은 물론 병역문제로 대체복무가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교회의 내부 강화로 해결할 수도 있다. 주로 ‘여호와 증인’ 종파가 주장하는 ‘집총 거부’가 발단이 되어 양심적 병역거부를 주장하기에 이르렀으나 이 문제는 6.25 전란 때부터 문제되었던 일이다. 그들의 병역거부가 사회가 발전해 가면서 공론화 될 수 있는 사안임을 교회는 좀 더 일찍 예측할 수 있었어야 했다.

지금도 교회가 해야 할 일은 젊은이들이 대체복무를 얻어내기 위하여 여호와의 증인 종파로 몰려갈 것이라고 단정하는 일은 조심스러워야 한다. 자칫 한국사회의 젊은이들이 화를 낼 수 있는 빌미를 주어서는 안 된다. 병역은 신성한 의무다, 또 우리도 남북한 문제가 해결되면 병역의무제가 자원제로 바뀔 수 있다.

교회가 청소년들을 교회의 친구로 삼는 흡인력이 설마 ‘여호와 증인’에게 뒤떨어지랴, 하는 자부심에도 상처를 주면 안 된다. 이러한 사안들은 교회가 성숙해지고, 우리 사회로부터 신뢰가 상승하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다.

그러나 한국교회를 비롯하여 세계교회는 이미 위험한 도전을 받고 있다. 한국교회는 지금 성 소수자 문제, 대체 복무 문제, 무슬림이나 IS가 한국사회에 둥지를 틀까 하는 문제보다 “자유”를 꺼려하고 또 싫어하는 정부와 한 배를 타고 있는 우리 대한민국 체제가 흔들리고 있음을 더욱 두려워해야 한다.

늘 말하지만 신구 기독교 신자가 1500만 명이면 전체 인구의 30%인데 북한의 “인민민주주의”를 대응하기 위해서는 “자유민주주의” 제도가 우위에 있고 또 인간의 기본권과 존엄을 지켜주는 장치로는 훨씬 높은 가치임을 보여 주었어야 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셔서 사람과 함께 사는 “임마누엘의 원리”를 기본으로 하는 종교다. 인간의 자유, 존엄, 행복, 축복을 넘치도록 제공하는 삶의 원리를 가진 종교다. 그런데 우리 정부나 정부를 지지하는 시민들이 “자유”를 꺼려하도록 방치한 한국 기독교의 수준은 치명적인 약점에 해당한다. 어떻게 하면 멍청한 19세기 말 유럽처럼 사회주의나 공산당 운동에 “자유와 민주”를 빼앗겼던 날의 답습을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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